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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침실엔 앤디 워홀, 서재엔 마그리트 미술관이 된 집, 집이 된 미술관

중앙일보 2016.12.14 00:01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 일상 속 예술을 지향하는 ‘구하우스’


해외서도 보기 힘든 ‘집’ 콘셉트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상 받은 건축가 만나
독특한 ‘ㄷ자 구조’에 서재·거실 등 재현


데미안 허스트·제프 쿤스·백남준 등
30년 모은 개인 소장품만으로 꾸며
구 대표 “나는 미술관장 아닌 집주인”



 
작은 공연장처럼 반 층 계단으로 공간을 분리시킨 리빙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설치 작품, 톰 딕슨의 파이론 체어와 프랭크 게리의 레드 비버 체어 등을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극구 고사한 구 대표는 카림 라시드의 캐비넷 작품 앞에서 뒷모습만 보여줬다.

작은 공연장처럼 반 층 계단으로 공간을 분리시킨 리빙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설치 작품, 톰 딕슨의 파이론 체어와 프랭크 게리의 레드 비버 체어 등을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극구 고사한 구 대표는 카림 라시드의 캐비넷 작품 앞에서 뒷모습만 보여줬다.

 
미술관이 집이다, 집이 미술관이다. 말장난 같은 두 문장이 환치되는 공간이 있다. 기도 양평군 문호리에 자리한 아트&디자인 뮤지엄 ‘구하우스(KOO HOUSE)’다. 지난 7월 1일 문을 연 이곳은 이름 그대로 '집'을 표방한다. 4628㎡ (1400평) 대지에 자리한 2층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거실·침실·서재 식으로 명명한 10개의 방이 전시실을 대신한다.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양도 분위기도 집의 공간들과 닮아 있다. 가령 2층까지 천고를 높인 서재 한쪽 벽 전체를 책장으로 꾸며놓고 조지 나카시마의 벤치 가구를 두는 식이다. 서도호, 필립 스탁,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 내로라 하는 현대작품 140여 점을 각 방의 색깔에 맞춰 채웠다.해외에서도 보기 힘든 이 특이한 미술관을 만든 이는 ‘디자인포커스’의 구정순 대표다. 그는 KBS·쌍용·카스·국민은행 등 주요 브랜드의 CI를 선보여 온 국내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 30여 년 전부터 모아온 개인 소장품만으로 이 공간을 꾸몄다. 지난달 29일 구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관장이 아니라 집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 작품이 걸려 있는 라이브러리. 찰스&레이 임스의 테이블과 조지 나카시마의 벤치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들이 놓여 있다. 서가의 책 역시 구 대표가 모아온 한정판 디자인·예술 서적들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 작품이 걸려 있는 라이브러리. 찰스&레이 임스의 테이블과 조지 나카시마의 벤치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들이 놓여 있다. 서가의 책 역시 구 대표가 모아온 한정판 디자인·예술 서적들이다


-집 같은 미술관, 색깔이 남다르다.
“원래 디자인도, 글도 콘셉트가 분명해야 한다. 미술관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우리는 의식주 중에서도 여전히 주(住)를 중시하지 않는다. 맛집도 찾고, 럭셔리 브랜드 옷도 사면서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베드 하우스’로 본다. 집이란 게 자꾸 사람이 모이고 머물 일이 생겨야 꾸미고 싶어지는데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의 집을 보여주자고. 구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이 ‘나도 이렇게 집을 꾸며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바람이다.”



-좀 많이 큰 집이긴 하다.
“원래는 청담동에 조그만 땅이 있어 거기에 지으려 했다. 건물도 부쉈다. 하지만 설계가 마음에 안 들어 5번이나 새로 했다.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에게까지 의뢰를 했다. 한참 나중에서야 건축가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땅이 너무 작아서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는 대지 4628㎡(1400평)에, 건물만 1322㎡(400평)다. 콘셉트에 맞는 미술관을 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겠더라.”
 
1층 복도에는 구 대표가 수집한 디자이너들의 블랙체어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천장에 걸린 설치 작품은 다키시구리바야시의 ‘펭귄’.

1층 복도에는 구 대표가 수집한 디자이너들의 블랙체어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천장에 걸린 설치 작품은 다키시구리바야시의 ‘펭귄’.


