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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현장 클릭] “홀로그램·나일론 직접 만들어 봤죠” …과학 수업이 즐거워졌다

중앙일보 2016.12.14 00:01 Week& 3면 지면보기
지난달 치른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의 응시 비율은 44%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치로, 2011년 31.9%에 비하면 1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2007년 이후 점점 줄어들던 수능 이과 응시생 비율은 2011년을 기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공계 학과를 졸업해야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암기식 수업 대신 학생 참여형 실험 진행
과학 이슈 토론, 대입 논술 돕는 글쓰기도
학생들 “실험 하며 과학에 대한 흥미 커져”

하지만 몇몇 학생은 적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이과반을 선택해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특히 과학 과목을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서울 중동고의 ‘사이언스 스토리텔링’수업처럼 수업 방법을 조금만 바꿔도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즐거운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중동고 ‘사이언스 스토리텔링’ 수업
서울 중동고 2학년 학생들이 지난 6일 나일론 합성 실험에 필요한 증류수와 헥세인을 피펫을 이용해 비커로 옮기고 있다. 김춘식 기자

서울 중동고 2학년 학생들이 지난 6일 나일론 합성 실험에 필요한 증류수와 헥세인을 피펫을 이용해 비커로 옮기고 있다. 김춘식 기자

“양말·스타킹·셔츠의 재료로 사용되는 나일론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합성섬유예요. 오늘은 나일론을 합성하는 실험을 할 거예요.”

6일 오전 중동고 화학실. 이수영 중동고 화학교사가 학생들에게 얘기하자 몇몇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교사가 소개하는 실험 준비물 중에 나일론이 될만한 고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눈치챈 이 교사는 갈색병과 하얀통을 높이 들며 “염화세바코일과 헥사메틸렌다이아민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나일론을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 방식은 간단했다. 헥세인 25ml가 담긴 큰 비커와 증류수 25ml가 담긴 작은 비커에 각각 염화세바코일 0.5ml와 헥사메틸렌다이아민 1g을 넣고 녹이면 1단계는 끝난다. 이후 작은 비커를 큰 비커 벽면을 따라 천천히 부으면 나일론이 만들어진다. 얼핏 보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만지면 탄력이 느껴졌다. 중동고 2학년 정윤호군은 “우리가 입는 옷의 재료를 이렇게 간단한 실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중동고는 지난해 1학기부터 창의적체험활동의 일환으로 사이언스 스토리텔링 수업을 개설했다. 정규수업이 교과서 중심의 이론수업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 수업은 교과서나 교재가 없다. 교사가 매번 나눠주는 유인물이 전부다. 하지만 실험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진행하다보니 학생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 교사는 고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면서 모든 학생이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유년시절에 과학 관련 도서를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던 학생도 고등학교에선 대입을 위한 암기식 공부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이었다.

대부분 자신의 흥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물화생지’(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중 쉽다고 여기는 과목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교사는 “과학은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많은 학생이 과학을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껴 안타까웠다”며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게 돕고,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는 게 이 수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생활과 연관된 실험을 진행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번 학기엔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홀로그램을 만드는 실험 등을 진행했다. 중동고 2학년 한지헌 학생은 “홀로그램 만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첨단기술 같았던 홀로그램을 가위·풀·셀로판지 등을 이용해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한군은 “일상생활과 연관된 실험을 하니 과학에 대한 흥미도 커졌다”며 “실험을 거듭하다보니 어려워 보이는 과학 개념도 원리를 파악해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험 뿐만 아니라 토론·글쓰기도 자주 한다. 극지방 개발, 원자력발전처럼 민감한 과학계의 이슈를 놓고 찬성·반대 입장으로 나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식이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대입 과학탐구 논술을 연습하는 준비도 된다. 이 교사는 “이과반 학생 중에는 논문을 쓸 정도로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도 말이나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이 꽤 많다. 과학 지식을 잘 이해하고 응용하는 능력만큼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글쓰기 수업에도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미국드라마를 보면서 영상 속에 등장하는 과학개념을 익히는 시간도 있다. 2학년 김재환군은 수업 때 본 미국드라마에 등장했던 산성과 염기성에 대한 화학 개념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김군은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화학 개념이 포함돼 있어 그런지 단순한 실험 영상을 보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며 “이후에 학교 수업시간에 배울 때도 관련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50분 동안 진행하는 수업을 위해 4시간 이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교사는 “평가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 조금만 지루해도 학생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고충을 밝혔다. 그는 “수업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유인물을 제작하다보면 5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지만, 과학에 흥미를 되찾는 학생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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