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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성과연봉제 필요하지만…협의가 먼저다

중앙일보 2016.12.14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기습작전을 연상케 했다. 12일 7개 시중은행(우리·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씨티은행)이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한 것 말이다. 같은 날 일제히 이사회를 개최한 점도 그렇지만 허를 찌르는 타이밍 선정이 절묘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혼란에 휩싸이면서 성과연봉제는 추진동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차기 위원장 선거에 몰두해 있었다.

7개 은행 같은 날 이사회 열고 의결
노조 위원장 선거 시즌에 허 찔러
노사 대치 풀고 협상테이블 앉아야


예고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11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성과주의 정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례적인 이야기인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공동대응은 은행 경영진 입장에선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간 은행은 누가 총대를 메고 먼저 나설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행동에 나서면서 쏟아지는 포화를 나눠 맞게 됐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도 “(이사회) 날짜를 달리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부담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은행장들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와 각 은행에 따르면 이번에 의결한 사항은 ‘2018년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성과연봉제의 세부 내용은 내년 3월까지 각 은행이 내부 논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이후 직원 대상 설명회 등을 거쳐 2018년 1월 1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이사회 의결은 그동안 진전이 없던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의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이사회 의결을 굳이 강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성과연봉제가 시행되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강력히 반발하는 노조가 있다. 농협은행 노조는 이틀째 행장실을 점거했다. 금융노조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혼란을 틈타 불법적 성과연봉제 이사회 의결을 강압했다”면서 임종룡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개별 은행 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전제로 한 협상에는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도 들고 일어날 기세다. 야당에선 성과연봉제를 ‘박근혜표 정책’으로 낙인 찍었다.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노조 기자회견에 동참해 “성과연봉제는 최순실표 재벌 청부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국회가 국정 운영에 주도적으로 나서려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야당의 입장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법원도 변수다. 상반기에 이사회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한 금융공공기관의 경우 노조 측이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사회 단독의 성과연봉제 결정은 노동법 위반이란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성과연봉제 시행은 중단될 수도,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와 노조는 서로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해왔다. 금융위는 “국민 71.1%가 성과연봉제에 찬성했다(5월 한국리서치)”는 점을, 금융노조는 “국민 61%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면 근로자들과 충분한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9월 리얼미터)”는 결과를 강조한다.

이 둘을 합치면 진실이 드러난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되 근로자와 협의하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다. 이러한 민심에 따라 은행권 노사 양측이 대치를 풀고 협상테이블에 앉을 날이 올 수 있을지. 안갯속 정국만큼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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