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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탈북민 딸인데 탈북 지원 못받는 12세 유림이의 비극

중앙일보 2016.12.06 01:29 종합 12면 지면보기
폐질환을 앓던 정씨는 2014년 한국에 왔다. 2년 뒤 유림(12)이도 데려왔지만 정씨는 숨졌다.

폐질환을 앓던 정씨는 2014년 한국에 왔다. 2년 뒤 유림(12)이도 데려왔지만 정씨는 숨졌다.

모니터 위에 긴 가로 줄이 생겼다. 정예영(32)씨의 삶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우두커니 서 있던 딸 유림(12)이가 엄마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지난 10월 28일 서울 목동의 한 병원에서의 일이다. 탈북자인 정씨는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오랫동안 앓아온 폐가 완전히 망가져 숨졌다.

정혜영씨 중국 팔려가 유림이 낳아
폐병 고치려 딸 놔두고 먼저 한국에
2년 우여곡절 끝에 딸 데려왔지만
한국 국적 아니라 교육 등 소외

유림이는 두 차례 혼절했다. 겨우 깨어난 유림이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말을 못했어요.” 지난 7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유림이와 정씨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석 달 반이 됐을 때, 정씨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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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태어난 정예영(32·여)씨는 부모에게 버려진 뒤 13세부터 꽃제비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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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삶은 고단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친부모에게서 버려졌다. 열세 살 무렵부터는 살기 위해 거리를 전전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말했다.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대.”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보니 함경북도 회령이었다. 어느새 두만강을 건너고 있었다. 정씨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정씨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사는 중국인 남자에게 팔려갔다. 1년 만에 아이가 덜컥 들어섰다. 정씨는 생각했다. ‘아이만 낳고 도망가야겠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17세 때 탈북해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가 18세 때 딸 유림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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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무능력했다. 가난에 찌든 정씨는 폐질환을 달고 살았다. 약 살 돈이 없었다. 그는 ‘나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로 나가 식당에서 일했다. 유림이가 네 살 때였다. 그 뒤 정씨는 수년간 딸을 보지 못했다. 일을 하다가 붙잡혀 북송된 탓이었다. 그는 모진 수용소 생활에서도 딸의 얼굴만 생각했다.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내게는 딸이 있다.’ 그렇게 수년을 버티고 정씨는 재탈북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정씨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어느 날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의사가 말했다. “심각합니다. 이대로는 감기만 걸려도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얘, 한국에서는 암도 고쳐. 한국에 오면 결핵도 고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국으로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씨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딸 유림이를 위해서도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정씨는 2014년에 한국 땅을 밟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유림이가 한국에 오는 건 쉽지 않았다. 정씨가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돈을 부쳐 유림이의 호구등록을 하게 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중국 정부로부터 친자 관계를 증명받은 뒤 유림이의 여권도 발급받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유림이가 한국에 왔지만 유림이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상처가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한국에 온 유림이의 처지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유림이는 탈북자의 자녀지만 학비 보조 등 일반 탈북 청소년이 받는 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이 사회적 기반이 없는 탈북자의 자녀이지만 출생 장소에 따라 한국에서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유림이 같은 탈북자의 자녀는 쉽사리 정규 학교에 갈 수 없다. 한국말도 못하고 국적도 대부분 중국이기 때문이다. 유림이도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다닌다. 한국말도 잘하지 못한다. 지난해 조사에서 6∼24세의 전체 탈북인 자녀(제3국에서 태어난 경우도 포함) 2475명 가운데 유림이 같은 제3국 태생 아이들은 51%(1249명)를 차지했다.

유림이의 마음이 풀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정씨는 유림이를 끌어안고 또 끌어안았다. 밥을 해주고, 다른 엄마들처럼 잔소리도 했다. 어느 날 저녁 정씨가 또다시 유림이에게 물었다. “한국에 사니까 좋아? 한국 어디가 좋아?” 유림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어서 좋아.” 정씨는 기도했다. “평생 유림이와 함께 살게 해주세요.” 그러나 모녀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유림이 곁에 엄마는 없다. 다행히 탈북민 지원을 해온 교회에서 숙소를 마련해 주고, 후견인을 이어줬지만 삶을 헤쳐나가는 건 유림이의 몫이다. 유림이가 말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일부러 저를 버린 게 아니란 걸 알아요. 열심히 살게요.”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이 기사는 유림이 모녀와 탈북민 지원 교회, 탈북민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 관계자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탈북 청소년에 포함되지 않는 유림이 같은 탈북민의 제3국 출생 자녀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홀로 남겨진 유림이는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하나은행 379-910001-96504, 예금주: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도울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시려는 분들은 02-6900-4400으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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