-그런데 왜 문호리인가.
“가평에 한 20년 전부터 주말에 머무는 시골집이 있었다. 텃밭도 가꾸며 쉬어가고 그랬다. 미술관 자리도 못 잡고 있을 때, 2년 전쯤인가. 우연히 밥 먹으러 이 근처 식당에 왔다. 그런데 식당 안에 냄새가 너무 비릿하게 나서 잠깐 밖에 나왔다. 그때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곳이 여기였다. 위치는 문호리 중심이 분명한데 공터였으니까. 주민한테 물어보니 법정 싸움이 있어 아무것도 못 짓고 있다가 때마침 합의가 됐다고 하더라. 당장 생각하던 모든 걸 중단하고 이 땅을 샀다.”

※구하우스는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의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소장이 건축을 맡았다. 반듯한 사각이 아닌 사선으로 이어지다 곡선으로 마무리되는 건물도 눈길을 끌지만 다양한 형태의 벽돌이 벽면을 감싸면서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내는 ‘픽셀레이션(pixellation)’ 외벽이 누가 봐도 인상적이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패밀리룸. 우치다 시게루의 옵티컬 아트 호리즌틀 등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한데 모았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패밀리룸. 우치다 시게루의 옵티컬 아트 호리즌틀 등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한데 모았다.



-설계를 조민석 소장이 했다.
“누가 건축가를 찾는다면 내가 정말 잘 상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 짓느라 설계비만으로도 빌딩 하나는 날렸다(웃음). 여기도 처음 설계는 퇴짜를 놓고 조 소장한테 다시 의뢰를 했을 정도니까. 어쨌든 그는 진정한 건축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라 진짜 건축가 말이다. 건물을 짓겠다고 맞닥뜨려보니 생각보다 건축을 건축적으로 푸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 공간도 안 나왔는데 파사드에 관심을 두는 식으로 껍데기에 비중을 뒀다. 반면 조 소장은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 깊었고,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나보다 더 많았다. 서로 말이 통하고, 오히려 내가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큐레이팅 할 때도 거의 둘이 같이 했다. 어느 작품을 어디에 둘지를 놓고 서로 고집을 부렸다. 나중에는 농담 삼아 ‘내 작품들이니 돈 내고 하라’고 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을 보고 작품 배치가 달라져있으면 훈수를 둘 정도다.”
 
초상화를 콘셉트로 한 포트레이트룸에서는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 에르빈 올라프의 설치작 ‘더 키홀(The Keyhole)’을 관람할 수 있다. 열쇠 구멍으로 내부 영상을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외관에는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 

초상화를 콘셉트로 한 포트레이트룸에서는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 에르빈 올라프의 설치작 ‘더 키홀(The Keyhole)’을 관람할 수 있다. 열쇠 구멍으로 내부 영상을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외관에는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 


-처음에 건축주로서 요청한 콘셉트는 뭐였나.
“집 같은 미술관, 그거 하나였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건축으로서 어렵다는 걸 과정을 지켜보니 알겠더라. 왜냐하면 집은 공간이 서로 막혀 있는데 여긴 너무 막혀 있어도, 너무 뚫려도 안됐으니 말이다. 구획 나누기에 치중하다 보면 학교나 공장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조금만 트이게 두면 분위기가 안 살고 그랬다. 설계에만 1년, 공사에 1년이 걸렸다.”

 
커다란 ㄷ자 형태로 지어진 구하우스. 중정이 연상되는 작은 마당은 관람 도중 잠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작은 쉼터 역할을 한다.

커다란 ㄷ자 형태로 지어진 구하우스. 중정이 연상되는 작은 마당은 관람 도중 잠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작은 쉼터 역할을 한다.


-해법이 무엇이었나.
“ㄷ자 구조에서 길고 좁은 복도를 축으로 잡고 전개를 해 간 것이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면서도 파티션 같은 구분이 됐다. 거기에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오는 천창을 만든 게 집 같은 요소가 됐다. 건물이 ㄷ자라 중정 같은 마당이 생겼고, 잠깐씩 나가 쉴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 지인들이 와서는 동선이 물 흐르듯 참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구하우스 외관. 청회색 벽돌을 이용한 외관은 빛과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픽셀레이션 효과를 낸다.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구하우스 외관. 청회색 벽돌을 이용한 외관은 빛과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픽셀레이션 효과를 낸다.


-조율까지 건축가와 이견이 많았을 것 같다.
“엄청 싸웠다. 큰 소리도 나고. 그래도 둘 다 뒤끝은 없어서 5분 만에 화해를 하곤 했다. 가끔 내가 뭐라고 하면 조 소장이 ‘나를 믿어라’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난 또 바로 ‘오케이’ 하고 넘어갔다. 나도 고객을 상대하던 사람이라 그 의미를 안다. 그걸 안 해주면 상대를 무시하는 거니 말이다.”



