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테이스트] 원칙 지키며 한국식 변주 …7만원 코스의 단아한 맛

중앙일보 2016.12.14 00:01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 가이세키, 미쉐린 3스타 VS 가성비 만점

가이세키(會席·회석) 요리는 일본 요리의 꽃으로 불린다. 원래는 일본 다도(茶道)에서 유래했지만 현재는 10가지 안팎의 코스로 진행되는 고급 연회식 요리로 자리 잡았다. 정성스러운 준비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한 플레이팅, 이에 값하는 높은 가격으로 명성이 높다. 식재료의 종류, 조리 방법은 물론이고 계절마다 특징을 살리는 그릇이 다 달라서 유명 가이세키 요리집엔 식당 만한 크기의 그릇 창고가 따로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롯데호텔서울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교토 깃쵸(吉兆)‘ 오너 셰프를 초대해 미식회를 열었다. 교토 깃쵸는 1930년 개업해 현재까지 3대째 걸쳐 운영 중인 미쉐린 3스타 가이세키 레스토랑으로 이곳의 코스요리는 보통 4만3200엔(약 47만원)부터 시작한다. 이 정도 고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에도 질 좋은 식재료로 즐길 수 있는 가이세키 전문점들이 있다. 올 5월 삼성동에 문을 연 ‘소우게츠(そう月)’는 한 명이라도 더 가이세키의 매력을 맛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코스 가격을 10만원 이하로 구성했다고 한다. 가격부터 플레이팅, 분위기까지 다르지만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두 음식점의 요리와 요리사들의 철학을 살펴봤다.
 
색·구성이 다양한 메뉴와 그릇으로 눈이 먼저 즐거운 소우게츠의 ‘핫슨’ 플레이팅(전체 2인분). (왼쪽부터 시계방향)생선 튀김, 달걀 반숙, 참나물·버섯, 제주산 귤로 감싼 고등어초밥, 토마토 절임, 생강으로 만든 젤리 소스와 돈부리를 올린 아귀간, 치자로 색을 살린 밤구이, 고구마 샐러드. 김경록 기자

색·구성이 다양한 메뉴와 그릇으로 눈이 먼저 즐거운 소우게츠의 ‘핫슨’ 플레이팅(전체 2인분). (왼쪽부터 시계방향)생선 튀김, 달걀 반숙, 참나물·버섯, 제주산 귤로 감싼 고등어초밥, 토마토 절임, 생강으로 만든 젤리 소스와 돈부리를 올린 아귀간, 치자로 색을 살린 밤구이, 고구마 샐러드. 김경록 기자


한국 ‘소우게츠’

재료비 아끼지 않고, 인건비 줄여 가격 낮춰
오왕·핫슨 등 10가지 코스 전통 지키고
한국인 취향 맞게 생선회·튀김 수 늘려


 
소우게츠의 문승주 오너 셰프.

소우게츠의 문승주 오너 셰프.

서울은 가이세키 전문점이 드물다. 일식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가이세키 전문점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코스가 있는 일식집을 추천한다(일식집의 코스 요리는 넓은 의미에서 가이세키로 분류된다). 이런 가운데 올 5월 삼성동에 문을 연 ‘소우게츠(そう月)’는 처음부터 가이세키 전문점을 지향하며 입소문이 났다. 선정릉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에 자리해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선 알기 힘들지만 30여석의 좌석은 이른 저녁부터 손님들로 꽉 채워진단다.

지난 2일 오후 소우게츠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너 셰프인 문승주(31)씨와 신현도(28)·정무영(27) 셰프가 반갑게 맞아줬다. 고급 일식집이라기보다는 부담 없이 요리와 술 한 잔 할 수 있는 이자카야에 온 듯했다. 코스 메뉴는 7만·9만원 2가지로 단출하다. 촬영팀은 저렴한 7만원짜리 코스를 주문했다.
간 무와 마를 올려 하얗게 쌓인 눈을 표현한 석화 요리.

간 무와 마를 올려 하얗게 쌓인 눈을 표현한 석화 요리.


제철을 맞아 통통하게 살이 오른 석화엔 노란색·초록색 잎을 올렸다. 연근을 갈아 떡처럼 만든 렌모찌 위엔 성게알을 올리고 얇게 썬 연근을 접어 장식으로 활용했다. 광어·참치·연어·삼치 등이 푸짐하게 담긴 생선회가 잇따라 나왔다. 참치 위엔 달걀노른자를 올려 소스 역할을 하는 동시에 풍부한 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플레이팅은 전체적으로 화려함보다는 정제된 느낌이다.
가지구이 위에 김과 성게 알을 올린 성게집.

가지구이 위에 김과 성게 알을 올린 성게집.


그러나 입 안에 음식을 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다양한 식감과 다채로운 맛이 났다. 갈수록 기대감도 커졌다. 이때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한 코스가 나왔다. 한쪽 면이 귤로 덮인 고등어 초밥, 생강 소스를 올린 아귀 간, 노란색이 식욕을 자극하는 반숙 달걀과 구운 알밤, 방울토마토 절임이 기다란 접시에 그림처럼 담겨 나왔다. 가이세키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핫슨’이다. 제철인 방어 샤브샤브와 지라시 스시로 배를 채우고 나니 달콤한 단팥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10가지 코스를 다 먹고 나니 ‘이 가격에 어떻게 이런 차림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문 셰프는 “가게 문턱을 낮춰 한 명이라도 더 가이세키를 맛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코스 가격을 10만원 이하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초밥에 참치회·새우·연어알·연근을 올린 지라시스시.

