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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윤리위 제소 대상을 윤리위원에 임명한 이정현

중앙일보 2016.12.15 02:02 종합 6면 지면보기
지난 12일 오후 8시 여의도 새누리당사로 언론인 출신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윤리위원 4명이 황급히 모여들었다. 친박계 지도부가 이날 오전 갑작스레 자파(自派) 윤리위원 8명을 비밀리에 새로 선임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유승민 의원에 대한 징계심사를 진행하고 있던 윤리위에 지도부가 갑자기 친박계 8명을 꽂아 당 주류 측이 위원회 내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만들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당내인사 1명, 당외인사 6명)은 “지도부에 뒤통수를 맞았다” “친박이 윤리위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냐”고 강력 반발했다.

대통령 징계 막으려 친박 8명 선임
성추행 의혹·금품비리 전력자도
이 대표 “신원조회 안 해 몰랐다”

당 지도부는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쉬쉬했다. 이 위원장은 13일 “지도부가 12일 밤 나를 만나선 새 윤리위원을 선임해 놓고도 시치미를 뗀 채 ‘윤리위원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며 “윤리위 결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판단해 전원 사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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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윤리위원 명단이 14일 밖으로 알려지자 논란은 더 커졌다. 8명 중 국회의원이 4명이었고, 대표적인 강성 친박(곽상도·박대출·이양수·이우현 의원)이었다. 향후 징계 심사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사퇴 의사를 밝힌 정운천 윤리위 부위원장은 “친소관계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기존 7명의 위원 중 국회의원은 나뿐이었고 나머지 위원들은 외부 인사였다”며 “지도부가 선정한 8명의 신임위원 중 4명이 친박계 현역의원이란 사실은 기존 체제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중립적 위치에서 결정해야 할 윤리위원을 친박 현역의원으로 채운다니 어리둥절하다”며 “주위에서 정신 나갔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지도부가 추천한 나머지 4명의 외부인사 면면이었다. 박명재 전 사무총장은 “윤리위 구성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한 구청장 출신 위원은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2014년 지방선거 공천이 철회된 인물이었다. 또 다른 위원은 2008년 서울시의장 선거 당시 금품을 받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자유총연맹 출신 인사는 지난해 제4이동통신 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으로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이 인사는 "연맹 내 진실규명위원회 감사 결과 나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절차 등은 부당한 조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윤리위원이 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당 안팎이 들끓자 이정현 대표는 “당헌상 윤리위원회는 15인 이내로 구성하게 돼 있는데 7명밖에 없는 상태였다”며 “중대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위원을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원조회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불미스러운 이력이 나오는 인물들을 선임해 놓고도 그는 ‘신원조회’ 운운했다. 한마디로 옹색한 변명이었다.

당 관계자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성추행 시비가 있던 사람은 빼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리위는 ‘당의 윤리의식 강화와 기강 유지 및 기풍 진작을 위한’(당헌 43조) 기구다. 그런 윤리위가 기존 위원 7명의 일괄 사퇴로 식물기구가 됐다.

당의 기구가 식물화되든 말든, 윤리위에 제소돼야 할 사람까지 윤리위원으로 내리꽂은 것은 친박 지도부가 보여준 또 하나의 위험한 역주행이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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