-전시된 모든 작품이 개인 컬렉션이다. 굳이 미술관이라는 공적인 일을 벌인 이유는.
“고1 때였다. 어머니가 불교신자라 스님이 집에 왔다. 내 등을 만지더니 ‘나이가 들면 사회사업을 하겠구나’ 그러더라. 믿거나 말거나인데 왠지 그때부터 ‘무슨 사회사업을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원래는 이탈리아 도무스나 미국 파슨스처럼 디자인 학교를 들여오려 했는데 국내 학제가 꽤 복잡하더라. 그래서 대신 미술관을 떠올렸다. 학교 대신 교육의 장으로 여기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꼬마 손님들이 오는 게 좋다.”



-컬렉션의 양도 질도 대단하다.
“스물 셋에 첫 보너스 20만원을 받아 인사동에 가서 박수근의 펜슬 드로잉을 산 게 시작이었다. 왜 그때 그렇게 사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작품을 고를 때 딱히 이유가 없다. 일단 한눈에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하다. 작가를 모른다면 바이오그래피를 보고 정한다. 그렇게 300~400여 점을 모아 왔다. 지금도 마당에 두면 딱 어울릴 작품을 본 터라 계속 고민이다. 돈도 없는데 4만 유로(약 5000만 원)란다.”



-소장품이 회화보다는 가구나 설치작품이 많다.
“입체적인 걸 워낙 좋아하고, 개념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다. 투자 가치로 따지자면야 회화가 최고인데 말이다. 요즘 화랑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색화도 하나 없다. 다른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걸 뭐 여기까지 와서 보나 싶다.”



-전시품이 소장품의 일부인데 그동안 다 어디다 두고 있었나.
“집에도 놓고, 사무실 지하나 시골집 창고에도 두고, 큰 작품은 아예 사면서 갤러리에 보관을 조건으로 달았다. 너무 여기저기 분산돼 있어서 소재를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 작품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구상했나.
“아니 전혀. 그렇게 된 작품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서재에 있는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이 9m나 돼서 이걸 걸기 위해 천장을 2층까지 튼 것만 예외적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간을 우선으로 두고 난 뒤 작품을 배치했다. 가족이 모두 볼 만한 옵티컬 아트를 거실에 두고, 신체와 관련된 작품을 침실에 놓는 식으로 하니까 딱히 어색한 건 없었다.”

 
손님방으로 기획된 장 프루베 룸. 이곳은 건축가 장 프루베가 1932년 프랑스 낭시의 한 대학교 70개 기숙사 방을 위해 고안했다는 침대·책상·의자·암체어 그리고 선반을 그대로 가져다 두었다. 또한 실제로 투숙이 가능하도록 욕실까지 구비했다.

손님방으로 기획된 장 프루베 룸. 이곳은 건축가 장 프루베가 1932년 프랑스 낭시의 한 대학교 70개 기숙사 방을 위해 고안했다는 침대·책상·의자·암체어 그리고 선반을 그대로 가져다 두었다. 또한 실제로 투숙이 가능하도록 욕실까지 구비했다.


-집 같은 미술관 말고, 실제 사는 집은 어떤가.
“미술관 열기 전에는 이곳하고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개관하면서 서울 집은 아예 없애 버리고 시골집에서 산다. 일주일에 이틀만 서울로 출근하면 되기 때문이다(그는 현재 디자인포커스 오너이자 디자인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오후 5시에 미술관 문 닫으면 6시까지 저녁을 먹고 융(구 대표의 반려견)하고 산책하는 게 일과다. 이렇게만 살아도 참 행복하다. 미술관을 예전 집처럼 이렇게 꾸미고 나니 내가 좀 큰 집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관리를 좀 더 신경 써서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관장이 아니라 집주인인 거다.”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그는 집 같은 미술관, 미술관 같은 집의 의미를 또 다른 의미에서 설명했다. 지극히 개인적이었지만, 가장 진솔한 이야기였다. “회사에서의 나는 늘 고객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을이었다. 만약 여기가 보통 미술관이었다면 비슷했을 거다. 관람객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집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집에 늘 손님이 들끓을 필요가 뭐 있나. 그냥 편안하게 공간을 즐기면 되는 거다.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는 공간, 이것이 집 아닌가.”
 
 
이용정보
● 관람료 :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 관람 시간 : 화~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5시, 토·공휴일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월요일 휴관)
● 위치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 문의 : 031-774-7460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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