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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피난민 모여살던 달동네, 영화 촬영 명소 됐죠

중앙일보 2016.12.09 00:05 Week& 4면 지면보기
| 그 길 속 그 이야기 <80>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 깡깡이길과 흰여울길

 
부산 영도 흰여울길은 정겨운 마을과 푸른 바다를 좌우에 끼고 걷는 길이다.

부산 영도 흰여울길은 정겨운 마을과 푸른 바다를 좌우에 끼고 걷는 길이다.


이달의 추천길 12월의 주제는 ‘시네마 로드’다. 영화와 인연이 있는 전국의 걷기여행길 중에서 week&은 부산 영도를 지나는 길을 골랐다. 길을 걷다 보면 ‘변호인’ ‘친구’ ‘범죄와의 전쟁’ 등 한국 영화에서 등장했던 명소를 두루 만난다. week&이 걸었던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 1코스 깡깡이길과 5코스 흰여울길은 다 합쳐 5㎞ 남짓하다. 길은 짧지만 길이 품은 이야기는 짧지 않았다.

 
삶의 향기 짙게 밴 깡깡이길
선박 수십 척이 정박해 있는 영도 대평동 대풍포구. 바다 건너편은 남포동이다.

선박 수십 척이 정박해 있는 영도 대평동 대풍포구. 바다 건너편은 남포동이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조성한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는 부산시 중구·서구·동구·영도구의 근대 자원을 소개하는 걷기여행 길이다. 6개 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첫 코스가 깡깡이길이다. 4㎞ 길이의 깡깡이길은 남포동 종합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영도대교 건너 영도구 대평동 일대까지 이어진다.

 
영도대교는 매일 오후 2시 도개한다.

영도대교는 매일 오후 2시 도개한다.


지난달 23일 정연지(60) 스토리투어 해설사와 영도대교 앞에 섰다. 오후 2시 사이렌이 울리더니 무게 590톤, 길이 32m의 영도다리 남포동쪽 상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1934년 개통한 영도대교는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하여 부산을 무대로 한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영화 ‘친구(2001)’는 아역배우 4명이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야구선수 고 최동원과 선동열의 이야기를 담은 ‘퍼펙트게임(2011)’에는 영도대교 인근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일대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가면서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한기라. 여서 가족 못 찾고 떨어져 죽는 사람도 숱했어. 사람이 몰리니께네 점쟁이도 여기에 진을 쳤제. 60년대까지 점집이 50개가 넘었어. 점바치 골목이라고 불렀지. 점바치, 부산 사투리로 점쟁이.”
 
지난해 문을 닫은 김순덕 할머니 점집이 있던 건물.

지난해 문을 닫은 김순덕 할머니 점집이 있던 건물.


지난해 김순덕(82) 할머니 점집이 문을 닫으면서 점바치 골목의 역사도 끝이 났다. 점바치 골목과 500m 거리의 자갈치시장 연안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집도 철거했다. 부산 중구청 문화관광과 신기훈(43) 주무관은 “골목 점집은 철거했지만 내년 1월 영상 전시관을 개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수 현인 동상.
가수 현인 동상.
영도 경찰서.
영도 경찰서.

영도대교를 건너 영도에 들어섰다. 영도경찰서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자 찌든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조선소와 선박수리소에서 나는 냄새였다. 대평동 일대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소가 들어섰다. 영도에 정착한 일본인이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이 있는 남포동을 마주한 대평동에 조선소를 지은 것이 시초였다.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녹슨 쇠사슬과 닻 등이 널려있는 대평동 포구 일대의 풍경.

조선소를 중심으로 영도에서 ‘깡깡이’라는 말이 생겼다. 깡깡이는 망치로 선박의 찌그러진 부분을 펴고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말한다. 망치질할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깡깡이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낙들이 깡깡이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안전장치 없이 아파트 4~5층 높이 허공에 매달린 널빤지에 앉아 영도의 아낙들은 온종일 쇳가루를 들이마시며 망치질을 했다. 소리 때문에 난청(難聽)이 된 아낙도, 널빤지에서 추락해 불구로 산 아낙도 많았다.

기름때 잔뜩 낀 철문 사이로 배를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깡깡이 소리 대신 돌과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만 귓전을 때렸다. 70년대 녹을 제거하는 연삭기(硏削機)가 도입되면서 깡깡이 작업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조선소 단지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진 ‘이북동네’는 한국전쟁 직후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쇳가루 날리는 열악한 지역에 아직까지 사람이 살까 싶어 들여다봤다.
 
이북동네 골목길.

이북동네 골목길.


“요 봐, 집 하나에 문이 여섯 개가 있지요. 20평(66㎡) 남짓한 요 한 집에 6가족이 살은기라. 화장실은 저 있는 공동화장실을 쓰고, 저게 수세식으로 바뀐 게 작년이에요.”

정연지 해설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북동네에는 현재 주민 20여 명이 살고 있다. 식사 때가 됐는지 골목에서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기름 냄새, 페인트 냄새, 바다 비린내 모두 밥 짓는 냄새에 묻혔다.

깡깡이길은 이북마을에서 약 1㎞ 떨어진 용신당(龍神堂)에서 끝났다. 길이도 짧고 코스도 평탄했지만 걷기 힘들었다. 쇳가루 때문인지 머리도 아프고 목이 칼칼했다. 하나 기꺼이 감내했다. 100년을 이어온 숭고한 삶의 현장을 마주하는데 이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었다.


