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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불행한 대통령, 불행한 경제

중앙일보 2016.12.14 00:24 종합 34면 지면보기
조민근 경제부 차장

조민근
경제부 차장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요즘 비상이다.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서다. 성장률 전망치는 뚝뚝 떨어지고 미국·중국발 파고는 높아진다. 여기에 두 달간 이어진 정치적 불확실성에 위축된 가계와 기업을 달랠 방안을 내놓으라는 요구도 거세지니 머리가 지끈거릴 만하다.

하지만 당장의 고민거리는 따로 있다. ‘박근혜표’ 창조경제를 어떻게 하느냐다. 지난 4년간 정부 경제정책의 앞자리를 늘 차지하던 브랜드다. 문제는 이를 이끌던 대통령의 리더십은 붕괴했고, 그 이름으로 벌였던 상당수 사업도 ‘최순실 그림자’에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한창 방영 중인 CF의 주연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심하던 관료들 사이에선 “명칭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벤처·문화·서비스 산업 등 제조업을 보완할 먹거리 키우기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 과제다. 그러니 기조를 이어가되 굳이 창조경제라는 포장을 강조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창조경제의 ‘질서 있는 퇴장’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대체 후보로 거론되는 건 ‘4차 산업혁명’ 등이다.

창조경제의 행로는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의 그것을 꼭 빼닮았다. 5년 단임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불행의 성격이 짙다. 다만 이번엔 시효가 빨리 닥쳤을 뿐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장기 과제여서 정권이 바뀐다고 그 중요성이 줄지는 않는다. 하지만 5년 임기에 맞춰 ‘과속’을 하다 보니 부작용이 불거지고, 정권이 바뀌면 곧 폐기되기를 반복한다. 정책의 맥이 뚝뚝 끊기면서 우리 경제가 치러야 할 매몰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다른 맥락에서 불행을 맞은 정책도 있다. ‘증세 없는 복지’다. 이달 초 소득세율 인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했다. 애당초 지속 가능성이 의심스러웠지만 ‘5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택한 우회로에 가까웠다. 결과는 충분한 공감대 형성 과정을 생략한 ‘사실상 증세’, 그리고 광범위한 민심 이반이었다. 올 들어 10월까지 거둬들인 세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조원이 늘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쳐도 4%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세수는 12%가량 증가했다.

불행한 정책이 될 다음 타자는 아마도 ‘피 흘리지 않는 구조조정’일 것이다. 물론 정부가 부여한 공식 명칭은 ‘주력산업 경쟁력 강화’다. 하지만 이 역시 본격적인 수술보다는 마취제만 투여하다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는 쪽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탄핵소추로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의 손으로 넘어갔다. 정치권은 저마다 “이제는 민생”이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한 대통령이 불행한 경제를 만드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선 민생이 편안해질 리 없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제는 ‘미뤄둔 숙제’를 할 때가 됐다.

조민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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