초밥에 참치회·새우·연어알·연근을 올린 지라시 스시.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가게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고급 요리는 서비스가 기본. 때문에 가이세키 전문점은 개별 테이블을 책임지는 종업원의 수가 많다. 소우게츠는 문 오너 셰프까지 직원이 4명뿐이다. 대신 카운터와 테이블을 ㄱ자로 배치해 동선을 최소화했다. 일식집이면 반드시 있는 룸을 없애고 카운터와 테이블 좌석만 뒀다. 손님이 어느 자리에 있어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원활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단순했다. 눈길을 끄는 장식도 없다. 입구 정면에 가이세키에 꼭 필요한 그릇을 모아둔 수납장뿐이다. 인테리어 비용도 결국 요리 가격에 포함돼 고객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도도 있다. 가게에 오는 손님이 내부 장식이 아닌 자신의 요리에만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문 셰프는 “자잘한 일본 소품으로 일본 식당 분위기를 내기보다 음식을 맛보았을 때 비로소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길 바랐다”고 말했다. 가게가 선정릉 옆길에 있어 창밖으로 자연의 사계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니 별도의 내부 장식이 필요 없는 것도 맞다.
 
가쓰오부시·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잘게 자른 버섯을 넣은 샤브샤브용 국물.

가쓰오부시·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잘게 자른 버섯을 넣은 샤브샤브용 국물.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그는 일본 전통 가이세키의 원칙을 지킨다. 먼저 코스 구성이다. 소우게츠는 오왕·생선회·핫슨을 코스에 꼭 넣는다. 가이세키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들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국물 요리인 오왕은 반드시 다시(가쓰오부시·다시마 등을 넣고 끓여 감칠맛을 낸 일본식 육수) 국물을 내서 만든다. 셰프의 요리 실력과 화려함, 계절감을 보여주는 핫슨도 빼놓지 않는다. 일본 맛을 그대로 내기 위해 신선함이 중요한 생선과 채소·과일을 제외한 간장·미림·가쓰오부시 같은 공산품은 일본산만 쓴다. 가이세키의 특징인 계절적인 느낌도 음식으로 살린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은 겨울엔 맑은 국물에 소량의 전분을 풀고 제철인 순무를 넣어서 마치 눈보라가 치는 것 같은 국물 요리를 낸다.

대부분의 가이세키 셰프는 자신만의 또는 가게만의 그릇을 사용한다. 문 셰프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홍두영 작가에게 의뢰해 소우게츠만의 그릇을 만들었다. 사케는 30종을 갖추고 있는데 이중엔 초카라구치처럼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사케도 있다. 5만원의 추가 요금을 내면 4종의 사케를 한 잔씩 마실 수 있게 페어링해준다.

한국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타협한 요소도 있다. 일본에선 2~3종류의 생선회를 2점씩, 총 4~6점의 생선회를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문 셰프는 3~5종류의 생선을 3점씩 내놓는다. ‘일식=생선회’라는 인식이 강해서 생선회를 조금 내놓으면 아쉬워하는 손님들이 많다. 저녁에 술안주로 즐길 수 있도록 핫슨을 단품 메뉴로도 구비해뒀다. 일본에서는 즐겨먹는 채소 찜은 한국에선 선호하지 않아 조림을 대신 내놓기도 한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문 셰프는 5년 전인 2011년 일본 츠지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탈리안 요리사를 꿈꾸던 그는 2012년 가을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방문한 오사카 ‘아지킷초(미쉐린(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가이세키 요리를 처음 접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죠. 계절이 느껴지는 요리와 일본 술, 그릇의 조화를 보며 감동을 느꼈어요.” 아지킷초를 찾아가 받아달라고 조른 끝에 3년간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4월 한국에 돌아온 그가 할 수 있는 선택도 가이세키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된 가이세키를 선보이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겨요. 요리를 한 입 맛보고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가이세키 요리란?
 
가이세키의 구성과 가짓수는 지역 혹은 식당·료칸마다 다르다. 대체로 1즙3채(一汁三菜), 1즙5채, 2즙5채 등인데 여기서 즙은 국이고 채는 반찬이다.
1즙3채라면 국과 사시미·구이·조림으로 구성된 상차림이다. 오늘날 규모 있는 식당의 가이세키 코스는 10가지 안팎으로 일부 순서가 바뀌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①사키즈케(先付け·입맛을 돋우는 첫 음식) ②젠사이(前菜·전채) ③스이모노(吸物·맑은 국) ④오츠쿠리(お造り·생선회) ⑤야키모노(燒物·구이요리) ⑥니모노(煮物·조림요리) ⑦아게모노(揚物·튀김요리) ⑧무시모노(蒸物·찜요리) ⑨스노모노(酢の物·초무침) ⑩식사(食事) ⑪디저트(甘味)
두 번째 코스인 젠사이로는 종종 핫슨(八寸)이 들어간다. 원래 핫슨은 다도의 가이세키에서 술안주로 나오는 마지막 요리로 접시의 가로 세로가 모두 26.4㎝(핫슨·八寸)이라 이렇게 불렀다.
접시 규격과는 상관없이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계절감을 살려 한 접시에 담아내는 요리’로 이해되고 있다. 도움말 『이것이 일본요리다』(안효주 스시효 셰프, 여백미디어)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