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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투자 만끽하다 규제 덫 걸려

중앙선데이 2016.12.04 00:48 508호 20면 지면보기

뉴욕증권거래소 장내에 자리 잡은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트레이딩 포스트 모습. 트레이딩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까지 대형 투자은행의 주요 수익원이었다. [중앙포토]



“난 투자은행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베팅하기 시작한 뒤로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네. 살로먼브라더스에서 겪은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아. 다른 곳을 알아보게.”


[투자은행의 세계] 2008년 금융위기와 볼커 룰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리먼브라더스에 다급하게 투자를 요청한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2008년 9월 초, 대량의 고객 자금 인출, 단기 자금시장의 마비, 고위험 자산의 유동성 급감 등으로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리먼브라더스는 2008년 9월 15일 결국 파산을 선언한다. 그 후 투자은행들은 정부의 자본 투입, 즉 국유화를 통해 위기에서는 벗어나지만 영업 환경과 사업 모델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4~2007년 투자은행들은 매년 최대 수익을 경신하고 있었다. 금융 규제 철폐에 앞장섰던 빌 클린턴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며 주택 구입을 부추겼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저금리로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이들이 조성한 금융 환경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글로벌 투자은행은 자본금은 물론 단기 부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위험 자산을 매입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고객이 자본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다른 기업과 인수합병(M&A)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IB(Investment Banking) 업무와 고객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원하는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증권(Securities) 업무는 투자은행이 수익을 창출하는 양대 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기술주 활황에 힘입어 IB 업무가 대박을 냈다면, 그 이후는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트레이딩이 중심이 되는 증권 업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트레이딩의 전성기가 찾아 온 것이다.



투자은행이 트레이딩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시장조성(market making)이다. 시장조성자는 고객이 요구하는 금융상품의 시장 가격을 제시하고 고객 거래가 성사되면 금융시장에서 고객과 반대 방향의 거래를 해 리스크를 없앤다. 고객에게 사서 시장에 나가 팔고, 고객에게 팔기 위해 시장에서 사오는 형식으로 중간 마진을 남기는 것이다. 대부분 마진이 높지 않아 거래 규모가 커야 수익을 키울 수 있는 박리다매 영업이다.



둘째는 글 서두에서 워런 버핏이 우려했던 ‘프랍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이다. 고객 거래가 동반되지 않고 은행 스스로 조달한 자금으로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거래다. 시장을 분석한 후 시장 가격을 살펴 적절한 타이밍에 해당 상품을 사고 판다. 프랍트레이딩은 금융위기 이전 글로벌 투자은행의 성과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역량이었다. 당시 투자은행은 리스크 감수를 적극 장려했다. 트레이더 회의에 들어가면 모두 자신의 트레이딩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나눴고, 본인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프랍트레이딩의 일환인 ‘자기자본투자(Principle Investment)’는 투자은행이 자본금을 상장·비상장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의 자기자본투자 담당자들은 은행에서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은 후 KKR·블랙스톤·칼라일 등과 같은 사모펀드로 이직하거나 자신의 사모펀드를 직접 설립했다. 한국에서도 골드먼삭스 출신으로 오비맥주 투자와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KKR 아시아의 조셉 배 회장과 최대 토종 사모펀드 MBK의 설립자 김병주 회장, 모건스탠리 출신으로 한앤컴퍼니를 설립한 한상원 대표가 그런 흐름을 탔다.



2008년 9월 15일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뉴욕 본사 전화를 받고 급히 귀경길에 올랐던 긴 하루로 기억한다. 사무실로 달려가 리먼브라더스를 상대로 한 모든 거래의 세부 내역을 파악한 후 본사에 보고하고, 당장 다음날부터 시장에서 어떻게 관련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거래를 할지 고민했다. 그날 이후 우리 앞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2008년 10월, 투자은행으로 남아 있던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바뀌었고, 이들을 포함한 9개 은행은 총 1250억 달러의 정부 자금을 수혈받게 된다. 덕분에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의 위험은 가라앉았지만 그 대가로 혹독한 금융규제가 생겨났다. 전 모건스탠리 이사회의장 겸 최고경영자 존 맥(Mack)의 표현처럼 “정부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규제가 바로 ‘볼커 룰(Volker Rule)’이다. 과거 투자은행의 최대 수익원이었던 프랍트레이딩을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든 이 규제는 은행이 고객을 위한 시장조성자의 역할에만 머물도록 제한해 과도한 리스크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강화된 규제로 투자은행의 리스크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트레이딩 문화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모건스탠리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골먼은 트레이더들에게 리스크의 규모를 줄일 것을 지시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헤지펀드로 떠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규제는 유능한 트레이더들이 투자은행을 떠나 규제가 없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로 이직하도록 만들었다. 클린턴 부부의 사위 마크 메즈빈스키도 프랍트레이더로 있었던 골드먼삭스를 떠나 자신의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금융위기를 목격했던 투자은행들은 안정된 자금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안정적인 자금원은 주식 발행이다. 금융업계는 보통 투자은행의 자본 조달 비용을 10%라고 여겨 자본수익률(ROE)이 10%를 초과해야 주주를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본다. 주식 발행은 그만큼 비싼 자금원이다. 그러나 비록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투자은행이 은행지주회사가 되면서 안정적이고 동시에 저렴한 자금원인 예금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소매 예금을 늘리기 시작했다. 골드먼삭스는 2015년 GE캐피털의 인터넷은행을 인수하면서 예금의 규모를 1240억 달러까지 늘렸다. 모건스탠리는 2009년 씨티그룹으로부터 스미스바니를 인수하고 소매 자산관리 영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예금이 1520억 달러에 달한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야말로 금융위기의 주범인데, 강화된 규제의 피해는 죄 없는 대다수의 상업은행들이 입고 있다”고 비판해온 전 웰스파고은행 이사회의장 겸 최고경영자 리차드 코바세비치는 “농구선수가 미식축구선수로 뛰는 격”이라며 두 은행의 새로운 시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 일변도이던 금융업계에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금융 산업 규제 법안인 ‘도드-프랭크법’에 반대 의사를 보여 왔다. 이는 도드-프랭크법의 하위 규제인 볼커 룰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의 또 다른 공약에 따라 1999년 폐지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금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이 다시 부활된다면 특히 투자은행들에게 유리한 영업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최정혁전 골드먼삭스은행 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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