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우
문화부 차장
어쩌면 의혹 수준에서 지나갈 법하던 블랙리스트 사건이 폭발성을 갖게 된 데엔 현 문체부 장관인 ‘조윤선 개입설’이 결정적이었다. 지난달 초 한 신문은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의 명단을 작성했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조윤선”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야당은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집중 공격했고, 그때마다 조 장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현재 조 장관은 해당 신문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했고, 곧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개인적으로 조 장관의 해명을 믿고 싶다. 설사 청와대 다른 라인에서 만든 것을 묵인했을 망정, 그래도 책도 내고 예술적 안목이 있다고 알려진 정치인 조윤선이 이토록 허술한 명단을 만들었으리라 잘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덮자는 얘기가 아니다. 개입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면 된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지원배제 예술인’이 전방위적으로 유포됐다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그렇지 않은데 이런 폭로가 계속되긴 힘들다. 문체부 어떤 부서가 그 일을 했고, 문화예술위원회에선 누가 관여돼 있으며, 그 작업의 총대를 멘 직원이 갑작스레 병가를 냈다는 것 등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게다가 공식 조사가 진행되면 실명으로 증언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조 장관은 자신의 무고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누가 얼마나 어떻게 관여했는지, 블랙리스트의 본말을 적극적으로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일인데, 본인만 쏙 빠져 칼을 꽂으면 어떡하나”고 할지 모르겠다. 자칫 덤터기를 쓸 지경 아닌가. 친박 일부마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판에 의리 연연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부보조금과 관련해 정권마다 예술계를 쥐락펴락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반대편에선 “예술 검열에 앞장선 부역자를 색출하자”며 칼을 휘두를 참이다. 편파 지원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낙인찍기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실체적 진실이 우선이다.
그러니 조 장관은 소송만 할 때가 아니다. “억울하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만 취할 때도 아니다. 멈칫거렸다간 “역시 구린 게 있는 모양”이란 오해를 살 게 뻔하다. 정권에 휘둘린 문체부를 곧추세우기 위해서도 조 장관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 민 우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