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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친박의 죄, 기자의 죄

중앙일보 2016.12.16 00:26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승욱 정치부 차장

서승욱
정치부 차장

“너도 최순실을 몰랐냐.”

친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20년간 신문사를 다녔다면서, 정치부 기자라면서 왜 몰랐냐는 것이다.

정치부에 첫 발령을 받은 건 입사 2년차인 1997년 12월이었다. 15대 대선을 코앞에 뒀을 때다. 열흘 동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만 따라다니다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썼던 기사가 ‘박근혜씨 입당회견’이었다. ‘한나라당에 입당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맏딸 근혜 (槿惠)씨가 11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회창 후보 지지의 변(辯)을 밝혔다…’로 시작하는 기사에서 박 대통령은 “깨끗한 정치를 경제원리와 접목시켜 경제회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이 후보뿐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듬해 4월 박 대통령은 달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기까지 정치역정 18년, 필자 역시 그 대부분을 정치부 기자로 보냈다.

2006년 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 지원유세 중 피습을 당했을 때 필자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취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숙적이던 이명박(MB) 전 대통령 담당 기자로 박 대통령을 멀리서 관찰했다.

보수세력이 열광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 다 졌다는 선거도 승리로 뒤집어버리는 선거의 여왕, 베일에 싸인 사생활과 과거까지 버무려지면서 정치인 박근혜는 대중들에게 신비로움과 경이 그 자체였다.

정치부 기자라면 달랐어야 했는데, 필자의 눈도 대중들과 비슷했다. 2006년 피습 때는 “피습 순간부터 수술대에 오를 때까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피가 흐르는 상처 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참모에게 처음 건넨 말이 ‘범인은 잡혔나요’였다”는 기사를 썼다. 지금은 읽기도 민망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출입기자들 사이엔 박 대통령의 비범한 모습을 먼저 전하려는 경쟁이 붙었다. 그와의 독대는 기자들에게 훈장처럼 여겨졌다. “수행비서를 따라 강남 모 호텔의 미로와 같은 통로를 지나 비즈니스룸에 들어갔더니 박 대표가 기다리고 있더라. 한참 동안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선배들의 무용담이 솔직히 부러웠다.

2007년엔 최순실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최태민·최순실’ 커넥션을 추적하며 “MB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안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던 MB 참모 정두언 의원의 말을 듣고도 당시엔 “허풍이 섞였다”고 생각했다. 결국 지난 18년간 최순실은커녕 박 대통령의 실체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필자는 그 무능력과 태만이 한없이 부끄럽다.

새누리당 취재팀장으로 친박계 핵심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더욱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에 이젠 할 말조차 없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에 염치없는 반성문을 쓴다.

서승욱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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