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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황혼이혼 남성 분노·외로움 커…자녀 관심이 ‘생명줄’

중앙일보 2016.12.09 01:44 종합 18면 지면보기
72세 노인은 2014년 아내(67)에게 이혼소송을 당했다.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한 것이다. 남편은 재산을 나눠주는 등 이혼을 피하려 했다. 그런데도 아내가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남편은 지난해 중순 아내와 술을 마시던 중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범행 후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결국 그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살인미수)을 선고받았다.

파경 남성노인 적응 과정 보니
초기엔 과음 늘어 건강 나빠지고
자식과 틀어지면 극단적 선택도
의지할 곳 찾고 현실 인정까지 3~5년

이 사건의 배경엔 황혼이혼이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황혼이혼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황혼이혼 남성이 1만1636명, 여성이 6215명이다. 10년 전의 두 배다. 결혼 20년 넘은 부부의 이혼이 29.9%로 신혼(결혼 4년 이하, 22.6%)보다 많다.

황혼이혼 후 남성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노년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황혼이혼 후 남성 노인 적응 과정’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8명의 남성 노인을 심층 인터뷰했다. 연령은 69~81세, 이혼한 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2년이 지났다. 결혼 기간은 24~33년. 이들은 대개 이혼 결정-혼란-격동-의지처 찾기-수용 및 안정기 5단계를 거쳤다.
 
① 이혼 결정=원인은 성격 차이, 본인의 경제력 부족, 외도 등이다. 이혼을 요구한 사람은 “후련하다”고 했고, 이혼을 당한 사람은 억울함과 분노를 호소했다. A씨(81)는 “(아내가) 꼴도 보기 싫었다. 하루가 100일 같았다. 그 여자와 얼른 같이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F씨(69)는 “너무 억울했다. 지금 생각해도 피가 솟아”라고 말한다. 경제력 부족으로 이혼 요구를 받은 B씨(78)는 “호적을 나누는데 미치겠더라. 술을 먹고 불을 확 싸질러 버릴까 생각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② 혼란=혼자가 되자 외로움과 일상생활의 불편이 찾아왔다. E씨(74)는 “나는 굉장히 기대했는데 그 여자(사귀던 여자)는 아니라는 거야. 사기당한 거죠?”라고 후회했다. F씨는 “밀려났다. 비참한 심정, 안 당해 보면 몰라. 2년간 잠을 못 자겠더라”고 말했다.

③ 격동=혼란이 가중됐고 극단적 선택으로 향했다. B씨는 “애들을 찾아갔는데 찬바람이 쌩 불더라”고 한숨 쉬었다. 그는 베란다 난간에 섰다. 눈물을 쏟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쏟았다. H씨(71)는 “소주 8병을 마시고 감기약 5~6회분을 털어 넣었다. 자식들이 다 소용없더라. 나를 개·돼지보다 못하게 보고”라고 말했다. D씨(74)는 막걸리로 끼니를 때웠다. 8명 대부분 술·담배 양이 늘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혼란과 격동기는 대개 2~3년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별로 거치지 않은 사람이 A씨다. 그는 딸이 매주 찾아왔고 여자 친구를 짬짬이 사귀었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④ 의지처 찾기=육체적·정신적으로 점점 나약해졌다. 의지할 데를 찾기 시작한다. C씨(76)는 오랜 과음 탓에 몸무게가 10㎏ 줄었다. 쓰러져 정신을 잃었는데 깨보니 병원이었다. 그는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큰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 애를 잡고 울었어”라고 말했다. D씨는 “딸이 결혼식에 못 오게 했다. 일을 하며 여자를 만났는데 그에게 의지하고 싶다”고 했다. G씨(76)는 이혼 8개월 만에 재혼했다.

⑤ 수용 및 안정기=체념하고 포기하면서 심리적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E씨는 혼자 고민하다 안 돼 전문 상담소를 찾았다. 그는 “목숨이 쇠심줄 같지. 살 놈은 사는 건가 봐”라고 말했다. B씨는 “가끔 손주 보는 게 좋으니까, 뭐라도 해서 살려고 한다”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이 교수는 “이혼 후 안정 여부가 3~5년에 결정됐다”며 “전 배우자보다는 자녀나 손자와의 관계, 경제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직 등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술을 과다하게 마시게 돼 건강이 악화되고 자녀와 관계가 더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황혼이혼 남성 노인에게 아내가 없다는 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생활의 변화를 초래하고 친구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황혼이혼 남성 상담을 강화하되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특히 자녀까지 포함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건강한 적응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황혼이혼 남성 노인들은 정서적 고립이 오래되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8명 중 3명이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유대가 끊기면 우울증 같은 게 커지기 쉬운 만큼 황혼이혼 독거노인 발굴을 강화해서 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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