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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장례식 앞두고 30년 전 사진 꺼낸 북한

중앙일보 2016.12.04 20:10
북한 3일 동안 애도기간 엄수
김정은 직접 대사관 찾아 조문
최룡해 등 대표단 쿠바 도착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사망했다. 전국을 순회한 운구의 안장식은 4일(현지 시각) 진행되며 사회주의 연대를 형성했던 국가,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조문단을 파견했다. 북한에서도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참석한다. 조문단의 단장은 최 부위원장이고 당과 군, 당국의 주요 인사들로 망라되어 있다. 김용수 당 중앙위원회 부장, 서홍찬 인민무력성 제1부상, 류명선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신홍철 외무성 부상 등이 동행한다. 이들은 쿠바에 도착한 뒤 지난달 29일 조의식장인 국립극장을 다녀왔다.
 
 
 
29일자 노동신문에서 28일 조문단이 쿠바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사진 노동신문]

29일자 노동신문에서 28일 조문단이 쿠바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사진 노동신문]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은 외교관례에 비추어 볼 때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놀라운 것은 북한 당국이 28일부터 30일까지 3일 동안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엄수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지도자 사망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애도기간을 엄수하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북한은 주요 기관에 조기를 게양할 것도 지시했다. 파격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평소 공개적인 활동을 자제하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애도기간 첫날인 28일에 주 북한 쿠바대사관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쿠바 대사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하는 김정은. [사진 노동신문]

지난달 28일 쿠바 대사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하는 김정은. [사진 노동신문]


 
북한, 마지막 보루 쿠바 붙잡기
카스트로 잊지 못해 30년 전 사진 찾아

쿠바도 김일성·김정일 사망에 애도
카스트로 30년전 평양 직접 방문

 
북한이 쿠바에 이처럼 매달리는 것은 쿠바가 마지막 남은 우방이어서다. 북한은 쿠바에 가서 조문을 하는 한편, 쿠바와의 절친 관계를 북한 내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카스트로 사망을 알렸던 노동신문 부고에 소개된 사진은 30년 전 카스트로가 방북 당시 찍었던 사진과 동일하다. 북한 당국은 30년 전의 쿠바와의 관계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형제 국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쿠바가 앞으로도 친밀한 우호국가로 남아주길 바라고 있다. 외교관례에서 찾기 어려운 애도기간, 고위급 조문 대표단 파견 그리고 김정은이 직접 대사관을 찾아 조문한 것 모두 북한 당국의 절박한 사정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달 28일 노동신문은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쿠바 혁명, 북한과의 친교관계 등에 관한 약력을 소개했다. [사진 노동신문]

지난달 28일 노동신문은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쿠바 혁명, 북한과의 친교관계 등에 관한 약력을 소개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맹방관계를 유지해왔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 서신으로 보내 애도를 표시하면서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또한 201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직후에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카스트로는 방북 중이던 1986년 3월 10일 김일성에게 쿠바 최고 훈장 ‘호세마르티’를 수여했다. 훈장 수여 직후 찍은 기념사진을 하루 뒤 11일에 공개했다. 지난달 노동신문 부고 사진과 동일하다. [사진 노동신문]

카스트로는 방북 중이던 1986년 3월 10일 김일성에게 쿠바 최고 훈장 ‘호세마르티’를 수여했다. 훈장 수여 직후 찍은 기념사진을 하루 뒤 11일에 공개했다. 지난달 노동신문 부고 사진과 동일하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과 쿠바는 1960년 수교한 뒤 오늘날까지도 사회주의 동맹 관계를 지속해 ‘혁명 1세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김일성과 카스트로의 개인적 유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 냉전체제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환경이 가장 큰 이유다. 노동신문은 28일 카스트로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반제반미 투쟁의 전초선에서 싸우는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전투적 우의와 친선협조 관계를 강화 발전시키기 위하여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며 "조선·쿠바 친선관계 발전에 공헌한 동지의 업적은 길이 빛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스트로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6년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 방북해 친선협조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1986년 3월 8일 북한에 도착한 카스트로는 그날 바로 김일성과 회담을 했다. 당시 회담에는 지금은 사망했지만 고위급 탈북인사 황장엽도 참석했다. 그는 김일성대학교 총장, 당 국제담당 비서 등 북한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10년 후인 1997년에 탈북했다. [사진 노동신문]

1986년 3월 8일 북한에 도착한 카스트로는 그날 바로 김일성과 회담을 했다. 당시 회담에는 지난 2010년 사망한 고위급 탈북인사 황장엽도 참석했다. 그는 김일성대학교 총장, 당 국제담당 비서 등 북한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10년 후인 1997년에 탈북했다. [사진 노동신문]


‘반미투쟁’ 연대 공고화
은밀하게 무기 지원하며 ‘상부상조’

최근 세대교체 및 수교 등 정세급변
쿠바, 북한 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북한과 쿠바는 은밀하게 무기를 거래하면서 관계를 더욱 단단히 만들었다. 카스트로는 지난 2013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김일성이 냉전 말기였던 1980년대에 소총 10만 정과 탄약을 쿠바에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 소련은 쿠바로 보내던 무기 지원을 끊었던 상황이라 북한에 대한 쿠바의 감동은 더욱 컸다고 한다. 탈북 외교관은 북한과 쿠바의 관계를 “참호를 같이 쓰는 동지”라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1986년 방북 길에 미사일 공장에도 방문했고 무기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쿠바에 소총 뿐 아니라 설탕과 같은 생필품도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노동신문에서는 미사일 공장 방문이나 무기 제공 요청 등을 소개하지 않았다. 쿠바가 비밀스럽게 요청했고 북한이 은밀하게 지원했다.

 
카스트로(왼쪽에서 세번째)는 공항에 도착한 뒤 김일성(왼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인민군대를 사열했다. 평양 시내에는 카스트로를 환영하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사진 노동신문]

카스트로(왼쪽에서 세번째)는 공항에 도착한 뒤 김일성(왼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인민군대를 사열했다. 평양 시내에는 카스트로를 환영하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사진 노동신문]


쿠바도 북한의 과거 도움에 보은했다. 대북제제가 강화되어 북한 선박을 면밀하게 감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했다. 2013년 7월 16일 파나마 정부는 북한 선박 청천강 호에서 북한으로 향하던 쿠바 무기를 발견했다. 설탕 포대 밑에서 지대공 미사일, 전투기 엔진 등 무기와 군사장비가 적발됐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 훈장 수여 기념 우표(좌)와 수교 50주년 기념 우표(우)를 발행했다. [사진 통일문화연구소]

북한 당국은 김일성 훈장 수여 기념 우표(좌)와 수교 50주년 기념 우표(우)를 발행했다. [사진 통일문화연구소]



그러나 북한이 쿠바와의 과거 인연을 강조하고 있지만 양측의 밀월이 앞으로도 계속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일성과 카스트로가 상징하는 '혁명 1세대'는 카스트로까지 사망하면서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현재가 아닌 과거 역사로 넘어갔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공식적인 최고지도자에 오르면서 협력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더구나 쿠바는 지난해 미국과 수교를 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실질적인 협력에도 이미 한계가 나타났다.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쿠바의 선택에 관심이 더 몰린다. 쿠바는 미국을 선택하느냐 북한을 선택하느냐의 귀로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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