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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튀긴 단팥호떡·고기호떡…월 매출 5000만원 ‘삼청동호떡’

중앙일보 2016.12.09 00:01
`삼청동호떡`의 고기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고기호떡과 소

토요일 오전 11시 45분, 주인을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만났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문을 열기 전인데 호떡집 앞에는 벌써 몇 사람이 모여있다. 안주인은 장사 준비에 바빴다. 사람들은 한 회사 직원이었다. 먹성 좋은 여직원이 몇 개나 먹을 수 있을지 설전을 벌이며 호떡이 튀겨지기를 기다렸다. 바깥주인(명함에 그렇게 돼있다)이 사람들 대화에 끼어들면서 작은 골목은 아연 소란해졌다. 호떡집에 불 났다는 말이 떠올랐다. 주인은 직원들과 친한 듯했다. 동생 부르듯 여직원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며 내기를 부추겼다. 한자리서 7개가 최고기록이라며 8개를 먹으면 돈 받지 않고 중매를 하겠다고 솔깃한 상까지 내걸었다.
호떡을 만들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삼청동호떡’ 골목.

호떡을 만들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삼청동호떡’ 골목.

여직원이 도전했다. 응원으로 주위가 시끄러웠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뭔가 들여다보다가 호떡을 사 먹기도 했다. 주인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실황을 중계했다.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듯 유럽·미국·타이완에서 응원 댓글이 올라왔다. 휴일이라 늦은 아침을 먹고 나왔다는 여성은 8개에 성공했다. 연락처를 주고 받고, 무료쿠폰 30매를 선물했다. 헤어지는 상황을 보니 그들은 초면이었다.
 
도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거나 “호떡입니다” 알리기도 하고, 학생들에겐 “아 예쁘다. 몇 학년이야?”라며 눈길을 돌리게 하고, “호떡 안 먹어?” 또는 “호떡 안 먹으면 못 지나가는데? 거기 선 있잖아”라고 애교 섞인 공갈(?)까지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한자리에서 호떡 많이 먹기에 도전하는 현장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는 조영준씨(가운데 머리흰 남성). 이 여성은 8개 최고기록을 수립해 호떡 값은 내지 않고 무료쿠폰 30매를 받아갔다. 주인이 중식 셰프와 중매도 서기로 했다.

한자리에서 호떡 많이 먹기에 도전하는 현장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는 조영준씨(가운데 머리흰 남성). 이 여성은 8개 최고기록을 수립해 호떡 값은 내지 않고 무료쿠폰 30매를 받아갔다. 주인이 중식 셰프와 중매도 서기로 했다.

호떡 맛으로, 주인의 오뚝이 같은 재기 스토리로 이미 명성이 높은 북촌 정독도서관 앞 ‘삼청동호떡’(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82-6/전화 02-732-0420)과 바깥주인 조영준(48)씨 얘기다. 조씨 부부는 북촌 골목 깊숙이 있는 3평(10㎡) 채 안 되는 호떡집에서 한 달 5000만원 가까운 매상을 올린다. 호떡은 꿀(1000원)·야채(1500원)·단팥(1500원)·고기(2000원) 4가지다. 평균 단가 1500원에 한 달 30일 문을 열면 하루 1110개의 호떡을 팔았다는 얘기다. 7시간 영업을 하니 시간당 159개, 1분에 2.65개를 빚고 튀겨서 파는 것이다. 비 오는 날만 쉬고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골목에는 손님이 늘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비 그을 곳이 없어서 날이 궂으면 쉰다.
호떡집 ‘바깥주인’ 조영준씨는 다 튀겨진 호떡을 건지고 컵에 담아 주문한 손님에게 건네는 일을 맡는다. 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안주인은 그걸 보고 웃으며 호떡을 빚는다.

호떡집 ‘바깥주인’ 조영준씨는 다 튀겨진 호떡을 건지고 컵에 담아 주문한 손님에게 건네는 일을 맡는다. 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안주인은 그걸 보고 웃으며 호떡을 빚는다.

