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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숨진 딸과의 추억 담긴 스마트폰, 왜 강제해지 하나요

중앙일보 2016.12.15 01:30 종합 14면 지면보기
충북 청주에 사는 육모(40·여)씨는 지난해 9월 18일을 잊을 수 없다. 남자 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큰딸 한모(당시 20세)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승용차 조수석에 타고 있던 딸은 가로수에 들이받은 충격으로 그날 세상을 떠났다. 의류매장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벌 정도로 성실하던 딸의 꿈은 간호사였다. 사고 전에 딸은 “곧 간호학원에 다닐 거야”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례식까지 치렀지만 육씨는 딸을 떠나 보낼 수 없었다. 교통사고 당시 딸의 휴대전화는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딸의 얼굴이 걸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 사진과 함께 나눈 대화는 육씨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육모씨, 딸 한모씨 교통사고로 잃은 뒤 딸이 세상 떠났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메시지 보내.

육모씨, 딸 한모씨 교통사고로 잃은 뒤 딸이 세상 떠났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메시지 보내.

사고 한 달 전인 지난해 8월 육씨가 딸을 위해 개통했던 전화였다. 이후 육씨는 딸 카카오톡 메신저를 보면서 상당한 위안을 얻었다. 딸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휴대전화 속의 딸은 살아 있는 듯했다.
육씨 3개월마다 대리점에 강제해지 금지 요청. 딸 명의 유지한 채 휴대전화 요금 매달 지불.

육씨 3개월마다 대리점에 강제해지 금지 요청. 딸 명의 유지한 채 휴대전화 요금 매달 지불.

시간이 흘러도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육씨는 딸 명의로 가입한 휴대전화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딸과의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씨는 S통신사 상담원에게 “딸 휴대전화의 약정 기간 2년이 끝나는 2017년 8월까지 요금을 낼 테니 명의변경 및 강제해지를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상담원은 당시 “알겠다”고 답했다. ‘딸아 2016년이다. 네가 스물 한 살이 되는구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보고 싶다. 너무 미안하고…. 아프지 말고 엄마가 또 연락할게.’

1년 전 딸 먼저 보낸 슬픔 달래려고
생전에 하듯 카카오톡으로 메시지
“해지 말라” 요청, 통신요금도 다 내
이달 초 딸 카톡 계정 갑자기 없어져
해당 이통사 “정부 조치에 따라 해지
대포폰 피해 막으려면 불가피” 해명

‘엄마 보고 싶지? 엄마도 내 딸 많이 보고 싶다.’ ‘사랑하고 미안했다. 또 연락할게.’

이렇게 딸이 생각날 때마다 육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안부를 묻거나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메시지를 전달할 때만큼은 딸이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육씨는 지난달 21일까지 매월 딸의 휴대전화 요금도 꼬박꼬박 자동이체했다.
지난 2일 딸 휴대전화 강제해지한 사실 확인. 휴대전화 잔금(단말기) 납부 촉구 통지서 받아.

지난 2일 딸 휴대전화 강제해지한 사실 확인. 휴대전화 잔금(단말기) 납부 촉구 통지서 받아.

그런데 지난 2일 카카오톡 계정에서 딸 얼굴이 사라졌다. 놀라 확인해 보니 딸 휴대전화는 해당 통신사로부터 강제해지 된 상황이었다. 카카오톡 계정과 다른 SNS 계정도 없어졌다. 딸이 정말 세상을 떠난 것만 같아 육씨는 또 한 번 놀랐다. 이전까지 환하게 웃고 있는 딸 프로필 사진과 소개란에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라고 쓴 소개 글이 모두 사라졌다. 딸 사진은 사람 모양의 이모티콘으로 변해 있었고, ‘알 수 없음’이란 글자가 메신저에 보였다.

육씨는 S통신사에 전화해 “왜 동의 없이 딸 휴대전화를 강제해지 했느냐”고 따졌다. S통신사 측은 “정부(미래창조과학부)의 ‘휴대폰 부정 사용 방지’ 정책에 따라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차명폰(대포폰) 직권해지’ 조치 차원에서 사망자의 휴대전화를 일괄 해지 조치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육씨는 이런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 육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 6, 9월에 딸 명의 휴대전화를 유지하려고 3개월마다 S통신사에 해지 금지를 요청해 왔다. 이렇게 하면 약정 기간까지 딸 휴대전화 명의를 유지할 수 있다는 통신사 직원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더군다나 딸 휴대전화 요금을 낸 부모에게 강제해지 조치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 S통신사 측은 죽은 딸의 휴대전화로 3개월간 여러 차례 해지 통보 문자를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S통신사 관계자는 “대포폰 사용자를 걸러내려는 정부 정책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가슴 아프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흘 뒤 육씨에게 S통신사의 의뢰를 받은 채권추심업체에서 통보서가 날아왔다. ‘딸 휴대전화가 해지됐으니 남은 단말기 대금(약 25만원)을 내라’는 독촉이었다.

일방적 해지 조치로 휴대전화 명의가 바뀌면서 육씨는 딸에게 더 이상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게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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