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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퍼스트펭귄] 그땐 비디오 테이프 제왕, 이젠 가구용 나사못 챔프

중앙일보 2016.12.12 01:00 경제 5면 지면보기
새한전자 정순일 대표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부품을 만들던 대기업 계열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가 가구용 나사못으로 국내 시장 55%를 차지하는 강소 기업으로 변신했다. 정순일 대표는 40년 전 고졸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새한전자의 부활을 지휘했다. 사내 전시관에 마련된 유리잔에 다양한 색깔의 나사못이 들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부품을 만들던 대기업 계열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가 가구용 나사못으로 국내 시장 55%를 차지하는 강소 기업으로 변신했다. 정순일 대표는 40년 전 고졸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새한전자의 부활을 지휘했다. 사내 전시관에 마련된 유리잔에 다양한 색깔의 나사못이 들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 (약 6평) 남짓한 방 한쪽 벽 앞엔 1998년 수상한 ‘5백만불 수출의 탑’이, 앞쪽에는 80·90년대에 흔히 봤던 비디오·오디오 테이프가 전시돼 있다. 충북 충주에 있는 중소기업 새한전자의 정순일(61) 대표의 방은 추억의 공간처럼 보였다.

새한그룹 고졸 생산직으로 입사
시장 급변하며 무너진 회사 인수
가구용 나사로 업종 바꿔 재도약
수출 길 열며 올 400억 매출 예상

새한전자는 지난달 30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2016 기업혁신대상’에서 중소기업부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정 대표는 이날 “그룹의 해체와 비디오 사업 급감에 따른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한전자는 한때 범(凡) 삼성가인 새한그룹의 계열사였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2남 고(故) 이창희 회장이 이끌었던 그 새한그룹이다. 주력 계열사 새한미디어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세계 비디오 테이프 시장의 27%를 차지해 세계 1위였다. 새한미디어가 세계에 비디오·오디오 테이프를 팔 때, 새한전자는 새한미디어에 플라스틱 새시와 나사 등 각종 부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비디오 테이프가 외면받으면서 새한그룹도 쇠락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모기업 새한미디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이후 새한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새한전자도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이후 새한전자는 가구용 나사못과 경첩·전력기기 등을 생산·판매하는 전문 부품업체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가구용 나사못 하나로 국내 시장의 55%를 석권하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못의 끝을 쐐기처럼 만들고 머리 부분을 변형한 기술로 한국은 물론 미국·일본·중국 등지에 실용신안등록을 했다. 이렇게 지난해 매출 270억원, 영업이익 12억원을 올렸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 대표는 75년 새한미디어 고졸 생산직 1기생으로 입사했다.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사출 파트에서부터 일을 배웠다. 국내 최초·유일의 비디오테이프 생산업체였던 새한미디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다. 입사 후 3년 간 회사에서 먹고 자며 미친 듯 일하다 보니 회장의 신임을 한 몸으로 받았다. 회사는 80년대 후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91년 위기가 찾아왔다. 창업주 이 회장이 백혈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회사는 휘청댔다. 정 대표도 92년 자회사인 당시 새한전자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비디오 테이프 시장이 쪼그라든데다 외환위기까지 닥쳤다. 그는 부장 신분으로 대표 이사를 맡아 회사 살리기에 나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영은 악화됐다. 한때 70명이 넘던 직원은 15명까지 줄어들었다. 2007년 결국 대표를 사임하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2009년 초, 쉬고 있던 정 대표에게 회사를 인수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새한전자를 살릴 사람은 사장님 밖에 없다”고 매달렸다. 고민 끝에 은행 빚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모아 회사 지분의 60%를 인수했다. 한계에 이른 기존 사업은 과감히 접었다. 대신 기존 기술과 설비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찾았다. 톱밥을 압축해 만든 가구용 합판에 나사못을 넣으려면, 기존에는 드릴로 먼저 못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새한전자의 나사못은 그럴 필요가 없다. 가구 조립작업을 기존 2단계에서 1단계로 줄여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인 것이다. 지금은 국내 시장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용 나사못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 대표는 “생산·관리 직원들이 영업사원이 돼 전국의 가구 공장을 찾아다니며 새한 나사못의 우수성을 알렸다” 고 말했다.

새한전자는 올해부터 도약기에 들어섰다. 내년부터는 일본 수출도 시작한다. 한샘 등 가구전문 업체들과 공급 계약도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 매출은 400억원, 2020년에는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한전자는…
설립일 : 1986년 12월2일
상시 근로자수 : 140명
본사 : 충북 충주시
주요 생산 제품 : 가구용 나사못, 경첩, 전력기기
매출 : 270억원(2015년)
영업 이익 : 12억원

충주=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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