 
"관광객이 너무 와 귀찮아 죽겠데이”
깡깡이길이 해안을 따라 이어졌다면 흰여울길(1.3㎞)은 봉래산(396m) 비탈을 훑는다. 정확히 말하면 봉래산 중턱의 흰여울 문화마을을 구경한다. 흰여울길 초반 300m는 영선동 해안을 따라 3㎞ 이어지는 절영해안산책로와 겹쳤다. 맏머리계단을 올라 흰여울 문화마을에 들었다. 바다와 한 발짝 떨어지고 하늘과 한 뼘 가까워졌다.
 
절영해안산책로와 흰여울 문화마을.
절영해안산책로와 흰여울 문화마을.
절영해안산책로와 흰여울 문화마을을 이어주는 맏머리계단.
절영해안산책로와 흰여울 문화마을을 이어주는 맏머리계단.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바라본 절영해안산책로와 푸른 바다.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바라본 절영해안산책로와 푸른 바다.

먼 바다에 배 30여 척이 점점이 떠있었다. 선박 주차장 묘박지(錨泊地)라고 했다. 집채만한 배가 바다에 알알이 박힌 그림 같은 풍경이었지만 실상을 알고 나니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화물선이 오랜 시간 정박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일감이 없다는 뜻이었다.
 
묘박지 풍경.

묘박지 풍경.


부산의 여느 달동네가 그렇듯이 흰여울 문화마을도 피난민이 일궈냈다. 대평동 피난민수용소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 피난민이 봉래산 기슭까지 밀려와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흰여울 문화마을이었다. 현재 마을에는 900여 명이 산다.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흰여울 문화마을의 본래 이름은 이송도 마을이다. 2011년 영도구가 달동네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흰여울 문화마을이라는 새 명패를 달았다. 영도구는 빈집 7채를 공방으로 바꾸고 예술가를 불러 모아 마을을 꾸몄다. 집마다 페인트칠을 하고 벽화를 그렸다. 2014년에는 부산시가 진행하는 산복도로르네상스사업에, 지난해에는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사업에 지정되면서 예산도 받았다. 사업 이름은 달라도 내용은 같았다. 낙후시설을 고치고 문화 콘텐트를 활용해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흰여울 문화마을 담에 설치된 갈매기 조형물.

흰여울 문화마을 담에 설치된 갈매기 조형물.


“가마니로 겨우 하늘만 가리고 살았어. 그랬던 마을이 지금은 이리 변한기라. 어델가도 여기만치 예쁜 곳이 없어. 바다가 정원이래니께. 요새는 관광객이 너무 와가 마 귀찮아 죽겠데이.”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진순여(62)씨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전국구 관광지로 만든 주인공이 한국영화 ‘변호인(2013)’이다. 흰여울길 중간께 대문을 열어 젖힌 집이 촬영지다. 촬영할 때는 빈집이었는데, 영화가 흥행하고 관광객이 늘어나자 마을안내소 겸 갤러리로 꾸몄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의 단골 국밥집 주인 최순애(김영애)의 집으로 등장했다. 순애는 아들 진우가 ‘부독련 사건’에 연루되자 우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부독련 사건은 81년 벌어진 부림사건에서 따온 것으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 등 22명을 불법 감금·고문한 사건이다. 송 변호사는 고심 끝에 순애를 찾아가 변호를 맡겠다고 말한다. 돈만 밝히던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극적인 장면이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범죄와의 전쟁(2011)’에서도 흰여울 문화마을이 등장한다. 최익현(최민식)이 세관 공무원 시절 살았던 동네로 나온다. 최익현은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을을 떠난다.

“영도는 오갈 데 음는 사람 품어주는 애달픈 섬이었어. 53년 국제시장이랑 부산역에 큰불이 나가 주변 판자촌이 홀랑 타부렀제. 그때 이재민 수천 명이 영도에 들어온기라. 어디로 갔겄노. 다 이 산자락에 들었제.”

강정분(68) 스토리투어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샅을 훑었다. 좁은 길목에 네모난 철 상자가 곳곳에 놓여 있어 걷기에 불편했다. 알아 보니 세탁기와 보일러 보관함이었다. 집이 좁아 각종 세간을 밖으로 내놓은 것이다. 몇몇 집은 아직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송도 전망대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느라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벽화로 장식한 공동 화장실. 흰여울 문화마을 주민 일부는 아직도 공동 화장실을 쓴다.
벽화로 장식한 공동 화장실. 흰여울 문화마을 주민 일부는 아직도 공동 화장실을 쓴다.
절영해안 산책로와 이송도 전망대를 잇는 피아노 계단.
절영해안 산책로와 이송도 전망대를 잇는 피아노 계단.
이송도 전망대.
이송도 전망대.

 
 
길 정보

깡깡이길과 흰여울길은 각각 4㎞, 1.3㎞ 길이로 짧다. 깡깡이길이 끝나는 용신당에서 흰여울길이 시작하는 절영해안산책로까지 1.3㎞ 떨어져 있어 두 길을 이어서 걷기를 추천한다. 깡깡이길은 경사가 거의 없어 쉽게 걸을 수 있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통과할 때는 말소리를 줄이자. 주민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bto.or.kr)에서 신청하면 ‘이야기 할매·할배’라고 불리는 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무료. 051-780-2175. 흰여울마을 근처의 식당 ‘달뜨네’는 해조류 ‘곰피’를 넣고 끓인 시락국(시래기국)과 고등어·방어 등 숙성 회를 얹은 회비빔밥이 유명하다. 회비빔밥 시락국 세트 1만원. 051-418-2212.
 
달뜨네 참고등어 초회.
달뜨네 참고등어 초회.
달뜨네 회비빔밥 시락국 세트 메뉴.
달뜨네 회비빔밥 시락국 세트 메뉴.
달뜨네의 회비빔밥.
달뜨네의 회비빔밥.
식당 달뜨네의 위승진 사장.
식당 달뜨네의 위승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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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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