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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 추구하는 서양 탈지역화에 나선 국악 수평적 만남의 시작

중앙선데이 2016.12.11 00:44 509호 2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1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서 미국 작곡가 마이클 도허티(Michael Daugherty)의 관현악 작품을 들을 수 있었다. 도허티는 ‘메트로폴리스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로, 2011년 그래미 ‘최우수 현대음악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작곡가의 작품이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그것도 ‘아시아를 위한 심포니’라는 제목을 붙인 기획공연 시리즈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무대에서 연주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적 지역성의 재발견

 

미국 아이오와 출신 화가 그랜트 우드의 1930년작 ‘아메리칸 고딕’. 같은 지역 출신인 미국 작곡가 마이클 도허티는 이 그림 영향을 받아 2013년 동명의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도허티가 수퍼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과 코드를 잘 활용하여 곧잘 자신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작곡가라는 점이 고려됐을 듯하다. 이번에 광주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 또한 자신의 고향인 아이오와의 시골풍경을 담고 있었다. 아이오와 출신의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가 1930년에 그린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모티브로 삼아 2013년 같은 제목으로 발표한 대규모 관현악곡이다. 그림 속 농부 부녀의 초상은 유럽으로부터 이주한 미국 백인 하층민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한데, 도허티는 ‘쇠스랑’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마지막 3악장에서 그림 속 농부가 들고 있는 농기구를 음악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민속음악 선율을 과감하게 차용한다. 악장의 솔로 바이올린 연주를 론도 주제로 반복시키면서 미국 백인의 음악적 뿌리인 아일랜드 피들튠(fiddle tune)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블루그래스(bluegrass) 음악의 색채를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도허티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이처럼 적잖이 노골적인 지역색은 한편으로 당혹스러운 느낌을 준다. 적어도 20세기 후반 이후 클래식 현대음악계의 주류적 경향은 모더니즘 미학을 중시하면서 지역성을 넘어서는 보편주의와 개인주의적 성향을 짙게 보여 왔기 때문이다. 물론, 도허티의 작품 세계가 지역색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며, 그의 작품 경향이 현대음악계의 최신 흐름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의 기획자들이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적 지역성이 드러내는 새로운 문화적 징후였으리라 생각한다.



 

[서양음악의 지역화]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본격화된 ‘전지구화’가 동시에 ‘지역화’를 초래하여 ‘지구지역화(glocalization)’라는 신조어를 유통시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촌의 자본주의적 일원화는 역설적이지만 지난 세기까지 막강했던 서양의 문화적 구심력을 약화시켰다. 이는 음악적인 면에서 대중음악의 영향력 강화와 비서구 전통음악(‘월드뮤직’)의 득세 속에서 서양음악의 위기 담론(‘클래식의 죽음’) 형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양음악 혹은 클래식음악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의외로 간단한 데서 찾을 수 있는데, 스스로 짊어지고 있던 ‘인류를 대표하는 보편적 음악’으로서의 짐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클래식음악도 근대 서유럽에서 발생한 국지적 음악이며 여러 다양한 지역의 음악문화와 접목되면서 끝없이 변형되어 왔음을 인정하는 것, 클래식음악이 전 세계 음악문화에서 특권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서구 세계의 다른 음악들과 수평적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매체 융합(convergence) 현상도 전 지구적 음악문화의 수평적 교류를 유도하고 있다. 음악사의 시공간이 뒤섞이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클래식음악(서양음악)과 여타의 음악 사이의 경계는 종종 지워진다. 애초에 ‘서양음악’이라는 것, ‘유럽’ 내지 서양의 문화가 단일한 성격의 것일 수 없었다. 예컨대 ‘아메리칸 고딕’ 속에서 쇠스랑을 든 미국의 백인 농부는 과연 ‘서양문화’의 대리인일 수 있을까? 민속음악 선율과 모더니즘적 불협화음이 뒤섞인 도허티의 관현악곡은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음악적 답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음악의 탈지역화]

문화적 전지구화의 경향 속에서 서양음악이 지역화의 경향을 보인다면 한국 전통음악은 오히려 탈(脫)지역화의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전통음악 축제를 표방하는 ‘전주 소리축제’나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이 사실상 모든 음악 장르에 열려 있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다. ‘월드뮤직’과 글로벌 음악시장의 영향 아래 전통음악의 퓨전화 경향이 본격화된 지도 이미 오래지만, 최근의 시도들은 좀 더 과감해져서 ‘퓨전국악’이라는 명칭조차 쓰기 곤란한 단계, ‘탈국악화’라고 할 만한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올해 발매되어 화제가 된 두 장의 음반을 이 점에서 거론해 볼 만하다.



