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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 독재자 사망 1년 내 민주화 된 건 4%뿐

중앙선데이 2016.12.04 01:06 508호 12면 지면보기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죽음은 20세기 독재자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였다. 카스트로는 1959년부터 49년간 쿠바를 통치한 냉전시대 미주대륙 최후의 공산주의 지도자다. 그는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좌를 넘겨준 뒤에도 여러 차례 연설과 성명을 통해 쿠바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카스트로의 죽음으로 쿠바는 비로소 옛 독재자의 그늘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카스트로처럼 20세기에 권력을 차지한 독재자들이 최근 노환으로 잇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5년 사이에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멜레스 제나위 전 에티오피아 대통령,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 카스트로를 포함해 6명의 독재자가 고령에 따른 질병으로 사망했다.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강력한 실권을 행사해왔던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도 지난 10월 70년이라는 세계 최장 재위 기간을 뒤로하고 8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지구촌 독재자 세대교체

이 같은 독재자들의 세대 교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독재자 중에도 고령으로 인한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오는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분석에 따르면 집권 중인 전 세계 독재자 55명 가운데 20%인 11명이 69세 이상이다. 36년째 독재 중인 로버트 무가베(92) 짐바브웨 대통령은 고령 탓에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사망설이 나온다. 비교적 젊은 편인 리셴룽(65) 싱가포르 총리도 지난 8월 생방송 연설 도중 비틀거리다가 부축을 받고 연단에서 내려오면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나이 든 독재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지켜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낙관론이다. 장기 집권한 독재자의 죽음이 정치적 혼란을 불러오고, 이 혼란 속에 독재가 종식되면서 민주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다. 1970년대 포르투갈이 대표적이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1932년 총리에 취임해 1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36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끝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살라자르는 79세가 되던 68년 욕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에 빠졌다. 살라자르의 측근인 마르셀로 카에타누 총리가 뒤를 이었지만 장기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살라자르는 70년 사망했고, 그로부터 4년 뒤인 74년 군부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살라자르의 독재 체제는 마침내 종식됐다. 이 혁명이 시민들이 혁명군을 지지하며 병사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는 일화로 유명한 ‘카네이션 혁명’이다. 이후 포르투갈 군부는 과도정부를 거쳐 76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면서 민간에 정권을 완전히 이양했다.이웃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37년간 철권통치를 지속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75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고, 3년 뒤인 78년 스페인 헌법이 공표되면서 스페인은 현재의 입헌군주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같은 ‘민주화 대망론’은 장기 집권한 독재자가 사망할 때마다 흔히 제기되는 관점이다. 가까운 예로는 북한이 있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일각에선 김정일이 집권에 실패하리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북한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한국 측과 통일을 협상하는 등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후계 구도를 미처 다 준비하지 못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땐 더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앞다퉈 젊은 김정은의 통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북한 정권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붕괴하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북한 체제의 급변 가능성을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사례는 일부 전문가가 독재자의 사후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독재자의 사후에 민주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사례는 아주 드물었다. 지난달 미국 민주주의저널(Journal of Democracy)에 독재자들의 사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에리카 프란츠 미시간 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2011년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부터 독재자들의 사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모든 이들이 북한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거 독재자 사망 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46년부터 2012년까지 자연사한 독재자는 8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독재자의 사망이 1년 내에 민주화로 이어진 경우는 고작 4%에 불과했다. 9%는 또 다른 독재 정권으로 교체됐고 87%의 경우엔 정권이 그대로 유지됐다. 독재자의 사망 이후 5년 내에 정권이 붕괴한 경우도 24%에 그쳤다. 이 가운데 민주화로 이어진 것은 37%였으며 나머지 사례에선 새로운 독재 정권이 집권했다. 독재자의 사망은 정권 교체나 민주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프란츠는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한다. 독재자가 노환으로 사망할 정도로 장기 집권이 가능했다는 것은 오히려 정권이 그만큼 안정됐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그의 사망이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포린폴리시는 “장기 집권 도중 자연사하는 독재자들은 고도로 숙련된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신의 통치에 위협이 되는 수많은 요소를 제거하고 자신이 사망한 뒤에도 유지될 수 있는 견고한 통치 체제를 구축해 놓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 집권한 독재자가 사망하면 이를 가장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은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자들이다. 독재자와 함께 권력을 누려온 이들은 급변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혼란이 초래되고 체제가 흔들리면 기득권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자들은 자신이 직접 독재자의 빈자리를 차지하기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노련하고 나이 든 독재 정권의 정치인들이 젊고 경험도 없는 독재자의 아들을 새로운 지도자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제르바이잔을 34년간 통치하고 2003년 사망한 게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된 일함은 젊어서부터 습관적으로 도박을 하고 여자 문제가 복잡했으며 정치 경력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친의 권력을 승계하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페즈 알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의 아들 바샤르가 2000년 권력을 승계할 때도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언론은 바샤르가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해 승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두 지도자는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대통령직을 역임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권력 세습이 아주 기상천외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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