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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자책

중앙일보 2016.12.14 01:00 경제 11면 지면보기
<16강전 1국> ●·판윈러 5단 ○·신진서 6단

8보(84~90)=지키는 것도 아니고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84는 백의 행마가 곤혹스러워졌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진서는 상변을 지키면서 흑 대마도 공격하는 강수를 두고 싶었을 것인데 그런 수를 찾지 못하고 그 마음만 드러낸 것이다. 한눈에 보이는 백A의 공격은, 호쾌하기는 하나 후속 수단이 없다. 실전처럼 85로 방향을 틀어도 되고 흑B만 두어도 탄력 있는 형태. 결국, 백은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면서 상변의 엷음만 노출하는 꼴이다.

게다가 85면 우변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백 대마도 움직여야 한다. 명백한 백의 작전 실패. 좌변 흑의 진영을 굳혀주고 우하 일대 흑도 크게 부풀려준 대가로 얻은 것은 처절한 실패다. 87은 지키면서 공격하는 겸용의 수. 그래도 88은 지나친 웅크림이다. 야심 찬 모험으로 시도한 공격 실패의 자책이 16세 소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수로는 ‘참고도’ 백1로 좌상귀를 지키는 방향 전환이 낫다. 어차피 중앙은 큰 집을 기대하기 어렵고 살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니까 지금이라도 실리의 격차를 좁혀가야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좌상귀 89가 놓이는 순간 따라잡아야 할 거리가 아득해진다. 입술 깨무는 아픔. 우하귀 90의 붙임은 기습이 아니라 괴로운 마음의 표정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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