 

두번째 달의 음반 ‘판소리 춘향가’



첫 번째 음반은 ‘에스닉 퓨전 밴드’를 표방하는 ‘두번째달’의 ‘판소리 춘향가’다. 이 음반은 판소리 춘향가의 주요 대목에서 뽑은 열네 곡의 노래를 전문 소리꾼의 피처링으로 녹음했다. 반주는 두번째달의 주력 장르인 (뉴에이지풍으로 순화된) 아이리쉬 민속음악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랑가’는 왈츠, ‘돈타령’은 블루스 양식의 반주에 실린다. 아이리쉬 리듬에 얹힌 ‘농부가’는 마치 조선의 농부와 옛 아일랜드의 농부가 함께 논밭에서 일하며 노동요를 부르는 풍경이 연상될 정도다. 판소리 춘향가의 오리지널 선율과 창법이 드러나면서도 반주는 파격적으로 ‘탈국악적’이라는 점에 이 음반의 묘미가 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음악 작업이 처음부터 국악계 외부의 음악인들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달의 멤버들 가운데 국악 전공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활동 초기인 9년 전부터 ‘민속음악의 현대화’라는 보편적 문제의식 속에서 이 음반을 구상했다고 한다.



 

잠비나이의 음반 ‘은서’



두번째달의 경우가 비(非)국악계의 음악이 국악계로 월경(越境)하는 사례라면,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는 정반대로 국악계에서 비국악계로 경계를 넘어가는 한 가지 극단적 사례를 보여준다. 잠비나이의 세 멤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각각 피리와 해금, 거문고를 전공했고 실제 연주에도 주로 이 악기들을 활용하지만, 그들의 사운드는 록음악, 특히 헤비메탈 음악에 가깝다. 잠비나이는 수년 전부터 국제적 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데, 그들의 두 번째 음반 ‘은서’가 올해 국제적인 인디음반 레이블 ‘벨라유니언’을 통해 발매되어 화제가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수용한 실험적 록음악의 양식적 틀을 유지한 채로 한국 전통악기에 고유한 음색과 미분음적 시김새를 장식적으로 활용하는 잠비나이의 음악은 특이하다 못해 종종 기괴하게 들린다. 그것을 ‘국악’이나 ‘한국전통음악’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번안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로 국내외의 반향을 일으킨 소리꾼 이자람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탈국악화’의 징후가 엿보인다. “저는 굉장한 의무감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판소리가 우리 것이기에, 지켜야 돼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바나(Nirvana)’를 듣고 자란 세대에요. (…) 내가 다른 것보다 이걸 좀 더 잘 하니까, 나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이자람의 예술적 시공간에서는 브레히트와 너바나, 그리고 판소리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이클 도허티에게서 리게티와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블루그래스 음악이 공존할 수 있듯이. 요컨대 이자람에게 한국이, 마이클 도허티에게 미국 또는 아이오와라는 ‘지역’이 중요한 것은 그곳이 자신들의 조국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개인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국악과 비국악 사이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탈지역화나 탈국악화는 제도적 국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까지 포함하는 한국의 음악계 일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국악의 탈국악화’라는 역설은 오히려 한국음악 일반이 전통음악을 의식하게 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기존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시각(“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에서 벗어나 한국음악의 지역성을 재탐구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전 지구적 만남(global encounters)과 경계를 넘는 융합적 사유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서양음악의 지역화와 한국음악의 탈지역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여전히 풀어야 할 문화정치적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음악적 지역성의 재발견은 서양음악과 한국음악, 나아가 전 세계 음악들의 수평적 만남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유준전남대 HK교수,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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