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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재밌지만 상투적인 '유영아표 영화' 레시피

중앙일보 2016.12.09 14:57
영화 `형` 스틸컷

영화 `형` 스틸컷

‘유영아표 영화’라 말하면, 아마 일반적인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까 싶다. 유영아는 시나리오 작가다. 그동안 ‘웨딩드레스’(2010, 권형진 감독) ‘코리아’(2012, 문현성 감독) ‘파파로티’(2013, 윤종찬 감독) 등의 각본을 써 왔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각색을 맡았던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감독)이 아닐까 싶다. 최근 개봉한 조정석·도경수 주연의 ‘형’(11월 24일 개봉, 권수경 감독)도 그가 집필했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유영아표 영화’는 한국형 가족·멜로드라마의 전형에 가깝다. 그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웃음과 눈물의 조합법을 잘 알고,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웃기고 울려야 하는지 타이밍을 잘 짚어 낸다.

그런데 한국형 가족영화와 멜로드라마의 서사에는 조금은 고질적인 관습이 있다. 일단 ‘선 웃음 후 눈물’이라는 구성 방식이 그렇다. 웃음은 과장돼 있으며 눈물은 뻔하다. 이런 과장됨과 뻔함의 중간에서 적정한 황금 비율을 찾아낸 작가가 바로 유영아다. 그런 점에서 ‘7번방의 선물’은 ‘대박 맛집의 황금 레시피가 담긴 영화’로 비유할 수 있겠다. 문제는 모든 ‘대박 맛집’이 몸에 좋은 재료만을 쓴 ‘착한 맛집’은 아니듯,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의 서사 레시피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7번방의 선물’과 ‘형’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서사 요소는 ‘장애’ 그리고 ‘죽음’이다. ‘7번방의 선물’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용구(류승룡)가 가까스로 딸 예승(박신혜·갈소원)을 키우고 지키는 이야기다. 성인 남자 용구가 여대 무용과 야구점퍼를 입거나 여아들이 즐겨 보는 만화 주제곡을 따라 부를 때, 그 부조화가 웃음의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지적 장애를 지닌 아버지가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 딸아이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에서 눈물과 감동이 빚어진다. 여기에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더 놓인다. 바로 아버지가 ‘사형수’라는 점, 그는 제 잘못도 아닌 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장애라는 설정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필연적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공식의 대부분은 ‘형’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우선 두 주인공 중 하나인 남동생 두영(도경수)이 시각 장애인으로 등장한다. 이번에는 장애를 가진 그의 잘생긴 외모와 혈기왕성한 젊음이 웃음 유발 요소로 쓰인다. 예컨대 두영이 여자를 유혹하는 과정에 (다소 불편한) 웃음 폭탄이 매설돼 있다. 시각 장애를 가진 두영이 못생긴 여성과 뜨겁게 키스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여성 외모 비하에 시각 장애 요소를 섞어 코믹하게 변주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장애를 웃음 코드로 활용한 나쁜 레시피의 전형적 예시다. 더 문제는, 이것이 ‘7번방의 선물’ 속 장애 활용법과 꼭 닮은 ‘재탕’이라는 사실이다. 독한 조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억울한 사형이 아니라 급작스러운 불치병이 주인공의 삶을 침범한다. ‘유영아표 영화’에서는 누구라도 죽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상황을 통해 웃음을 주고 나서는, 불가항력의 죽음으로 눈물을 끌어 모은다.

또 다른 면에서도 기시감이 든다. ‘7번방의 선물’의 이야기에는 새로울 것도 없고 전복적인 부분도 없다. ‘1000만 관객’ 마음을 두드린 이 영화의 동력은 바로 두 배우에게 있다. 즉, 류승룡의 노련한 연기력과 어린 예승 역을 맡은 갈소원의 해맑은 이미지가 ‘7번방의 선물’ 흥행에 큰 몫을 해낸 것이다. 이 영화 개봉 당시 류승룡은 아직 자신만의 이미지가 다 소비되지 않은 ‘블루오션급’ 배우였다. ‘형’의 용인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도 두 배우의 개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아이돌 출신 배우 도경수가 지닌 물리적 매력, 여전히 발견할 매력이 많은 블루오션급 배우 조정석의 힘. 이들이 ‘형’이 지닌 영화적 매력의 8할을 차지한다. 특히 각본·연출·촬영·조명을 다 떠나, 두 영화에서는 류승룡과 조정석의 개인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거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두 배우는 각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다. 뻔하고 상투적인 이야기 위에 매력이 바닥나지 않은 배우의 개성을 더해 200%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영아표 영화’의 레시피다. 어쩌면 이는 ‘유영아표 영화’를 넘어, 한국형 가족영화의 공공연한 조리 비법일지도 모르겠다.

예상했다시피, ‘형’은 순조롭게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복잡하고 가슴 답답한 정치 현실도 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을 주는 듯하다. 하지만 웃고 울다가도 독한 조미료가 남긴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어쩐지 뻔하게 설계된 감정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탄 느낌이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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