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버스토리] 가장 먼‘가장’ vs 가장 가까운 ‘친구’ …달라진 아버지

중앙일보 2016.12.14 00:01 강남통신 1면 지면보기
| 과거 vs 현재…달라진 아버지상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 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 ‘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 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 ‘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평일 퇴근 후 아이들과 뒹굴며 책을 본다. 아이들은 고민이 생기면 달려와 속내를 털어 놓는다. 2016년 ‘아빠’의 모습이다. 술에 쩔어 아이들 잠든 후에나 집에 들어가고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혼자 TV보며 잠이나 자던 과거의 ‘아버지’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 시대의 남자, ‘아빠’를 조명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늘 표현한다.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틈만 나면 안아준다. 주말에는 함께 뒹굴며 책을 보고 평일 에도 하루 한 시간은 꼭 얼굴을 마주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묻는다. 또 다른 엄마 혹은 친구. 오늘의 ‘아빠’다. [사진 전준범]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늘 표현한다.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틈만 나면 안아준다. 주말에는 함께 뒹굴며 책을 보고 평일 에도 하루 한 시간은 꼭 얼굴을 마주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묻는다. 또 다른 엄마 혹은 친구. 오늘의 ‘아빠’다. [사진 전준범]




어디에도 없었던 아버지가 어디에나 함께 있는 아빠로

 


80년대 아버지는 엄하고 무뚝뚝한 존재
이젠 가족에 친근하고 자상하게 다가가
“내 아이에게 친구 같고, 형 같은 존재이길”


맞벌이 늘어나며 육아 함께하는 남성 증가
엄마 대신 아빠를 모델로 한 광고도 많아져
아이들 “아빠는 따뜻하고 믿음직스럽다”



스칸디대디(스칸디나비아+대디), 프렌디(프렌드+대디), 플대디(플레이+대디). 모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지만 자녀를 위해 무작정 자신을 희생하지는 않는 아빠를 일컫는 단어들이다. 최근 몇 년 새 이런 신조어가 속속 생기는 건 실제로 아빠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아빠’란 단어 속엔 가족부양을 책임지는 가장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젠 그보다 때론 엄마처럼 따뜻하게, 때론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2016년 지금, 달라진 아빠의 모습을 살펴봤다.

 
화두로 떠오른 ‘아빠’
집안의 기둥이자 중심. 언제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위치는 사실상 돈만 벌어다 주는 비주류 같은 신세였다. 가족과 소통하며 공유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엄마와 자녀 사이만큼 가까울 수가 없었고, 대화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랬던 아버지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아예 관심사에서 비껴나 있던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의 주목을 받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언급되는 양만 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SK플래닛의 소셜분석시스템 ‘빈즈 3.0’을 통해 2014~2016년 온라인 데이터(뉴스·SNS·블로그·카페)를 분석한 결과 아빠 관련 문서 비중은 전년대비 2015년엔 12.2%가, 올해는 19.8%가 늘었다. 전보다 훨씬 자주 아빠라는 존재를 언급한다는 얘기다. 더욱 주목할만한 건 아빠와 관련한 긍정어·부정어 분석이다. ‘아빠’라는 단어가 쓰일 때는 긍정적 감성을 나타내는 사랑·친구·미소’ 같은 단어가 부정적 감성을 내포한 단어(걱정)보다 훨씬 자주 언급됐다.

