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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운동화 신고 싶다” SNS서 메아리…교육청서 조사

중앙일보 2016.12.14 02:30 종합 4면 지면보기
사이다 시대 할 말은 한다
‘학생들을 짧은 치마 입혀서 군부대 위문 공연에 보내요.’

사회 곳곳 저항권에 눈뜬 시민들
한 학생이 교내 부당행위 공론화
공감한 친구들 사례 제보 쏟아져
5월엔 부하 괴롭힌 검사 이슈화
다면평가제 부활 변화 이끌어내

‘운동화를 신으려면 운동화증을 꼭 끊어야 해요.’

지난 3일 트위터에는 ‘S여중여고 문제 공론화’라는 이름의 계정이 개설됐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느낀 학교의 불합리한 교칙과 교사들의 성희롱 등 부적절한 행위들을 계정에 쏟아냈다. 6일 서울시교육청은 장학사를 현장에 보내 실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13일 성추행·성희롱 등의 혐의가 있는 교사 8명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해당 계정을 만든 이 학교 학생 A양은 “우연히 트위터에 누군가가 쓴 학교 관련 고발 글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개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게 하는 기저에는 기존 권위에 대한 강한 의심과 불만, 그리고 ‘내 편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화 세대가 경제를 위해 개인을 희생했고, 민주화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개인을 희생했지만 현재의 청년 세대는 자신의 권리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검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형적인 ‘상명하복’ 조직인 검찰은 지난 5월 상사의 폭언 등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서울남부지검 김홍영 검사 사건 이후 일선 검사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달 말 후배 검사가 선배 검사를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를 7년 만에 부활시켰다.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47)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최근 쓴 책에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자’라는 문구를 넣었는데 요즘 각계각층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 표현을 쓴 게 머쓱하다”고 말했다. 문 판사는 지난 4일 자신이 지하철 안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한 남성이 돌연 “탄핵 반대! 국회 해산!”을 외쳤다. 다른 승객들이 “조용히 좀 하라”며 화를 내자 남성은 “난 1인 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승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남성에게 “내려!”라고 소리쳤다. 문 판사는 “지하철에서 행패 부리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그런 사람마저 ‘시위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이 신기했고, 불편해도 가만히 있었던 시민들이 그때는 일제히 한목소리를 낸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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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인터넷이라는 장치를 통해 예전보다 더 쉽게 결집할 수 있게 됐다. 10월 13, 14일 본지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 42.4%는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달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쉬워졌다”고 답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낙태수술 등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여성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모여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를 벌였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사람들이 ‘저항권’ 행사에 주저하지 않고 제3의 통로를 통해 이를 표출하는 건 그만큼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대의민주주의에 빈틈이 많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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