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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우리에게 ‘세월호 7시간’이란 ···

중앙일보 2016.12.13 19: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소인혁면(小人革面)’.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된 직후 떠오른 말은 유감스럽게도 이거였다. 주역(周易)에서 혁명과 변혁의 괘인 택화(澤火) 혁(革)을 은유하는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과 대비시키는 말. 호변과 표변은 호랑이와 표범이 가을 털갈이 후 퇴색한 털을 벗어버리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과 문양을 드러내는 것처럼 대인과 군자가 변혁할 땐 뚜렷하고 명확하게 일신한다는 뜻이다. 반면 혁면은 소인배가 시류에 따라 얼굴색만 고치고 바뀐 척하는 걸 이른다.

탄핵표결 놓고 세월호 흥정한 여당
생명권 존중 의무 각성하고 있는가


새누리당 최소 62명의 찬성표에도 평가가 인색한 이유는 표결을 앞두고 벌였던 ‘세월호 7시간 밀땅’에 대한 고까움이 풀어지지 않은 탓이다. 대통령 올림머리 보도가 없었다면 이로 인해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았다면 세월호 7시간은 탄핵안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 올림머리 보도 이전까지 새누리당 비박계는 “세월호 7시간을 넣으면 의결정족수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며 야당과 흥정을 했다. 국민 304명의 생명이 무능한 정부 대처로 허무하게 수장된 세월호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새누리당이 그동안 견지했던 태도는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이 마당에도 ‘회피의 습성’을 재현했다. 국민들이 느끼는 ‘세월호 7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정말 몰라서일까.

국민이 원하는 건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성형시술 혹은 의상에 맞춘 바람머리 연출 의혹을 밝혀내 조롱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에게 과연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감수성과 경각심’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다. 국가 존재의 대전제인 ‘헌정질서의 실현’ 차원에서도 국가는 헌법이 규정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 시간에 망치라도 들고 가서 창문을 깨고 아이들을 구했어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일부 극우 인사들의 발언처럼 직접 물속에 뛰어들어 구해 오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는 관료에게 ‘전염’된다. 그래서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국민 생명권에 대해 예민하게 굴어야 해바라기 관료들도 부지런히 하는 척이라도 한다는 얘기다.

한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통령에게서 국민 생명 존중과 보호에 대한 자각과 각성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 단서는 많다. “지지도 상승 국면에서 맞닥뜨린 여객선 사고 악재가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2014년 국정원에서 작성했다는 청와대 내부 문건 내용이다. 국민들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 지지도의 상승세가 꺾인 게 큰 일이라는 인식. 그런가 하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노력을 방해하고 왜곡하려 했던 수많은 장면들.

박근혜 정권이 집권한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지 수없이 의문을 품어 왔다.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청문회에서 시위과정에 물대포를 맞고 목숨을 잃은 백남기 농민을 두고 한 발언이다.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 의무감 정도는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경찰 수장조차 ‘국민 생명도 선별적으로 보호한다’는 생명경시풍조에 전염돼 있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는 정부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비밀주의로 국민들 안녕이 위협당했고, 반복되는 안전사고에도 “앞으로…”라는 수사학만 난무했다. 우리는 일선 관료 조직까지 ‘생명경시풍조’가 마구 퍼져나갔던 출발점에 ‘세월호 7시간’이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실상을 반드시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훗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국정농단, 부정부패, 생명권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혐의는 특검과 헌재에서 단죄해줄 거라고 기대한다. 촛불 정국으로 그나마 정치권 ‘좀비세력’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것도 다행이다. 하나 문제는 남았다. 혁면하고 표변한 척하는 간사한 무리를 견제하는 일. 여야 정치인, 관료를 막론하고 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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