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 New York Times] 지구촌 뒤흔드는 트럼프의 ‘겁주기’ 외교

중앙일보 2016.12.14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마크 모이어 군사·외교 역사센터(FPI) 의장

마크 모이어
군사·외교 역사센터(FPI) 의장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는 처음으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몰아붙인 연설만큼이나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호주 신문 시드니 모닝헤럴드는 “트럼프와 차이잉원의 통화는 지구촌에 대재앙을 부를 미·중 냉전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기다’라는 헤드라인도 많이 등장했다.

오바마식 유화외교 단호히 거부
‘하나의 중국’ 흔들어 전 세계 충격
동맹국들도 미국 떠나갈까 우려
미국의 향배 주시하며 대비할 때


이는 분명히 실체가 있는 두려움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주문처럼 외치며 외국 정상들을 겁주고 있다. 미군을 증강하겠다는 공약부터 테러집단 ‘이슬람국가’ 퇴치작전, 에어포스원 교체 취소까지 사안 사안마다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식이 있다면 트럼프가 구성한 내각이 지구촌의 미국 공포증을 미국의 국익으로 뒤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8년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국제사회에 두려움을 안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줬다. 오바마는 적국을 구슬리고, 외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한편 해외 주둔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고상한’ 약속을 했다. 오바마가 유럽을 찾아 이런 주제로 연설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덕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이 같은 노력이 현실 세계에 가져온 결과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우선 ‘금지선(red line)’을 넘은 시리아를 응징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러시아·중국 등 미국의 적들이 슬그머니 금지선을 넘도록 허용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끝내겠다”는 약속도 마찬가지다. 이는 바그다드와 카불에 파병한 미국의 동맹국들을 실망시켰고 이란과 파키스탄에 있는 미국의 적들에겐 용기를 줬다. 이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 심각해 오바마는 2014년 이라크에 미군을 재파병해야 했다. 8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전부 철수시키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1945년 이후 미국에 대한 세계의 두려움이나 두려움 부족으로 점철된 국제정치사에서 하나의 장을 차지할 뿐이다. 50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시킨 결과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북한은 곧장 남한을 침략했다. 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국가들이 두려움을 품도록 위협적인 언어를 쓰고 군비지출을 늘려 도발을 막았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참으면 북베트남도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며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는 것으로 존슨의 유화책을 조롱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미친놈’으로 각인시켜 적을 통제하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신봉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 미국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웠다. 공산국가들을 주춤하게 만든 이 정책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미 의회가 남베트남 지원을 철회하면서 소멸됐다.

미국인들은 80년에도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겠다”고 주장한 사람(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요즘은 민주당원들조차 소련을 굴복시킨 레이건의 공을 칭송한다. 그러나 당시엔 대통령에 막 취임한 레이건이 강경·국수주의 외교정책을 밀어붙이자 “쓸데없는 두려움을 조장해 안보정국을 조성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요즘 전 세계 지식인들이 트럼프에게 퍼붓는 비난과 비슷하다.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고 해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반드시 성공하리란 법은 없다. 강경한 언어를 현명하게 구사해야 먹힐 수 있다. 시리아가 ‘금지선’을 넘자 엄포를 놨음에도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실행 가능한 구체적 내용으로 위협을 한정해야 한다.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둔 트럼프는 전 세계가 미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도록 만드는 동시에 존경심도 품을 수 있게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그와 생각이 비슷했던 전임 대통령들은 미국의 적 대신 동맹국들에 두려움을 일으켰다. 미국이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두려움을 불식시키고 동맹국 아닌 적국이 미국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동맹국들도 미국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있다. 미국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아무리 우방이라도 세계 최강대국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우방들이 그런 공포를 느낄 우려가 없다면 그들은 늘 미국이 뒷감당을 해 줄 것이라고 믿고 군비를 삭감하거나 국제사회에서 할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치하에서 이어진 8년간의 외교적 가뭄 끝에 다시 이런 원칙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듯하다. 미국민과 동맹국에는 안도감을 주겠지만 미국의 적들은 두려움을 느껴 마땅할 상황이다.

마크 모이어 군사·외교 역사센터(FPI) 의장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8일 게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