아빠를 상품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자주 나오는 것만 봐도 ‘아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화장품에서부터 스낵류까지, 과거엔 모두 엄마의 영역으로 인식했던 상품 전면에 아빠가 등장한다. 과거에 ‘엄마’를 내세워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지만 이제 ‘아빠’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얘기다. 아빠가 만들어 안전하다는 것을 내세운 화장품 ‘파파레서피’의 팩은 지난해 1억5000만 개나 팔렸다. 변질 위험이 적어 안전하다는 걸 아빠를 내세워 강조한 ‘아빠가 만든 치약’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기존 제품 마케팅을 아빠 콘셉트로 바꾸는 것만으로 매출이 껑충 뛴 사례(롯데제과 커스터드)도 있다.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호감도가 높지 않고선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김상용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엄마의 상징이었던 안전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아빠에게로 옮겨갔다”며 “아빠를 바라보는 신뢰와 호감도가 상품에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아빠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업체들이 발 빠르게 캐치했다는 것이다. “과거 엄마·아내와 주로 연결됐던 제품에 아빠를 연결해 제품을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경미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무리 젠더 벤딩(특정 성별이 사용하는 제품을 다른 성별과 연결하는 것)이라해도 이런 시도의 바탕에는 집안일과 양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아빠를 전면에 내세운 대드버타이징(대디와 애드버타이징의 합성어) 광고에서 요즘 아빠들의 역할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과거 광고에 등장했던 어렵고 무뚝뚝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해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던 아버지상 대신 이젠 다정하고 친근한 아빠가 등장한다. 어린 아들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고(핫초코 미떼), 동네 작은 숲에서 아이와 뛰어놀고(유한킴벌리), 직접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의 젖병을 삶고 청소를 한다(LG유플러스). 돈 버는 것 말고는 집안일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엄마가 해줬던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고,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아빠가 밖에 나가 아이들과 뛰어논다. 불과 2년 전인 2014년만해도 택배기사 아빠가 딸의 체면을 위해 모르는 사람인 척 한다든지(박카스), 신입사원이 된 딸이 회사생활을 해본 후에야 이런 어려움 견뎌내는 직장 선배로서의 아버지에게 감사를 느낀다(동원참치)는 식으로 그려졌던 아버지 상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핫초코 미떼’와 ‘오레오’ 광고에 아빠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동서식품의 김상욱 홍보팀 대리는 “겨울이라 가족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었다”며 “전형적 이미지의 엄마에서 아빠로 바꿨더니 소비자들이 새롭고 재미있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이송재 SK플래닛 M&C부문 광고기획팀장은 “최근 광고에는 아버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가 아닌, 아이와 놀고 집안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빠의 역할이 도드라진다”고 했다.

 
달라진 아빠의 모습은 최근 TV 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광고 속 아빠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함께 노느라 바쁘다. 위로부터 ‘핫초코 미떼’ ‘유한킴벌리’ ‘오레오’.

달라진 아빠의 모습은 최근 TV 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광고 속 아빠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함께 노느라 바쁘다. 위로부터 ‘핫초코 미떼’ ‘유한킴벌리’ ‘오레오’.



 
아빠를 보는 달라진 시선
혹시 미디어가 그린 이상적인 아빠의 모습은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이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을 알아봤다. 지난 5~6일 중앙일보 소년중앙·TONG의 초중생 기자단 50명을 대상으로 ‘아빠’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무려 42명이 ‘고민을 아빠와 나눌 수 있다’고 답할 만큼 모두 아빠를 가깝게 여겼다. 이 밖에도 ‘나에게 관심이 많다’ ‘믿음직스럽다’ ‘따뜻하다’ ‘친구 같다’ 등 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송혜린(언동중2) 양은 “아빠가 나에게 관심이 많다”며 “요즘은 아빠와 진로나 학업에 대한 대화를 주로 하는데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큰 변화다. 1998년 최명선 아동청소년상담센터 맑음 소장이 초등생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만 해도 가장 많은 답변이 ‘힘들어 보인다’(38%)였다. 그 다음으로 ‘불안해 보이고 걱정을 많이 한다’(22%),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잠을 못 잔다’(9%) 순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도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다’ ‘엄마와 자주 싸운다’는 부정적 대답이 나오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최 소장은 “90년대 말엔 현대적 교육을 받았지만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들이 대부분이라 지금처럼 가족에게 살갑게 대하는 아버지가 많지 않았다”며 “지금은 매스컴과 교육의 영향으로 아빠 스스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그 결과 아이들이 아빠를 가깝게 여기게 된 것”라고 분석했다.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김태욱(45) 부장은 퇴근 후 1시간은 꼭 7살 아들과 총싸움이나 운동을 하며 논다. 그는 “회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더 중요한 시대”라며 “예전 아버지들은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은 이미지였지만, 난 우리 아들에게 친구 같고 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0살 딸 아이와 늘 주말을 함께 보낸다는 이동현(45) 더플라자 마케팅사업부장도 비슷하다. “내 아버지는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였다. 잘못하면 매도 드셨는데 어릴 때 그게 참 싫었다. 당신의 사랑하는 방식이었다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싫은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난 내 아이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주고 싶다.”

