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용에 멋까지, 이것이 조선 공예

중앙일보 2016.12.09 01:19 종합 25면 지면보기
혜곡(兮谷) 최순우(1916~84·사진) 선생은 우리 옛 미술의 아름다움을 찾고 쓰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다 갔다. 1994년 초판이 나온 뒤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한 구절은 한국 전통미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과 절절한 이해를 엿보게 한다. “어쩌다가 일점 속기(俗氣)가 없는 속 시원한 그림과 마주치게 되면 마치 이마를 한 대 딱 얻어맞은 것처럼 맘속으로 ‘아이쿠’를 외칠 때가 있다.”

최순우 탄생 100주년 맞아 기념전
소뿔로 만든 ‘화각 장생문함’
옹이 물동이, 곱돌 약주전자 등
쓰였던 생활공간 별 656점 전시

혜곡은 명품을 판단하는 눈 못지않게 서민 삶 속에 뿌리내린 생활용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일하던 1975년 광복 30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국민예미술대전’은 우리 공예의 빼어난 미의식을 재발견한 기념비적 전시로 지금도 회자된다. 가나문화재단(이사장 김형국)은 혜곡의 탄생 100주년을 기려 41년 전 그 정신을 잇는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전을 마련했다.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가 총괄해 10여 명 개인 소장가가 출품한 463종 656점을 사랑방·규방·주방 등 생활공간 별로 전시했다.
화각 장생문 함, 18세기, 개인소장.

화각 장생문 함, 18세기, 개인소장.

소 수십 마리의 뿔이 쓰인 ‘화각 장생문 함’은 학이 봉황으로,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된 민화가 아름답다. 손가락으로 그린 파문이 한폭의 추상화인 ‘옹기 물동이’는 덤덤한 매무새가 의젓하다. 오래 끓여야 하는 약이나 술을 담았을 ‘곱돌 약주전자’는 현대 디자인 저리가랄 세련된 단아함이 정갈하다. 구수한 풍모가 보기 좋은 ‘석간 주각호’는 거드름 없이 살림살이 그 자체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슬쩍 멋을 부린 만든 이의 마음 씀씀이가 전해져온다.
곱돌 약주전자, 19세기, 일암관 소장. [사진 가나문화재단]

곱돌 약주전자, 19세기, 일암관 소장. [사진 가나문화재단]

전시 제목을 지은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우리 공예는 누구에게 보여 뽐내려 한 것이 아니고 생활에 꼭 알맞고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고, 언제나 실용과 기능에 충실한 절제와 자제력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형국 이사장은 “골동가게에서 뒹굴다 사라졌을 고물이 고미술로 격상되는데 큰 힘이 된 김종학·변종하·송영방·예용해·유광렬·조자룡·한창기 같은 혜안의 수집가를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혼례용 목기러기, 19세기, 구 권옥연 소장.

혼례용 목기러기, 19세기, 구 권옥연 소장.

박 교수는 “전시에 맞춰 나오는 도록은 한국 공예 사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가 총출동해 집필했다. 좋은 우리 공예품을 볼 기회가 없었던 장인들, 재료나 소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대 공예 디자이너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장이 되도록 꾸몄으니 많이 와서 보고 빛나는 전통을 이어달라”고 부탁했다.

전시는 15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서울 평창 30길 가나아트센터. 02-720-1054.
 
◆‘혜곡상’ 첫 수상자 구본준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사장 김인회)은 혜곡 탄생 100주년을 맞아 ‘혜곡상’을 제정하고 그 첫 수상자로 건축 칼럼니스트 구본준(1969~2014)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5시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동 제1강의실에서 열린다. 02-3675-3401.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