대체 어떤 호떡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찾을까. 조씨는 세 구절로 압축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소는 입에 달라붙게.” 이 기준에서 자신의 반죽은 세계 1등이라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네 가지 호떡을 먹어보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떡 겉은 깨물면 서릿발이 바스러지는 느낌이다. 속은 고물에 갓 굴린 따끈한 인절미가 생각난다. 소는 컵에 담아주는 1000~2000원짜리 길거리 음식으로는 재료도 맛도 아주 고급스럽다.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까닭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주인의 천성과 우여곡절의 삶에서 온축한 내공이 밀고 당기며 상승작용을 한 결실이다. 그는 요즘 말로 금수저 중 순금수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일군 사업을 물려받은 아버지는 기술력 탄탄한 중견기업의 사주였다. 전신주에 쓰는 아이볼트(eyebolt; 머리 부분에 동그란 고리가 달린 볼트)를 개발해 여러 나라에서 특허를 받고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 한전에 납품하며 수출도 많이 하는 회사였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만,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 유년의 많은 시간을 외할머니 품에서 보냈다.
 
외할머니는 궁중음식을 다루던 분이었다. 요리가 취미였다. 그 덕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며 자랐다. 미각에 대한 조기 체험교육을 잘 받은 셈이다. 진관동 옛 기자촌 꼭대기에서도 언덕을 두 개 넘어가야 외할머니 댁이 있었다. 볕 잘 들고 공기 맑아 장 담그기에 좋은 환경을 찾아서 그 깊은 곳까지 갔다. 장독대에 항아리가 200개가 넘었다. 어려서 200개까지 세다가 남아서 관둔 적이 있다. 사업을 하던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외할머니 댁에 가서 놀았다.

1970년대 초 외할머니는 참기름은 양수리, 들기름·메밀은 홍천, 메주콩은 음성, 젓갈은 소래포구나 광천에 가서 마련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운전하는 3륜트럭 가운데 자리에 앉아 외할머니와 전국 특산지를 찾아 다녔다. 사업용이 아니었다. 식구들 먹을 음식 장만을 그렇게 했다. 전국에 할머니 후배들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진수성찬을 자주 먹었다.
 
호떡이 튀겨지는 일관생산 조리대. 야채·고기호떡은 통통하고 꿀·단팥호떡은 납작하다. 그 가운데 고기·단팥호떡에는 흑임자를 뿌렸다. 완성된 4가지 호떡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다.

호떡이 튀겨지는 일관생산 조리대. 야채·고기호떡은 통통하고 꿀·단팥호떡은 납작하다. 그 가운데 고기·단팥호떡에는 흑임자를 뿌렸다. 완성된 4가지 호떡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9년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회사와 집이 모두 넘어갔다. 이후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 회사는 몇 년 뒤 재기했지만 조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아버지 돈을 받아가지 않았다. 자립심이 강해 대학 입학금도 차용증을 쓰고 빌려갔고, 3개월 후에 갚았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자 한국에서 가장 큰 그룹 계열사에 들어갔다. 3년간 카메라 마케팅을 했다. 자립심 강한 그에게 남의 일은 잘 맞지 않았다. 회사 두 군데를 더 다니다가 내 것을 만들어 자립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1998년 창업을 했다. 세라믹을 이용해 신소재를 개발하는 바이오산업이었다. 도료·식품포장재·위생용품·건축자재 등을 생산했다. 도료에서 성과가 좋았다. 도로 표지선을 긋는 광촉매 도료를 개발해 대기업에 납품했고,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 수출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우수 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 상품 판매를 위해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다. 회사 관리는 중학교 동기인 20년 친구에게 믿고 맡겼다. 상무였던 친구는 회사 돈을 모조리 빼돌려 사장인 조씨 여비서와 외국으로 달아났다. 친구의 범행은 작정하고 준비한 짓이었다. 남은 건 협력업체 빚 72억원이었다.
 
