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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 탄핵 이후 ··· 헌법과 협치로 헤쳐 나가자

중앙일보 2016.12.09 21:18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최순실과 대통령은 동급이고, 공동정권이라고 생각했다”는 청문회 증인의 말처럼 신성한 국가권력을 민간인에게 넘겨준 박 대통령의 주권 횡령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헌법적 범죄였다. 박 대통령은 어제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인이 찍힌 탄핵소추의결서를 전달받은 것과 동시에 대통령의 모든 직무가 정지됐다.

국정 정상화하고 더 이상 혼란은 없어야
야당, 반헌법적 주장 대신 국정의 중심에
박 대통령 참회록 쓰는 심정으로 자숙을

 이로써 박근혜 정치는 종언을 고했다. 자욱한 안개정치도 한 고비를 넘겼다. 정국을 불확실성의 세계로 몰아넣었던 가장 큰 변수가 사라짐으로써 한국 사회는 안정적인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과 경제계, 사회 각 세력이 한마음으로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 의장이 탄핵안 가결 뒤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다. 수개월간의 국정 마비를 정리하고 더 이상의 혼란은 없어야 한다”며 민생과 정치의 회복을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한 발언이다.

 299명의 국회의원 중 234명이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에 참여한 야당 의원 172명이 모두 찬성했다고 가정해도 새누리당 의원 중 최소한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 표결 결과가 ‘박근혜 이후’ 정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우선 박 대통령의 정치적 회생은 불가능해졌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친박을 포함해 대거 탄핵 진영에 가담했고, 이는 광장의 촛불로 상징되는 민심의 혹독한 심판이 고스란히 정치권에 반영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은 끝났으며, 헌법재판소에 의한 사법적 심판만 남았다. 하지만 탄핵을 요구하는 압도적 민심이 확인된 이상 헌법재판소가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헌재의 심의 기간도 헌재법에 상한으로 규정된 180일을 굳이 꽉 채우지 않고 훨씬 앞당겨지리라고 예상하는 게 자연스럽다. 12년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이 헌재의 탄핵판결에서 뒤집히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정국 수습이 중요하다. 정국 수습은 헌법과 법률에 따르는 것이 순리다. 박 대통령 조기 퇴진이 가시화된 만큼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오는 무리한 정치적 주장은 접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즉각 하야 투쟁을 벌이겠다”고 했고 추미애 대표는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국민추천 총리를 논의하겠다”고 했는데 모두 부적절하다. 국정 안정을 해치는 발상이다.

 문 전 대표의 주장은 파면 절차에 들어간 사람한테 사표를 받겠다는 이중 처벌이나 다름없으며, 법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대선 날짜를 하루라도 빨리 당겨 자신이 유리한 고지에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추 대표의 발언은 대통령 승계 절차를 부정하고 헌법 어디에도 없는 국민총리를 세우겠다는 반헌법적 궤변이다. 정치인인 이들의 대권집착을 크게 탓할 생각은 없지만 민생을 돌보는 수권능력을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박 대통령을 탄핵했는데 국정 수습을 핑계로 헌법을 파괴해서야 되겠는가.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두 야당은 국정운영의 무한책임을 저절로 떠안게 됐다. 입법권력이 국정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집권당이 폐족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두 야당은 국가권력의 빈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이제부터 야권과 황교안 대행체제가 적대적 관계에 놓이면 안 된다. 절체절명의 국가위기에서 의회내각이 들어섰다는 자세로 협치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황 권한대행과 야당이 상시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안정적 국정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권이 조기대선 체제로 전환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무엇이 중하고 무엇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현명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자숙해야 한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감추고 떠넘기고 부인하고 저항하기에 급급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컸지만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기(失機)와 무책임, 잘못된 대처 방식이 탄핵론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전개될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어리석은 통치 행위’의 기록을 낱낱이 남기길 바란다.

 박 대통령은 헌재 심리 기간 중에도 억지스러운 논리로 무죄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4년 전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약속해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됐다. 그런 대통령이 동일한 국민의 분노로 임기 도중 퇴진하는 이유가 뭔지 깊이 성찰하 는 참회록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개인 박근혜가 아니라 18대 대통령 박근혜로서 물러나는 마지막 장면만은 의연하고 감동을 주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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