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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심판의 날, 오직 국민만 보라

중앙일보 2016.12.09 02:23 종합 1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촛불집회가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즉각 탄핵’ 등의 구호를 외쳤다. [사진 김춘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촛불집회가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즉각 탄핵’ 등의 구호를 외쳤다. [사진 김춘식 기자]

역사적 심판의 날이다. 오후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한다. 47일째 나라는 광장의 촛불과 의회, 대통령이란 ‘3중 권력’의 리더십 부재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진, 6월 대선이란 정치적 대안이 거부된 사이 혼란과 정략의 수렁에서 공동체의 운명과 미래는 허우적댔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오늘 대통령 탄핵이라는 그나마 유일했던 법적 해결의 전기를 맞게 됐다. 그간의 혼돈을 씻어낼 계기로 삼자.

여당, 생명 연장 꼼수 버리고
야당, 집권 탐욕 거둬 들여야
국민 뜻 어기면 함께 탄핵돼
대통령 담담히 결과 수용을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의회는 최순실·차은택·김종 등 국정을 어지럽힌 ‘보이지 않는 손’이 모두 박 대통령이라는 굵고 강건한 팔뚝에 매달려 움직였다고 봤다.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을 국정·인사에 개입하게 해 사익을 추구하도록 권력을 남용했다고 적시했다. 사기업에 금품을 강요해 시장경제질서를 어겼으며, 이는 곧 ‘뇌물’이라고 했다. ‘세월호 7시간’ 역시 국민 생명을 못 지킨 직무유기로 포함됐다. 헌법의 정치적 수호자인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의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고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주창했다.

헌정사의 오점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에게 나라를 맡겼던 선량한 시민들이 ‘신뢰의 횡령’에 느낀 배신감과 공허함은 가장 아픈 상처다. 심판은 이제 의원 300명의 몫이 됐다.

세상 번뇌만큼의 24개 기둥이 하나의 돔을 지탱하는 여의도의 심판장으로 향할 의원들에게 요구한다. 모든 정파적 손익 계산이나 개인적 이해를 버리고 표결해 달라. 당신의 선택이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예의다. 박 대통령과 오래 얽힌 여당의 사사롭고 때묻은 연줄, 정치 생명 연장, 야권의 차기 집권 탐욕. 이 익숙한 적폐와 오염 역시 이날 함께 탄핵되어야 마땅하다. 오로지 국민만 보라.

절차의 정당성도 중요하다. 당의 표 단속이나 가부 여부 파악 등의 치졸함은 죄악이다. 탄핵 과정의 과오로 혼란의 역풍이 커지는 후유증은 막아야 한다. 심판하는 정당과 의원들 역시 박 대통령과 함께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함께 잘 살아보자는 민주공화정의 가치는 71년간 숱한 좌절과 부활을 거듭해 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하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12·12 쿠데타와 신군부의 강압 등. 6·29 선언 이후 직선제 너머 성장을 못해 온 민주주의는 지금 누란의 위기를 맞았다. 피땀으로 보듬어 온 공동체의 정체성이 최순실과 그를 방치한 박 대통령에 의해 얼마나 훼손, 유린됐는지가 심판의 굵은 잣대다. 이를 복구시키겠다는 역사적 소명을 갖고 표결에 임해 달라.

가결 땐 모든 직무가 정지될 박 대통령 역시 자신의 말대로 담담하게 결과를 수용하라. 특검 조사도 충실히 임해야 한다. 중요한 고비이지만 이날 탄핵소추 표결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최장 6개월인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까지 국정과 민생의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핵소추 이후라도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4월 퇴진’은 여전히 검토해 봐야 할 살아 있는 카드다. 엄청난 후폭풍과 촛불 쓰나미를 몰고 올 탄핵 부결을 맞더라도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다 채운다는 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야당은 부결 시 의원 총사퇴를 결의해 국회 해산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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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추안 통과 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황교안 총리의 거취도 재논의가 필요하다. 국정 동력을 위해선 여야가 거국내각을 새로 세우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 놓인 일들이 너무 다급하다. 헌재 역시 내년 초 재판관 2명 사퇴 등의 불안정성을 헤아려 신속한 결정의 지혜를 발휘해 달라. 모두의 애국심과 나라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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