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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삼성전자 독주’의 역설

중앙일보 2016.12.09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삼성전자 주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8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02%(1만8000원) 오른 179만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18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시가총액은 251조원으로 단일종목 최초로 ‘250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민국 증시 역사가 삼성전자에 의해 연일 새로 쓰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 의혹 등 악재에도 삼성전자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는 이유가 뭘까.

갤노트7·최순실 사태에도
장중 180만원 넘어 최고가
지주사 중심 지배구조 개편
주주가치 제고안 투자자 호응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먼저 그룹의 실질적 경영자가 이재용 부회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지주사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 추진을 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해석이다. 삼성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개편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 등을 통해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 체제로 개편하면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주가가 크게 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가 그룹 각 계열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데 삼성전자만큼 사업을 잘하는 곳이 없어 연결재무제표로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늘 ‘밸류 다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의 생산 역량만을 갖고 만들어지는 삼성전자 사업회사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지금보다 훨씬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배구조가 안정화되는 데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익명을 원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유럽 기업들 사이에는 단기 성과에 쫓기는 전문경영인제도보다 중장기에 걸쳐 책임투자가 가능한 오너체제를 선호하는 흐름이 있다”며 “삼성전자 주가 흐름도 이런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지주사 체제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후 8거래일 가운데 다섯 번이나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주사 전환 검토와 함께 내놓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투자자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16년과 2017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 ▶매 3년마다 현금수준을 점검해 적정 초과분은 주주 환원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1명 이상 추천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발표 이후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 밖에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과 낸드 가격 상승으로 반도체 부문에서만 내년 하반기부터 분기 영업이익 5조원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 모바일과 가전에서도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어 전 분야에서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증시에서 삼성전자 독주 현상이 심화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여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로의 쏠림이 코스피 상승동력 약화로 이어진 경우가 과거에도 자주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시에 들어올 돈은 한정돼 있는데, 삼성전자로만 자금이 몰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전체 주가는 횡보하거나 하락하는 이른바 ‘대장주 독주의 역설’ 현상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8월 갤럭시노트7 출시 직전에도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코스피는 2050~2060선에 머물다 노트7 배터리 폭발 이슈와 함께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삼성전자로 돈이 몰리면서 중소형주가 많은 코스닥 시장은 암흑기다. 지난해 7년여 만에 700선을 돌파했던 코스닥지수는 올 들어 14.3%나 떨어지면서 570선까지 주저앉았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속한 코스피지수는 3.6% 상승했다.

이종우 IBK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상반기 이후 1년 넘게 주가 하락을 겪은 코스닥 투자자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한 종목의 덩치가 너무 큰 것도 문제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 이사는 “종목이 1000개가 넘는데 삼성전자만 흔들려도 시장이 출렁이는 구조에서는 오를 때는 좋지만 내릴 때는 증시 전체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8일 기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1263조8161억원)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다.

박태희·심새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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