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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과 기업가 정신④ - 2014년 물리학상, 나카무라 슈지 -

중앙일보 2016.12.13 00:46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어느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하자 시민은 LED 촛불로 대응하며 최고 권력을 단죄했다. LED는 ‘발광 다이오드’를 줄인 말로서, 양극과 음극을 가깝게 붙여놓고 전기를 흘려 빛을 만드는 장치이다. 쉽게 말하면 일부러 전기 합선을 유도하여 번쩍이게 하는 것이다. LED는 백열등이나 형광등에 비해 전기에서 빛을 만들어 내는 효율이 월등히 높고, 수명도 길며, 독성 물질을 내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도구이다.

빛에는 3개 원색이 있는데, 그 중 빨강색과 녹색 빛을 만드는 기초 기술은 이미 1950년대에 개발되었다. 문제는 파랑색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용 범위가 가장 넓은 빛인 흰색은 단색이 아니라 3개 원색빛이 혼합된 것이다. 따라서 파랑색을 만드는 것이 LED 상용화에서 가장 중요한 한계 기술이었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은 바로 이 청색 LED의 기초기술 개발과 실용화에 기여한 일본인 3명에게 돌아갔다. 이 중 특히 나카무라 슈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은 물론 과학자들조차도 노벨상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노벨상 성과는 기초과학, 고상한 학술연구, 엘리트 과학자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다. 나카무라는 이런 편견을 완전히 깬다. 그는 1978년 도쿠시마 대학을 나와 일본의 중소기업인 「니치아 화학공업」에 들어갔는데 노벨상을 받게 된 성과는 여기에서 일하며 14년 만에 일군 것이다. 당시 그는 39세의 나이로 석사 학위 소지자였다. 나카무라는 이 기술 개발 1년 후에나 박사를 받았는데 소위 ‘논문 박사’였다. 일본에서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도 논문을 몇 편 내면 박사 학위를 주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C급 연구자로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다.
늦깎이에 박사를 시작하게 된 경위도 재미있다. 입사한지 9년 되던 해에 회사는 그를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 1년간 보냈다. 그 실험실에서 미국인들은 나카무라에게 박사 학위가 있느냐, 어떤 논문을 발표했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없다 하자 사람들은 그를 ‘테크니션’ 취급했다. 이공계에서 테크니션은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자신만만했던 나카무라는 모멸감을 느끼고 박사를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소위 ‘논문 박사’ 학위에 도전한 것이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질화갈륨’을 연구하게 된 동기도 흥미롭다. 박사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당시 그가 연구하던 ‘셀렌화 아연’이라는 물질은 성숙된 분야로서 이미 많은 연구가 되어 있었기에 새로운 논문을 내기 어려웠다. 반면 질화갈륨은 다루기가 어려운 물질로서 끈질긴 일본인 몇 명을 빼고는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좋은 질과 충분한 양을 만들고, 도핑을 조절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나카무라는 학위를 받으려고 논문 낼만한 소재를 찾다가 질화갈륨에 뛰어든 것이다.

나카무라는 1989년에 이 연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선행 기술을 더욱 개량하고, 공정이 간편한 LED판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인듐질화 갈륨을 이용하면 강력한 청색 빛이 발산되는 것을 발견한다. 니치아사는 1년 후 이를 상용화하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LED 패키지 분야 매출액 세계 1위 회사로 비약했다.

나카무라의 인생 역정은 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카무라의 개발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니치아는 일본 업계 관행에 따라 그에게 이십만 원 정도의 보너스를 주었다. 상처받은 나카무라는 1999년 45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가서 교수가 되었다. 이에 니치아는 나카무라가 영업 비밀을 누설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자 나카무라는 회사가 발명자인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맞소송을 냈다. 회사의 집요한 보복과 지루한 법적 싸움을 거쳐 나카무라는 우리 돈 약 85억 원을 받고 회사와 합의했다. 이 소송은 일본은 물론 전세계 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회사 직원이 기술을 발명하는 경우의 보상 체계가 보다 명확히 설정되었고, 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경단련은 정부를 설득하여 발명자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특허를 소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나카무라가 회사의 모든 면에 염증을 낸 것은 아니다. 나카무라는 니치아에 입사하여 회사 현장에서 여러 기술을 배웠고 이는 나중에 노벨상 연구를 할 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또한 1989년 플로리다에서 회사로 복귀한 후 실패 가능성이 큰 청색 LED 개발을 제안했을 때 창업자 오가와 노부오 사장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니치아와 심하게 싸웠지만 나카무라는 오가와를 가장 고마운 사람의 반열에 올린다.

나카무라의 도전은 아직도 계속된다. 나카무라는 2008년 저명한 벤쳐 투자자 비노드 코스라와 함께 소라(Soraa)를 창업했다. 목표는 더욱 효율적인 질화갈륨 LED 칩을 만드는 것이었다. 수천억원의 투자 대비 아직 실적은 초라하지만 혁신기술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나카무라의 수상은 노벨상에 목말라하는 우리 사회에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준다. 매년 10월마다 언론은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성과를 요구하지 말고, 기초과학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싣는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 세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초과학에 그런 두루뭉실한 논리로 돈을 부을 수는 없다. 오히려 2014년 노벨 물리학상 분야와 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그래서 사업성이 높은 과제를 선택하여 집중 지원하면 짧은 기간에도 성과가 나오고 경제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연구들은 성격상 목표가 뚜렷하다. “이 실험 한 번 해보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보자”이다. 목표가 설정되면 집중적으로 일하는 한국인 성격에도 맞는 방향이다. 과학 고도화와 사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면 시민들이 과학기술에 더 많은 갈채를 보내지 않을까? 과학계와 정부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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