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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리 칼럼] 자유, 평등, 페미니즘

중앙일보 2016.12.16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여성 차별 갈수록 심해져
새로운 법과 사회정책으로
여성의 정치·경제적 소외 막고
미디어 속 여성 이미지 감시해야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몇몇 여성들이 요직을 맡아 크든 작든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에서 특히 그렇다. 여성의 교육 접근 기회가 확대되고, 책임 있는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된 점도 부정할 수 없는 발전이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 때문에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곳곳에서 여성은 갈수록 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남녀 모두에게 이보다 큰 불행이 있을까.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성의 구직 기회도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14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추세로 갈 경우 남녀 균등 임금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예상했던 118년보다 훨씬 더 늦춰진 170년 후에나 실현 가능하다.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수준은 아이슬란드 87%, 한국 52%, 미국 65%, 독일 67%, 프랑스 72%로 세계 평균이 59%에 불과하다.

여성의 경제적 소외는 무엇보다 정치적 불평등에 기인한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너무 저조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여성 국회의원과 장관 수, 여성이 국가를 통치한 평균 연수(年數) 등을 토대로 산출하는 세계 여성의 정치 참여 비율은 아직 남성의 23%에 불과하다. 프랑스라고 해서 사정이 특별히 더 낫지도 않다. 여성의 교육과 건강 부문 1위, 정치 참여 부문 19위, 임금 부문 22위, 구직 기회 부문에서는 64위다. 한국 여성은 훨씬 더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 있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남녀 균등 임금(125위)과 여성 장관 비율(128위)에서 유난히 심각한 지체 현상을 보이면서 전체 144개국 중 116위에 그쳤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차별과 정신적·육체적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강간하고, 살해하고, 돌로 때려 죽이는 등 우리는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점점 더 심한 모욕을 가하고 있다. 단지 이슬람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종교와 문화는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여성들을 남성들의 무절제한 욕망에 복종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알량한 육체적 힘으로 그들을 짓밟고 있다. 여성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게 결국 남성들에게도 유리한 일이 될 텐데도 말이다.

실제적인 남녀 평등은 귀중한 인적 자원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것이다. 여러 쟁점들에 대한 여성적 접근에 힘입어 세상은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더 창의적인 인간관계와 더 건전한 인간성을 함양하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성숙한 아이들을 길러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을 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이끌어낼 것이다. 또 여성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는 대개 여성에게 맡겨지는 힘들고 지루한 성격의 일에서 기술적 발전 속도를 높일 것이다.

보다 신속하게 앞서 나가고 기존 관습의 변화를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법이 근본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2011년 제정된 법에 따라 2017년까지, 그러니까 당장 내일부터 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120대 상장기업 중 47개 기업이 이 비율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급여 동결과 신규채용 금지 등 제재 조치가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동일한 수준의 조치들이 기업뿐만 아니라 정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시행돼야 한다. 진실로 모범이 될 만한 행정 체계를 조직하려면 책임 있는 자리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동일한 몫으로 주어져야 한다. 이는 당연한 원칙이다. 정치적으로 남녀 비율 균등의 목표를 실현하려면 법적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정당에 벌금을 부과하는 강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양육의 책임이 어머니만큼 아버지에게도 동일하게 부과된다는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법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모 중 한쪽이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 경우 다른 쪽도 육아를 위한 휴가의 상당 분량을 상실케 하는 규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부모가정은 여기서 제외된다.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부모 모두가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차분하고 성숙한 일상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에 적합한 시간대에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 규모를 늘리면 자녀 양육에 할애하는 부모 간 시간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성평등이 누가 봐도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도록 사회 전 분야에서 남녀 간 평등 의식이 발현돼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히 미디어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입장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아주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두를 위한 번영과 행복, 개벽(開闢)이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더는 지체하지 말자.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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