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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정신과 의사 윤대현의 ‘제주 바우식당’ 제주엔 없는 35년 전통 제주 밥상…서울서 만나는 재미

중앙일보 2016.12.14 00:01 12면 지면보기
제주에서 직접 끓여 보내 몸국, 제주산 돼지로 만든 돔베고기.

제주에서 직접 끓여 보낸 몸국, 제주산 돼지로 만든 돔베고기.

제주시청 근처 바우식당의 몸국 사진을 보며 글을 쓰고 있다. 제주 바우식당은 비록 자그마한 가게였지만 같은 자리를 35년이나 지킨 뼈대 있는 맛집이었다. 제주에 갈 때마다 이곳 식당에 들러 몸국 한 그릇을 비운 후에야 비로소 제주도를 잘 음미한 느낌이 들었다. 밑반찬도 훌륭했는데 특히 무나물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몸국이 나오기도 전에 밥 반 공기를 다 비울 정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 다행스럽게도 제주 식당의 주인장 아들이 서울 신사동에 ‘제주 바우식당’이라는 같은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 제주 식당 주인장이었던 어머님이 제주에서 직접 몸국을 끓여 보내준다. 옥돔을 사다 말리고 제주산 돼지고기를 사서 서울로 보내는 것도 어머니 몫이란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몸국을 먹으면 잠시나마 따듯한 식당, 제주 바우식당의 추억에 잠길 수 있다.

몸국은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불린 모자반을 넣어 만든 국이다. 모자반이란 해초의 한 종류인데 제주에서 몸이라 불러 이 국 이름도 몸국이 됐단다. 부끄럽지만 처음엔 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실한 국인가 하고 생각했다. 몸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허했던 몸이 실해 진 느낌을 받으니 나만의 몸국 정의도 나름 이유 있다고 우기고 싶다. 몸국은 돼지고기와 뼈는 물론이고 내장과 수애(순대)까지 삶아낸 국물을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사용한다. 그리고 겨울에 채취해서 말려 놓았던 모자반을 찬물에 불려 염분이 제거되도록 잘 뺀 후 촘촘히 칼질하여 준비한 육수에 끓여 만든다. 돼지고기와 부속물이 줄 수 있는 느끼함을 모자반으로 잘 걸러내 담백한 육수 맛에 해초의 바다 맛까지 곁들어지게 되는 독특한 맛이다.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빠지면 자꾸 생각이 난다. 돼지고기 육수란 말에 처음 먹을 땐 저항감을 보이는 사람도 이내 친숙해지고 또 찾게 된다. 예부터 결혼식 등 제주의 집안 행사 때는 빠지지 않고 만들었단다. 온 마을 사람이 모여 돼지를 잡아 함께 몸국을 끓여 먹으며 마음도 나누고 새로운 에너지도 재충전했던 셈이다.

친구와 함께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면 돔베고기 안주로 시작하여 몸국으로 해장까지, 한자리에서 마치는 코스도 좋다. 돔베고기는 갓 삶은 흑돼지고기 수육을 나무 도마에 얹어 덩어리째 썰어 먹는 음식이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 스타일의 수육인 셈인데 기름기가 적고 고소한 맛이다. 돼지고기 수육에 돼지고기 육수 몸국까지 먹으면 너무 느끼한 조합 아닌가 생각되지만 막상 먹어보면 두 음식 모두 담백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제주도 소주까지 한 병 곁들이면 절친과 우정을 나누는 준비물로는 완벽하다.

과거·현재·미래, 이 중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시점은 언제일까. 당연히 살고 있는 현재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와 과거에 자유롭지 못하다. 생존을 위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인데 과도한 미래에 대한 치중은 걱정과 불안으로 연결된다. 불안이 가득한 마음엔 현재의 만족감이 내려앉지 못한다. 또 부정적인 기억에 후회가 들어 지나치게 과거를 새기는 것도 현재를 비좁게 만든다. 미래를 향한 과도한 걱정은 불안을 만들고 과거에 대한 후회는 우울을 지나치게 만들어 현재의 삶을 불편하게 한다는 얘기다. 과거를 바라볼 때 따뜻하고 긍정적인 느낌이 찾아와야 현재의 만족감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가 만족스러울 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고 필요한 만큼의 위기관리를 위한 미래 걱정을 하게 된다. 현재를 풍성하게 키우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잘라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촉촉한 인생 추억의 기억을 따스하게 유지하는 데부터 시작된다.

과거에 대한 긍정적 느낌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과거의 따뜻한 추억을 재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옛 친구를 만나 마음 나누기, 어렸을 때 행복했던 추억이 있던 곳을 찾아가 그 느낌을 다시 만나 보기 등이 좋은 예이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평범한 지혜에 삶의 행복을 만드는 기술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쁜 현재에 쫓기고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 이렇게 따듯한 과거를 만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나게 달리는 송년회도 좋지만 12월의 하루 정도는 내 과거를 따뜻하게 재생할 수 있는 장소, 사람과의 만남을 계획하는 것은 어떨지. 나도 제주도 바다를 떠올리며 돔베고기와 따뜻한 몸국을 함께 먹을 이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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