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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스트리트저널] 17. 왜 우리는 이상한 후보에게 투표하는가

중앙일보 2016.12.13 00:02
 ‘머니볼’이라는 영화를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감독이 꼴찌팀을 ‘데이터 경영’으로 살려냈다는 스토리인데요. 
 
 빈 감독이 부임했을 땐 야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구단 관계자들이 ‘내가 (경험칙상) 보기에 저 선수가 좋겠다’는 식으로 트레이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개봉한 `머니볼`에선 브래드 피트가 빌리 빈 감독역을 열연했다. [NYT]

2011년 개봉한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감독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 [NYT]


 하지만 빈 감독은 ▶발이 빠른 선수에게 매겨지는 시장 가격 ▶평균적인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선수 사이에 존재하는 역량차 등을 면밀히 분석해, 저평가된 선수를 헐값에 사들이고 기회를 줬습니다. 
 
 이처럼 경험이나 장인정신 대신 ‘데이터’를 활용했더니 포스트 시즌에도 4번이나 진출하더라 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을 쓴 사람은 마이클 루이스라는 전직 채권 트레이더인데요.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그린 ‘빅쇼트’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쓰고 영화화도 되면서 지금은 돈방석에 앉은 작가입니다.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 [NYT]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 [NYT]


 이 사람이 2003년에 ‘머니볼’ 책을 내고나서 ‘뉴 리퍼블릭’이라는 잡지에 실린 서평을 보다가, 자기가 쓴 내용을 이미 학술적으로 연구한 학자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82)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그리고 아모스 트버스키 전 스탠퍼드대 교수(1996년 작고)가 그들입니다.
 
 이스라엘 국적으로 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경제학의 대전제인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에 문제 제기를 한 분들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왼쪽)과 아모스 트버스키(오른쪽).

대니얼 카너먼(왼쪽)과 아모스 트버스키(오른쪽).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한 데이터가 널리 공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나 자신의 느낌ㆍ경험 같은 걸 바탕으로 결정을 하고 업무를 추진한다는 것이죠.
 
 루이스는 몇 번 읍소를 한 끝에 카너먼, 그리고 트버스키의 미망인 등을 만나 두 사람의 인생역정을 이번에 책으로 펴냈습니다.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The Undoing Project`.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The Undoing Project`.



 책이 나온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이라 루이스는 트럼프 당선에 대한 의견도 내놨습니다.  
 
 카너먼-트버스키의 연구를 기반으로 그는 트럼프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여러가지 과장된 ‘이미지’를 던져 유권자들을 현혹했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NYT]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NYT]


 인간의 머리 속에 내재돼 있는 '자연스런' 선입견을 부추겨 합리적인 판단을 그르치도록 유도했다는 얘긴데요.

 예를 들어 트럼프는 당선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수백만’의 부정표를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아무 근거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저 ‘수백만’이라는 아주 큰 숫자를 말해서 사람들에게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루이스에 따르면 이건 마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쪽의 변호사가 일단 엄청나게 큰 액수를 불러 상대방을 제압하는 ‘협상’ 전략과 같습니다.
 
 IS(이슬람국가)의 잔혹한 살해 방식, 이민자들의 범죄 사건 등을 자꾸 들먹여 정확한 사실과 숫자에 의한 판단을 흐리는 것이죠.
 
 루이스는 카너먼-트버스키의 삶과 연구를 들여다 본 뒤에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걸 바로잡을 수 있는지, 해법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화당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오른쪽)이 맞불시위를 하고 있다.

공화당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오른쪽)이 맞불시위를 하고 있다.


 1980년대 델타항공은 트버스키에게 조종사들의 실수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연구용역을 맡겼습니다. 그때 트버스키의 해법은 “다른 조종사나 승무원의 발언권을 세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걸 막자는 거죠.
 
 루이스는 이같은 해법은 트럼프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절망적이라고 말합니다. 트럼프는 남의 조언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종차별주의나 오만함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사고하는 방식인데 이걸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변과 사회의 지속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결과는 절망스럽다.”
 
 내년 대선을 맞는 우리는 선동꾼이 내놓는 수사와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정확한 팩트를 토대로 리더십과 정책 역량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남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후보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습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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