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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대한민국 정부 수립 vs 대한민국 수립…쟁점이 된 ‘건국절’

중앙일보 2016.12.14 00:01 Week& 6면 지면보기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 뭐가 문제일까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3종.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3종.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과 집필진을 공개했다.

임시정부 정통성 훼손, 친일파 면죄부 논란 일어
갈등 해결 위해 ‘교과서의 질’ 논의 먼저 진행해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달 23일까지 국민 의견을 듣고 현장에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중·고교에선 1학년 과정에 편성했던 역사 교과를 2학년 이후로 미루는 등의 방식으로 신학기 현장 도입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학생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목소리도 높다. 국정교과서의 도입 추진 배경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신문 속에서 찾아봤다.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

한국의 교과서 발행 체제는 크게 국정·검정·인정의 세 가지로 나뉜다.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발행하는 교과서다. 어떤 과목에 국정교과서가 발행되면 전국의 모든 학교가 같은 교과서로 수업해야 한다.

국정교과서와 상반되는 개념이 검·인정 교과서다. 검정 교과서는 민간에서 개발해 출판한 도서 중 국가의 검정심사에 합격한 교과서를 말한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교과서로서 적합성 등을 심사한다. 인정 교과서는 민간이 개발한 교과용 도서 중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고 시·도교육감이 승인한 교과서를 말한다.

검정교과서를 쓰는 과목이라면 학교별로 검정을 통과한 여러 교과서 중 하나를 채택하게 된다. 인정교과서는 시·도교육청이 승인한 교과서를 채택한다. 단일한 1종의 책을 써야 하는 국정 제도와 달리 검·인정 제도에선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다양한 교과서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1954년 1차 교육과정부터 검·인정 체제로 발행되다 74년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국정으로 전환됐다. 당시에도 국정 교과서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막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 차례 정권 미화 논란을 빚다가 2002년 기존 ‘국사’에서 ‘근현대사’가 분리되면서 중학교와 고교 국사교과서는 국정 체제를 유지하고, 고교 한국 근현대사는 검정으로 발행하게 됐다. 2010년 국정이었던 국사와 검정이었던 근현대사가 ‘한국사’로 통합되면서 검정체제로 통일됐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교육부는 2017학년도부터 중학교 역사 1·2와 고등학교 한국사 3종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하고 교과서 개발을 진행해왔다.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대립된 시선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진영의 사회적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4년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엔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우편향 논란이 불거졌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된 원인은 학계와 정치권에 근현대사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은 각각 상대방의 역사관을 ‘좌편향·친북’ ‘친일·독재 미화’라고 비난한다.

보수 진영은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북한에는 관대하게 기술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는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국가정체성을 갖추는 데 도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역사 교육이 다양성의 원칙 아래 창의적 사고를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가치를 접하고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를 기르기에는 하나의 역사 해석만을 강조하는 획일적 역사의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현대사엔 두 가지 줄기가 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합작’ 운동을 제치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성사시켰다. 일부 군인이 5.16 쿠테타를 일으켜 국가 주도의 근대화 작업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했다.

또 다른 흐름은 자유·인권·민주화를 위한 흐름이다. 1960년 4.19 혁명은 부정선거 독재정권을 무너뜨렸고,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은 신군부의 강압에 항거했고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민주화의 새 장을 열었다.

올바른 교과서라면 두 흐름을 균형 있게 배치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국정화 방침을 통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공개하자 다시 논란이 재연됐다.

특히 건국절 논란은 최대 쟁점이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표현대로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정희 정부의 과(過)보다 경제성장 등 공(功)을 과도하게 쓴 것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역사학계·교육감·시민단체·교원단체들은 국정교과서를 폐기하라고 반발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한 교과서는

교과서가 이념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국정으로 발행돼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가 발행하는 획일적 교과서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질식시킬 수 있어 검정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교과서 발행제도, 역사 해석에 대한 정치권·학계의 뜨거운 관심에 비해 정작 교과서의 질, 역사 수업의 개선에 대한 논의는 소홀한 편이다.

교과서 수렁에서 탈출하려면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해법은 최고의 품질, 최고의 품격을 갖춘 콘텐트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엔 정작 ‘교육 선진국처럼 질 좋은 교과서를 제공해달라’는 학생·학부모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유럽 학교가 교과서로 사용하는 교재는 참고서가 필요 없을 만큼 학생의 흥미를 끄는 풍성한 정보와 볼거리를 담고 있다.

일선 교사 사이에선 역사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선 수능을 위해 교과서 대신 EBS교재를 외우는 데에만 열중하는 일선 학교 수업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교과서 논쟁은 이같은 교육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말다툼이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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