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정호의 시시각각] 황교안, '고건 모델'로는 어림 없다

중앙일보 2016.12.09 18:42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2004년 탄핵 소추된 노무현 전 대통령 대신 국정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고 전 총리는 ‘처세의 달인’답게 몸을 낮출 줄 알았다. 충청도에 폭설이 오자 대통령 헬기를 타고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청와대 헬기장이 아닌 용산기지를 고집했다. 대통령 대신 공군사관학교에서 연설을 할 때도 그랬다. 보좌관이 청와대가 보낸 원고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고치자 원본을 가져오게 한 뒤 그대로 읽었다. 대통령의 권위를 침범 않으려는 배려였다.

악재 발생하면 중대 결단 내려야
위기 대응책 놓고 국론 분열 안 돼

야당에도 늘 공손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낸 사면법 개정안을 거부한 뒤에는 국무조정실장을 통해 야당에 그 취지를 설명하는 성의도 잊지 않았다.

무리한 탄핵 소추였다는 여론에 켕겼는지 야당은 그를 전폭 지지했다. 능숙한 행정 경험에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도왔으니 잘 안 돌아갈 리 없었다. 결국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고도 그는 성공한 권한대행으로 남았다.

하지만 한정된 경험은 편견의 어머니다. 어제 개었다고 오늘도 맑으리란 법이 없다. 무릇 탄핵 소추로 대통령이 식물 상태가 되면 혼란이 찾아오기 쉽다. 8월 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쫓겨난 브라질을 보라. 탄핵 확정 전까지 전국에서 찬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탄핵안이 통과되자 시위대는 폭도로 변했다. 경제는 바닥으로 추락해 지난해 -3.8%의 성장률에 올해도 -3.5%에 그칠 전망이다.

이런데도 이 땅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실종됐다. 황교안 총리도 ‘고건 모델’만 따라 하면 별 탈 없을 걸로 여기는 모양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은 12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절대 시간부터 보자. 과거엔 63일이었지만 이번에는 탄핵심판에다 대선 기간까지 합치면 최장 240일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과거에는 특별한 위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운 좋게도 권한대행이 중대 결단을 내리지 않아도 무방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 무렵 남북 관계, 국제 정세, 경제 상황 모두 안정적이었다.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당시 북한에서는 용천역 폭발사고가 터져 어떻게 구호품을 줄 건가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이런 판에 북한이 도발할 리 없었다. 이 무렵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연말 대선에 쫓겨 한반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미국 측 불만으로 한·미 갈등이 불거질 턱이 없었다. 경제도 국내 주요 연구소가 4.5% 안팎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씩 다투어 올려 잡던 행복한 시기였다.

하지만 고 전 총리의 세상이 핑크빛이었다면 황 총리가 맞을 천지는 온통 잿빛이다.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 찬스만 찾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측 방위비 분담액을 올리라고 요구한 뒤 안 들어주면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상처투성이 경제는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이런 악재들이 닥치면 황 총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최소한의 일상 업무만 챙겨야 하나, 아니면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나. 예상되는 난제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데다 이념에 따라 대응책이 갈릴 수 있는 사안들이다. 국론 분열이란 부비트랩이 황 총리의 앞길 곳곳에 깔려 있는 셈이다.

지난 11월 “탄핵 후 심각한 국론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원로들의 경고는 그저 노파심에서 한 말이 아닐 게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황 총리를 돕기는커녕 끌어내릴 궁리만 하고 있다.

국난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국론이 분열돼선 안 된다. 그러니 예상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미리 사전 조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대 신임 헌법재판소장 임명 건은 국회가 추천하는 인사를 황 총리가 받아들이기로 미리 약속하자는 얘기다.

2004년 5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가 기각되자 그의 변론을 주도했던 변호인단의 간사 변호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국민이 분열돼 서로 편가르기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그의 이름은 바로 ‘문재인’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