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자율성과 무력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남자

중앙일보 2016.12.10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김형경
소설가

마감이 없어도 글을 쓸까? 프리랜서 전업 작가가 된 후 맞닥뜨린 첫 질문이었다. 자아의 자율성, 삶의 주체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래, 사적인 자리에서 선배 작가를 만날 때마다 물었다. “선생님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세요?” 매일 운동을 해야 다음 날 글을 쓸 수 있다는 분, 아침마다 무조건 A4 용지 한 장 분량씩 글을 쓴다는 분, 글을 쓸 때면 알코올의 도움으로 정서를 활성화시킨다는 분이 있었다. 외출 준비 후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출근하여 구두를 신은 채 작업한다는 분도 있었다.

남자는 대체로 주체적·자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부장제의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원칙과 목표를 제시하며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가정을 운영했다. 상대적으로 여자는 의존적·반응적이라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자율성에 남녀 구분은 없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은 자아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 자아에는 현실 검증력, 욕망 조절력, 사고 기능, 관계 맺기 그리고 자율성 등이 있다. 자율적 자아 기능이 있기에 강압적·통제적 부모 환경에서도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이 탄생한다. 자아 심리학은 ‘자율적 자아’ 개념을 제안한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피면담자의 자아가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상태를 치료 목표로 한다.
자율적이라고 알려진 남자들도 그렇지만 자주 무력감에 빠진다. 무력감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없어 타인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유아기 상태이며, 성인의 무력감이 비롯된다는 구강기 지점이다. 의존성, 요구적 성격, 탐욕, 조급함도 무력감의 배면에 자리잡은 특성이다.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의 자아 개념과 구분되는 주체 개념을 제안하며 자아는 상상계에, 주체는 상징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주체는 본질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자율성이란 자기애적 착각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오래전 글쓰기 방식에 대해 들려주던 선배 작가들은 대체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율적 작업 상태를 항상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읽혔다. 사실 우리는 무력감과 자율성, 의존성과 주체성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라캉은 정신분석이 종결되는 시점에서 주체가 경험하는 무력감, 정서적 빈곤감에 대해 언급한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절대 고독에 항복하는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력감에 휩쓸리는 바로 그 순간, 자율성이 숨쉬기 시작한다.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