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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창 방패 바꿔 쥔 김기춘, 문재인의 질긴 악연

중앙일보 2016.12.09 16:17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9일 가결된 가운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대표의 엇갈린 운명이 주목받고 있다. 12년 만에 재현된 대통령 탄핵 정국의 최전선에서 각각 창과 방패를 바꿔 쥐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2004년 3월 12일 김기춘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이 탄핵 의결서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접수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2004년 3월 12일 김기춘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이 탄핵 의결서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접수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김기춘 전 실정은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았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위원을 맡게 된다. 사실상 '국회내 검사' 역할이다. 실제 김 전 실장은 “소추위원은 피청구인(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문할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하겠다고 나섰다. 탄핵 사태에 대해선 “국회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초한 잘못“이라며 “(나라가) 잘 되는 것도 대통령의 공로이고, 이 같은 사태를 오게 한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압박했다. 탄핵안 가결 후 직접 헌법재판소를 찾아가 탄핵의결서를 접수하기도 했다.
2004년 4월 2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 4차 공개변론에 문재인 당시 변호인단 간사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04년 4월 2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 4차 공개변론에 문재인 당시 변호인단 간사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문 전 대표는 같은 시기 대통령 대리인단의 변호인 간사를 맡았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직한 뒤 네팔·태국 등지를 여행하다가 탄핵안 의결 후 급거 귀국해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김 전 실장을 탄핵의 칼자루를 쥐고 휘둘렀다면 문 전 대표는 그 칼날을 최전방에서 방어한 셈이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운명은 같은 해 5월 12일 헌법재판소가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하면서 갈렸다. 김 전 실장은 '탄핵 역풍'을 맞고 정치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반면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으로 복귀한 뒤 비서실장까지 지냈다. 두 번째 반전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뒤 일어났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야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반면 김 전 실장은 문 전 대표를 누르고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의 '실세'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 7일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참석한 김기춘(오른쪽) 전 대통령 비서실장. 왼쪽은 차은택씨 [사진=중앙포토]

지난 7일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참석한 김기춘(오른쪽) 전 대통령 비서실장. 왼쪽은 차은택씨 [사진=중앙포토]

그리고 4년 뒤, 김 전 실장과 문 전 대표는 두 번째 탄핵 정국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번에 칼을 쥔 사람은 문 전 대표였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이 보좌했던 박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함께 몰락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산 끝에, 지난 7일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특검 조사도 앞두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현재 피의자로 입건된 처지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2일 라디오에 출연해 “(김 전 실장을)일반인과 똑같이 소환해서 조사하고 또 다른 증거 자료를 수집하겠다. 사실관계를 특정해 범죄가 된다면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대구 동성로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21일 대구 동성로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반면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이번 탄핵 정국을 주도한 문 전 대표는 탄핵안 가결로 대권 행보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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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실장과 문 전 대표는 경남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 동문이다. 정치 입문 전에는 둘 다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로 달랐다. 김 전 실장은 공안검사, 문 전 대표는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당시에도 둘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다. 김 전 실장은 유신 시절인 1974~79년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일했다. 문 전 대표는 이 때 경희대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당시 경찰 구금) 전 국회의원을 대신해 시위ㆍ집회를 이끌다가 75년 4월 11일 구속됐다. 이후 대학에서 제적된 뒤 공수부대에 강제 징집되기도 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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