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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테흐스 “직원 1명 배치에 9개월…유엔 개혁해야”

중앙일보 2016.12.14 01:44 종합 16면 지면보기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왼쪽)이 안토니우 구테흐스신임 총장을 맞이하고 있다. 이날 반 총장은 고별 연설을, 구테흐스 총장은 취임 선서를 했다. [신화=뉴시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왼쪽)이 안토니우 구테흐스신임 총장을 맞이하고 있다. 이날 반 총장은 고별 연설을, 구테흐스 총장은 취임 선서를 했다. [신화=뉴시스]

“유엔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단점은 위기를 막는 데 있어 무능함이다.”

새 사무총장 취임 연설에서
유엔 관료주의와 전쟁 선포
반기문은 총장직 고별 연설서
“10년 도와준 한국 국민에 감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차기 사무총장이 강렬한 표현으로 유엔 총회에 데뷔했다.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뒤를 잇는다. 그의 임기는 내년 1월 시작된다.

1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선 반 총장과 구테흐스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신·구 사무총장의 고별과 취임 연설은 선명하게 대조됐다.

반 총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역분쟁, 난민사태, 질병과 재난, 기후변화 등을 거론하면서 “엄청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천만 명의 인명을 구하고 보호하는 것을 도왔다”며 회원국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자신의 양대 업적(레거시)인 파리기후협정과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채택에 대해서 “우리 모두에게 더 안전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길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반 총장은 특히 “한국 국민과 정부에 나의 가장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서 “지난 10년간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은 내가 세계 평화, 개발, 인권을 위해 자랑스럽게 일하는 데 있어 큰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각국 대표들은 반 총장의 연설이 끝난 뒤 자리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구테흐스는 “유엔의 이익을 위해 사무총장의 역할을 하겠으며, 어떠한 정부나 기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선서한 뒤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반 총장의 뒤를 따르는 것은 영광”이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유엔에 대한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뿐만 아니라 유엔을 포함한 글로벌 기구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유엔이 결점을 인식하고 일하는 방식을 개혁할 때”라고 말했다.

구테흐스는 특히 관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직원 한 명을 현장에 배치하는 데 9개월이 걸린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유엔은 절차가 아니라 자원 전달에, 관료주의가 아니라 사람에 더 초점을 맞춰 빠르고 효율적인 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의 관료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 총장도 재임 내내 관료주의 극복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관료주의를 뿌리 뽑지 못했다. 유엔엔 아직도 인력 채용에 평균 213일이 걸리는 지독한 관료주의가 만연해있다.

구테흐스는 또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지에서 저지른 성폭행에 대해 “예방과 대응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반 총장으로선 아픈 대목이다.

구테흐스는 특히 “시리아·예멘·남수단 사태에서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오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정, 중재, 그리고 창의적인 외교력”이라며 “나는 분쟁 해결을 위해 개인적으로 간여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분쟁 해결은 반 총장 역시 총력을 기울인 분야다. 그러나 반 총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시리아 사태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구테흐스는 강대국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 시절 제네바의 본부조직을 절반 가까이 줄여 구호 현장으로 파견하는 구조조정을 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테흐스의 유엔’은 ‘반기문의 유엔’과의 결별을 예상케 한다. 그의 개혁은 ‘반기문의 레거시’에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른다.

이날 구테흐스의 연설 동안 회의장에선 여러 차례 박수가 쏟아졌다. 앞서 반 총장 연설 때 연설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던 것과 달랐다.

한편 미국의 외교 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는 반 총장을 ‘2016년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선정했다. 반 총장은 파리기후협정을 체결 1년도 안 돼 발효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으로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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