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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시간 7분뿐…‘모르쇠 증인’ 진실 끌어내기 어림없다

중앙일보 2016.12.09 02:09 종합 6면 지면보기
지난 6일과 7일 27시간(정회 시간 포함) 동안 진행된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했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가 최씨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추천하면 그대로 임명이 됐다는 증언, 1300억원을 투입한 문화창조사업벨트 사업은 사실상 ‘문화판 4대 강 비리’였다는 증언 등이 대표적이다.

특위위원 주연 욕심에 팀워크 실종
같은 질문 무한반복, 면박·호통 일쑤
처벌 약해 불출석 많은 것도 한계

그러나 국정 농단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엉뚱한 곳에서 가로막혔다. 국정 농단 실체를 향해 파고들어 가야 할 특위위원들의 준비 안 된 질의에 의해서였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하루 전을 의미하는 ‘D-1’을 만들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하루 전을 의미하는 ‘D-1’을 만들었다. [사진 김현동 기자]

7일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잘 모르겠다”는 말을 60번 반복했다. 거의 대부분 “최순실을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뒤집으면 의원들이 “최순실을 아느냐”는 물음을 수십 번 반복했다는 얘기다. 최씨와 아는 사이였느냐는 질문인지, 최씨의 이름을 아느냐는 것인지, 최씨가 비선 실세였다는 걸 알았느냐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게 계속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만 무한반복했다. 이런 준비 안 된 질문과 의미 없는 문답은 청문회의 대표적인 답답한 장면이었다. 호통치지 않고도 조목조목 팩트와 증거로 증인들을 외통수로 몰아 실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질의기법 등은 보이지 않았다.

7일 청문회에 출석했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는 정회 중 기자들에게 “질의 시간이 7분인데 같은 질문을 계속 하시니까…”라고 특위위원들의 질의를 꼬집었다.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도 “아까 드렸던 대답”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진실 규명 막는 7분의 법칙=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정부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해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려고 돈을 냈다”고 진술했다. 이를 시작으로 “저만 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불안감에…”(장치혁 전 고려합섬 회장)와 같은 실토가 잇따랐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비밀은 ‘시간’이었다. 당시 질의 시간은 30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인제 전 의원 등이 청문회 스타로 뜬 배경이다. ‘준비된 선수’들이 이 시간을 활용해 증인들을 외통수에 빠뜨렸다.

이번 청문회의 질의 시간은 7분이었다. 초시계가 움직이면 의원들은 일제히 “시간 없으니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며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국회법에는 “15분 범위에서 발언 시간을 정한다”고 돼 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증인들이 짧은 시간을 악용해 지연 전술을 쓰는 상황에서는 청문회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7분의 법칙’은 모든 의원에게 똑같다. 시간이 짧다 보니 질문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질의 시간이 짧다면 의원들 간 ‘팀워크’라도 있어야 하는데 각자 개별 플레이를 하다 보니 중복질문에 시너지도 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짧은 시간이라도 의원들이 역할을 나눠 증인이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연만 하려고 하니 팀플레이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의혹 해소보다 생방송 TV 중계에 얼굴을 고루 내밀게 하기 위해 7분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안 나오면 그만=7일 청문회에는 27명의 증인 가운데 14명이 출석하지 않았다. ‘최순실 청문회’였지만 최씨는 없었다. “공황장애”(최순실), “오래 앉을 수 없어서”(최순득), “유치원 학부모 미팅”(최순실 조카 장승호), “입시 앞둔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서”(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라는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동행명령장을 직접 받지 않으면 국회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는 증언감정법을 알고 명령장을 피해 숨어 다녔다.

이에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청문회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으로 강화하는 ‘최순실 방지법’을 발의했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도 증인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증인이 출석을 기피할 경우 관보 게재나 전자통신 매체 등을 통해 공시송달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우병우 방지법’을 내놓았다. ‘맹탕 청문회’ 방지법이 뒤늦게 나왔지만 효력은 미지수다.

글=강태화·유성운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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