횡령사건으로 처리하면 법적 책임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도의적으로 모른 척 할 수 없고 회사를 살려볼 요량으로 사재를 모두 바쳐 빚을 최대한 막았다. 회사는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번 추락한 신뢰는 회복이 불가능했다. 필수인력이 떠나기 시작했다. 사람과 일이 싫어졌다. 남은 직원들에게 기술 특허를 이양하고 서로 좋게 해산했다. 잘못 없는 직원들에게 피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껍데기만 남았다.
 
2003년 아내도 떠났다. 혼자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생각도 정리하려고 여행을 했다. 얼마 후 돈이 떨어졌다. 벌어야 했다.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가 본, 손뼉 치며 호객하는 노점에 부탁해 하루 4만원을 받고 양말 파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골~라 잡아 잡아/골라 골라 골라.” 그쪽 용어로 ‘다다구리친다’는 장사다. 들킬까 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했다. 남보다 많이 팔았다. 노점 자리를 인수했다. 돈은 모았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그만뒀다.
 
노점에서 그를 알아본 대학 선배가 홈쇼핑 쪽 일을 연결해줬다. 여러 가지 기획을 해 제안서 넣고 상품을 물색했다. 원격시동기로 첫 방송을 했는데 대박이 터졌다. 5대 홈쇼핑에 160여 가지 상품을 공급해 1년에 1480억원어치를 팔았다. 2004~2005년 최우수벤더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자기 사업은 아니었다. 사장이 있었다. 잘 되니까 밀어냈다. 홈쇼핑 일을 하면서 그런 배신을 두 번 겪었다. 그 후로는 ‘내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업도, 취업도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프랜차이즈 제안이 끊임없이 온다. 대기업 계열 음식회사 모두 찾아왔고, 상담하러 다녀간 사람이 4000명이다. 이 사람들에게 차나 밥 사는 돈이 한 달 200만원쯤 나갔다. 상담에는 응했지만 사업을 함께 하는 건 모두 거절했다.
`삼청동호떡`의 꿀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꿀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야채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야채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단팥호떡과 소

`삼청동호떡`의 단팥호떡과 소

홈쇼핑에서 밀려난 뒤 사람이 더 싫어져 홀로 단발성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내다가 2008년 현재의 부인과 새 살림을 차렸다. 재혼 후 부인과 인사동에서 따로 노점을 했다. 1년 좀 못 되는 기간을 했는데 6개월쯤 하니까 밑바닥 장사의 생리가 읽혔다. 잠시 신사동에 매장을 냈다가 접고 인사동으로 돌아가려다 호떡을 생각했다. 호떡은 국민간식이라 할 만큼 소비자 접근성 좋고, 발전성 있고,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도 크다고 판단했다. 연구에 들어갔다. 한 달간 모든 종류의 밀가루를 사다가 실험했다. 처음 판매한 꿀·야채호떡에 들어갈 재료들을 모아서 물성테스트를 하고 배합 비율과 가공 온도·시간 등 모든 조건을 엑셀로 정리해서 가장 적합한 조건을 찾아냈다. 외할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단련된 미각을 믿고 실험을 거듭했다. 별의별 짓을 다 했다.
 
2011년 10월 20일 현재의 호떡집이 있는 골목 입구 가게에 전전세 계약을 했다. 남의 가게 안에 가게를 내는 숍인숍 형태였다. 1.5평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30만원 조건이었다. 1.5평은 4.9587㎡로 가로·세로 각 2.227m 면적이다. 11월 20일 오후 2시부터 호떡을 팔았다. 기름에 튀기는 호떡이다. 첫날 11만8000원어치를 팔았다. 성공적이었다.
 
호떡집은 오후 7시간만 여니까 늦게 열고 일찍 닫는 셈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나머지 시간엔 집에서 재료 준비를 한다. 늘 잠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반죽은 여름엔 찬물, 겨울엔 따뜻한 물로 하고 1.5~2시간 숙성한다. 밀가루·흑임자·물을 기본으로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미네랄이 많이 들어가고 양파·생강 등 몇 가지 채소도 들어간다. 거기에 천연효소와 화학 이스트를 첨가한다. 튀겨내면 납작한 꿀·단팥호떡, 둥글게 부풀어오르는 야채·고기호떡은 반죽이 서로 다르다.
튀겨도 납작한 꿀·단팥호떡 반죽(왼쪽)과 튀기면 통통해지는 야채·고기호떡 반죽(오른쪽)

