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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과 기타 치고 노래하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

중앙일보 2016.12.09 01:14 종합 27면 지면보기
가수 지망생과 의대생으로 처음 만난 전인권(왼쪽)과 김천기 교수. 두 사람은 “이렇게 자주 만나다가 서로 한국과 미국으로 멀어지면 그립다. 그래서 자주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아쉬움을 달랜다”고 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가수 지망생과 의대생으로 처음 만난 전인권(왼쪽)과 김천기 교수. 두 사람은 “이렇게 자주 만나다가 서로 한국과 미국으로 멀어지면 그립다. 그래서 자주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아쉬움을 달랜다”고 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헝클어진 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록의 대부’와 단정한 외모에 안경을 낀 의사.

음악으로 이어진 42년 우정
전 “힘들 때도 곁에 있어준 친구”
김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져”
91년부터 콘서트 단골 게스트로

두 사람은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42년째 우정을 나누고 있는 62세 동갑내기다. 가수 전인권과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김천기.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을 이어 준 건 음악이었다. 김 교수는 전인권도 인정하는 기타 연주와 노래 실력자다. 록, 클래식 등에 빠져 대학 입시에서 재수하고, 한양대 의대 1학년 땐 낙제도 했다. 1980년 의대를 졸업하고 결혼 뒤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의대 등을 거쳐 2009년 하버드대 의대 핵의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 사이 전인권이 리드보컬인 80년대 인기 록그룹 들국화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히트시켰다.

서로 길은 달랐지만 인연은 이어졌다. 김 교수는 91년부터 전인권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강연과 휴가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지난 2일에도 전인권의 콘서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전인권의 콘서트 무대에서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천기 교수(왼쪽). [사진 김천기]

전인권의 콘서트 무대에서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천기 교수(왼쪽). [사진 김천기]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놀려대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어려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천기는 내가 힘들 때도 곁을 지켜준 둘도 없는 친구” “떠올리기만 해도 내 마음이 행복해지는 이가 바로 전인권”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각각 가수 지망생과 의대생일 때 처음 만났다. “추운 겨울, 이른 아침에 경기고 동창의 집에 음악을 듣기 위해 놀러갔을 때였어요. 동창생과 인권이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엎드려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그때는 인권이와 제가 외모도 비슷했거든요.”(김 교수) “천기가 단발머리를 팔랑팔랑 거리면서 들어왔어요. 저는 고교도 중퇴했고, 제가 꿀리는 기분이었죠. 천기의 친구가 ‘천기가 기타를 무척 잘 친다’고 하길래 그냥 잘 친다고 칭찬해주고 밥이나 한 끼 얻어먹자 싶었는데, 정말 끝내주게 잘 치는 거예요.”(전인권)

그 후 두 사람은 전인권의 삼청동 집 등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했다. 전인권은 “천기는 잔잔한 미성(美聲)으로 노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다. 내가 함께 그룹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수락했다면 세계무대에도 진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내기 의사와 신인 가수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김 교수는 “들국화의 인기, 그리고 해체 소식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떠올렸다. 91년,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김 교수는 전인권의 콘서트장을 찾았다. “우리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먹함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둘 다 외모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십분쯤 대화를 나눈 뒤 이렇게 말했죠. ‘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전인권은 90년대 굴곡진 삶을 살았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멀어져갔다. 하지만 둘 사이는 달랐다. 전인권은 “천기가 변호사 선임비로 쓰라며 내 아내를 통해 500만원을 건넸다”고 기억했다. 김 교수는 “타향살이에서 향수를 느낄 때나 인권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전인권의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최근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자신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 화제가 된 전인권은 여전히 김 교수와의 밴드 결성을 꿈꾼다고 했다. 둘은 “밴드명에 누구 이름이 먼저 들어갈지 가위바위보로 정하겠다”며 웃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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