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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乙)들의 대나무숲, 마녀사냥…두 얼굴의 SNS 여론

중앙일보 2016.12.14 02:30 종합 4면 지면보기
사이다 시대 할 말은 한다
#1.“서울대입구역 인근에 발광다이오드(LED) 초 파나요?” “여긴 품절이에요. 제가 여러 개 샀으니 광화문으로 오시면 나눠 드릴게요.” 지난달 12일 오후 3차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 서울대 학생들이 만든 ‘혼참러(혼자 참여하는 사람)’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일면식도 없는 혼참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매개로 정보를 나누고 현장에서 만나 집회에 참여했다.

공론화 통로 된 SNS 커뮤니티
극단적 편향·개인주의 위험도

#2. “공무원, 부모님 빽으로 공공기관 꿀알바를 얻어가는 후배, 아버지 빽으로 꿀보직을 받았다는 친구…. 여러분 주변에는 정유라, 혹은 우병우 아들이 없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잘못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개설된 한 사립 대학의 익명 커뮤니티 ‘OO대학 대나무숲’에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2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 같은 장면들은 요즘 한국에서 SNS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무기가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이라면 할 말은 하는 ‘사이다 시대’ 대중의 무기는 SNS와 스마트폰이다. 대중은 SNS를 통해 소통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전파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지’를 모으기가 쉽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기도 편하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대나무숲’이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선배나 직장 상사의 폭행·폭언을 거침없이 폭로해 온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대중이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와 스마트폰이 사용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이다. 이후 SNS에 사진·동영상 게시 기능이 더해지면서 이는 본격적인 여론 촉매제가 됐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요즘 세대나 사회적 분위기가 불합리하게 당하는 걸 용인하지 못하는 데다 SNS 등 쉽게 불합리한 걸 얘기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공론장 역할에 그쳤던 SNS가 적극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실 SNS는 의견이 편향되기 쉽고, 쓰는 사람도 한정적이어서 공론장 구실을 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는 SNS가 ‘소통’의 역할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조직’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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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의견과 사실 확인의 어려움 등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재신 교수는 “누군가를 욕하는 글이 대나무숲에 올라왔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라든가, 개인의 목소리만 강조하다 극단적 개인주의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목소리와 전체의 질서 사이에서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다 시대
탄산음료를 마셨을 때처럼 묵은 체증을 속 시원히 내려가게 하는 느낌을 주는 말을 ‘사이다 발언’이라고 한다. 지난해부터 온라인 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한 이 표현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사이다 시대’는 하고 싶은 말을 과감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각광받는 세상을 일컫는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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