튀겨도 납작한 꿀·단팥호떡 반죽(왼쪽)과 튀기면 통통해지는 야채·고기호떡 반죽(오른쪽)

꿀호떡에는 흑설탕과 8가지 견과류(땅콩·흑임자·참깨·잣·아몬드·호두·호박씨·해바라기씨)가 들어간다. 모두 생물을 구입해 각기 다른 온도를 맞춰 볶는다. 야채호떡에는 비법 배합간장으로 양념한 당면에 양파·부추·당근 채가 들어간다. 고기호떡의 소는 다진 돼지 앞다리살로 만든다. 소금 간한 고기를 마늘기름 만들어 볶고 무말랭이 불려서 다진 것, 양파, 매운 고추, 밑간 한 당면, 당근 채, 부추, 흑임자, 고춧가루 등을 섞는다. 단팥호떡의 소도 사서 쓰면 2kg에 1만3000원밖에 안 하지만 직접 만들어 쓴다. 씻고 불리고 쪄서 설탕을 넣고 적당히 저어주는데, 3일치 소를 만들려면 4시간이 걸린다. 준비를 집에서 모두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한다.
 
처음엔 꿀·야채호떡 2가지만 팔다가 올해 1월부터 단팥·고기호떡을 추가했다. 개업한 자리에서 꽤 명성을 쌓았지만 이 또한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12년 말 골목 안 한옥 문간방 자리로 가게를 옮겼다. 그나마 조금 넓어져 3평. 그래도 작업공간은 1.5평 정도다.
완성된 호떡을 건져 둔 시렁은 보온을 위해 알루미늄 포일로 감쌌다. 30개 포장 주문이 들어와 포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완성된 호떡을 건져 둔 시렁은 보온을 위해 알루미늄 포일로 감쌌다. 30개 포장 주문이 들어와 포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조씨는 임신부에게는 호떡을 공짜로 준다. 첫날부터 계속 하는 일이다. 20만~30만 개는 나눠줬을 거라고 한다.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신부·수녀도 공짜다. 아들이 군 복무 중일 때는 군복 입은 사람에게도 모두 공짜로 줬다.
 
이제는 인생과 사업이 안정됐냐고 묻자 그는 “내 인생에 안정기는 없다 발전기만 있을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발전된 모습을 묻자 두 가지를 얘기했다. 하나는 8도 호떡이다.
앙증맞은 메뉴판. 외국인 손님이 많아 영어 표기도 했다.

앙증맞은 메뉴판. 외국인 손님이 많아 영어 표기도 했다.

“제주에 감귤호떡이 있다. 그것처럼 전국 8도에 8대 호떡을 만들고 싶다. 창원에 단감호떡, 대구에 사과호떡, 강원도에 감자호떡을 준비해뒀다. 양배추호떡도 완성 단계다. 실업구제 프로그램으로 시집 보낼 생각이다.”
 
동업이나 프랜차이즈는 안 한다는 소신을 가진 그가 시집 보낸다는 건 어떤 형식일지 궁금하다.
‘삼청동호떡’집 문이 열려 있는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골목 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삼청동호떡’집 문이 열려 있는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골목 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최종 목표는 면(麵)사업이다. 호떡집 초기, 호떡이 잘 팔리지 않는 여름철에는 그 자리에서 메밀국수를 팔았다. 좌석을 만들 수 없는 여건이어서 서서 먹는 형식으로 팔았다. 반응이 좋았다. 많이 팔았다. 현재는 메밀국수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 사둔 장비가 집에 다 있다. 상표등록도 해뒀다. ‘서서 먹는 모밀과 고기’ 줄여서 ‘서서모고’(빠르게 발음하면 ‘서서 먹고’)이다. 앞으로 중식 면요리에 도전할 생각이다. 준비는 다 돼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음식이 내 입에 맛있지 않으면, 흡족한 상태가 아니면 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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