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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와 중기] 나이키 패딩에 오리털 대신 ‘솔라볼’…우리가 만들었죠

중앙일보 2016.12.14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기능성 섬유 개발 강소기업 벤텍스
서울 잠실의 벤텍스 본사 3층에 마련된 쇼룸에서 고경찬 대표가 드라이 존·아이스필·메가히트·솔라볼 등 그동안 개발에 성공한 기능성 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서울 잠실의 벤텍스 본사 3층에 마련된 쇼룸에서 고경찬 대표가 드라이 존·아이스필·메가히트·솔라볼 등 그동안 개발에 성공한 기능성 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기능성 섬유 개발·제조업체 벤텍스가 2014년 6월 개발한 ‘솔라볼’(SolarBall)은 패딩 점퍼에 들어가는 충전재로, 태양의 원적외선을 받으면 서로 충돌을 하면서 열을 발생시킨다. 화학섬유로 만든 충전재보다 10도 이상, 오리털보다 6도 이상 따뜻하다. 해가 진 후에는 우리 몸의 원적외선을 이용해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고경찬(55) 벤텍스 대표는 솔라볼을 양산할 공장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이 반대했다. ‘패딩 점퍼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어서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태양 빛 받으면 열 나는 충전재 개발
기술개발 집중 투자, 특허 72건 보유
“박람회 가면 해외 바이어들 줄 서”
수요 급증…내년 매출 200억 늘 듯

고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오리털 충전재가 들어간 패딩 점퍼 한 벌을 만드는 데 35마리의 오리 앞털을 뽑는다. 동물보호 측면에서 솔라볼 패딩 점퍼가 경쟁력이 있다”며 공장 건설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5월 경기도 포천에서 공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옳았다. 내년부터 나이키와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기업이 솔라볼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고 대표는 “SPA와 계약이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기업 이름은 아직 공개하지 못한다. 나이키와 SPA와의 계약으로 우리 회사 매출이 내년에 200억원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자랑했다.

1999년 설립된 벤텍스는 기능성 섬유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레드오션으로 꼽히는 분야에서 기술력을 무기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나이키·아디다스·인비스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벤텍스와 손을 잡고 있다. 2014년 12월 한국 기업 최초로 나이키의 기술 파트너가 됐고, 지난해 9월에는 아디다스의 기술 파트너로 선정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 20여 개국에 지사를 둔 섬유기업 인비스타와 매출의 8%를 러닝 로열티를 받는 수출 계약을 맺어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고 대표는 “우리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며 “해외 섬유 박람회에 가면 해외 바이어들이 1시간 단위로 예약을 해서 우리와 만나려고 줄을 선다”고 말했다.
수분을 한쪽 방향으로 전달해 원단이 빨리 마르는 드라이 존 섬유. [중앙포토]

수분을 한쪽 방향으로 전달해 원단이 빨리 마르는 드라이 존 섬유. [중앙포토]

벤텍스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06년 개발에 성공한 1초 만에 마르는 ‘드라이 존’이다. 이후 땀을 냉매에너지로 전환하는 아이스필(2009), 땀을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메가히트(2011년), 광발열 충전재 솔라볼(2014), 접촉냉감 소재 쿨존(2015) 등의 기능성 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매년 매출액의 5%를 R&D에 투자한 결과다. 고 대표는 “우리 회사 임직원이 모두 60여 명인데, 연구원이 나를 포함해서 12명이다. 창업 이후부터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를 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현재 벤텍스는 72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이어진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컬럼비아와의 소송도 벤텍스를 알리는 기회가 됐다. 컬럼비아는 벤텍스가 개발한 메가히트(체열반사 소재)가 자사의 옴니히트 특허를 침해했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고 대표는 오히려 컬럼비아의 특허가 무효라는 맞소송을 냈다. “컬럼비아의 특허는 유효기간이 끝난 영국 기업의 기존 특허와 동일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컬럼비아는 한국의 대표적인 로펌과 변리사를 선임하면서 벤텍스를 압박했다. 벤텍스에서는 고 대표와 연구원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벤텍스가 특허 무효소송에서 승소를 했다. “소송 결과를 지켜보던 나이키는 우리가 승소한 후에 브라질 리우 올림픽 공식의류로 우리 제품인 아이스필을 채택했다. 특허 소송이 우리 기술력을 해외에서 인정받게 한 계기가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벤텍스의 솔라볼 충전재로 만든 패딩. [중앙포토]

벤텍스의 솔라볼 충전재로 만든 패딩. [중앙포토]

고 대표는 새로운 사업으로 방산 분야를 택했다. 지난 3월 얼굴에 바로 붙이면 되는 위장용 마스크팩을 내놓았다. 이후 화장품과 침낭, 속옷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군에서 사용하는 제품보다 우리 것이 훨씬 가볍고 성능도 좋다. 젊은이들을 위해서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벤텍스의 올해 매출액은 338억원 정도, 지난해보다 46억원이 늘었다. 국내외 매출 비중은 5대 5 정도. 고 대표는 “내년부터 국내외 매출 비중이 2대 8 정도가 될 것 같다. 수출 위주의 기업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대표는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에 입사하면서 기능성 섬유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남들은 레드오션이라고 피하는 섬유 산업 분야에 올인하는 이유에 대해 “블루오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지개를 찾아갈 게 아니라, 엄청나게 큰 시장인 레드오션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글=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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