아빠의 역할 변화엔 개인의 노력 외에도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사회환경,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려면 가족과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영향을 준 측면도 있다.

실제로 아빠들은 스스로 육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엄마의 부재’로 꼽는다. 시장조사회사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이 2014년 기혼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 아빠들은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좋다’(56.%)거나, ‘아이가 너무 예뻐서’(38.7%)란 답도 했지만 상당수가 ‘엄마도 일을 해야 해서’(32.9%), ‘엄마가 너무 바빠서’(12.3%)를 육아의 이유로 답했다. ‘아빠도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45.4%)라거나 ‘주변 아빠들과 비교 당해서’(9.2%)라는 답도 많았다. 좋은 아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떠밀려 육아에 관심을 가지는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맞벌이 부부인 전준범(34)씨도 그런 경우다. 자신의 회사 내에 어린이집이 있어 매일 6살 아들, 4살 딸과 함께 출근한다. “전엔 아빠가 자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아빠 엄마 역할이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어 쉽지 않았다”며 “지금 맞벌이를 하려면 (아빠인 나까지) 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긴 해도 아이들과 하는 시간이 많으니 아이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이상호(44) LF 홍보팀 차장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지 아이와 함께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요즘은 육아를 도와준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했다. 엄마가 했던 육아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내 일로 여기고 함께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사회적 환경 때문이든 자발적인 노력의 결과든 최명선 소장의 말처럼 요즘 아빠들은 자상한 모성적 이미지와 친구·상담자 같은 이미지가 더해져 양성적 존재가 됐다. 9딸 리안이와 15개국 이상을 여행한 김태식 체코 마사릭대 교수는 “때로는 아이에 맞게, 때로는 아내에 맞게, 또 때로는 나에게 맞게 그때그때 다른 관계가 설정되는 느낌”이라며 “상황에 따라 아빠가 되기도, 엄마가 되기도, 또 친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슈퍼맨이 되라고?
라디오 작가 이재국 씨가 딸과 함께 보낸시간을 쓴 `아빠 왔다`(왼쪽)와 `볼드저널`.

라디오 작가 이재국 씨가 딸과 함께 보낸시간을 쓴 `아빠 왔다`(왼쪽)와 `볼드저널`.

‘자상한 아빠’ 흐름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낀 세대’ 아빠들은 어깨가 무겁다. 딸과의 에피소드를 모아 『아빠 왔다』라는 책을 낸 이재국 라디오 작가는 “가족과 동떨어져 완고하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보고 컸는데 내 아이는 나에게 친구처럼 놀아주길 원한다”며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도 마땅한 롤모델이 없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아빠인 이종형 tvN PD도 “우리가 어릴 땐 아버지가 잘 놀아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관심을 줘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일보다는 가족, 먼 미래보다는 현재의 행복에 더 충실한 60~70년대생에겐 난감한 상황인 셈이다. ‘아빠인 남자를 위한 잡지’라는 콘셉트의 계간지 ‘볼드 저널’을 만든 김치호 대표는 좋은 아빠,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직접 남성 육아잡지를 만들었다.

김상용 고려대 교수는 “자상한 친구 같은 존재,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는 존재, 심지어 바깥 일과 집안일 모두를 잘하는 ‘슈퍼맨’을 이 시대가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남성들이 사회에서와 집에서 모두 완벽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됐다는 주장이다.

한편에선 남성 스스로 성공적인 삶에 대한 기준이 바뀐 것일뿐이라고 말한다. 장재숙 동국대 가정교육과 교수는 “남성들이 사회적인 성공보다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걸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화목한 가정이 성공의 척도가 되니 과거의 가장(家長) 상이었던 경제적인 능력을 충실히 이행하는 아빠보다는 적극적인 가정 활동 참여자로서의 아빠를 더 높게 평가하게 됐다는 얘기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남자는 무엇인가』에서 공감과 소통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짜 남자라고 말한다. 남자도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바꾸며 변화하고 있는 요즘 아빠들, 이들 모두 이 시대의 ‘진짜 남자’가 아닐까.

 


윤경희 기자·오준엽 인턴기자 anni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