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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시계 멈춰라” 352조 시장 도전

중앙선데이 2016.12.04 01:04 508호 14면 지면보기

1 길이 275㎝의 원통에 영하 196도 액체질소를 주입해 냉동인간을 보관하는 알코어생명연장재단. 2 세포를 젤리 형태로 만든 바이오 잉크를 층층이 쌓아 귀를 만드는 모습. [사진 알코어, 중앙포토]



최근 ‘현대판 불로초(不老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순실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면서다. 이 시술은 체외에서 배양된 자신의 줄기세포를 다시 인체에 주입하는 것으로 노화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불법인 데다 1회 시술비만 수천만원에 이르지만 부유층이나 지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고은지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평균 기대 수명은 71.5세로 45년 전보다 열 살이나 증가했다”며 “평균 수명이 빠르게 늘면서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민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특히 나이가 들면서 손실되는 기능을 제어하거나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는 항노화(抗老化)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며 “세계 항노화 관련 제품 시장 규모만 약 3000억 달러(약 352조원)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현대판 불로초’ 찾는 바이오·IT 기업들

항노화 산업이 부각되면서 학계·제약계뿐 아니라 바이오·정보기술(IT) 기업까지 관련 연구와 사업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아 지역의 휴먼롱제비티(HLI)다. 2000년 세계 처음으로 인간 지놈(genome)을 해독한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2013년 설립했다. 지놈은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로 염색체에 담긴 유전정보를 뜻한다. 벤터 박사는 적어도 100만 명의 지놈을 분석해 암·심장병 등 고령자에게 흔한 질병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모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휴먼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 연구에 벤처캐피털 등이 700만 달러(약 82억원)를 투자했다.



바이오 기업들은 수명 연장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엔 냉동인간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이 있다. 지난해 5월 중국의 유명한 60대 여류 작가 두훙(杜虹)이 췌장암으로 눈을 감은 직후 얼음관에 보관됐다. 이처럼 현재 의학기술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가 담긴 원통 모양의 용기에 보관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약 3억6000만원이 든다. 비싼 비용임에도 올해 9월까지 냉동인간이 되겠다며 가입한 회원이 1100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도 수명 연장 연구에 뛰어들었다. 2013년 항노화 세포 연구소인 칼리코를 설립했다. 대형 제약사 애브비 등 다수의 제약기업은 물론 대학의 연구기관과 손을 잡고 연구 중이다. 특히 분자생물학자 신시아 캐니언을 스카우트해 화제가 됐다. 그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회충의 수명을 늘리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유명 IT 부호들이 개인적으로 ‘수명 연장’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실험 도구 삼아 ‘120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포 재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장호르몬(HGH)을 알약으로 매일 복용하고, 장수의 최대 적으로 꼽는 설탕을 전혀 먹지 않는다. 또 자신이 이끄는 파운더스펀드를 통해 14개 노화 관련 연구기관에 투자한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은 1997년 일찌감치 엘리슨 의료재단을 설립해 노화 방지 연구에 4억 달러를 투자했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는 자신이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관련 유전자 연구에 1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포의 염색체 끝의 형광색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 길이가 길수록 노화 속도가 늦다. [중앙포토]



IT 기업들이 노화 연구에 눈길을 돌린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이 분야 연구에 속도가 붙으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어서다. 고은지 연구위원은 “1930년대만 해도 소식(小食) 이론처럼 노화를 늦추는 생활습관을 연구했다. 요즘엔 노화를 억제하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는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말했다. ‘노화시계’로 불리는 텔로미어의 발견도 빼놓을 수 없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염색체 말단 부위를 감싸고 있는 캡 모양의 구조물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져 어느 순간 죽게 된다. 세포가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게 노화의 원인이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텔로미어 연구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IT 기업들은 노화 연구에 IT를 접목해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 인공장기 연구에 활용되는 3D프린팅 기술이 대표 사례다. 의료계에선 턱없이 부족한 장기 기증 대신 3D프린팅 기술로 사람의 장기와 똑같은 인공장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특히 세포를 젤리 형태로 만든 바이오 잉크를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피부나 인체장기를 만드는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화 연구는 어느 단계까지 왔을까. 전 세계적으로 걸음마 단계인 줄기세포 치료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이슈가 됐던 줄기세포 시술이 아니다. 줄기세포 치료제는 줄기세포를 재료로 치매·루게릭병 등 한계에 부딪힌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이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개발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7개다. 이 중 4개가 한국산이다. 또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관련 임상시험 건수는 46건으로 미국(146건)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세포치료 연구개발 업체들은 최순실 사태 여파로 긴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황우석 사태처럼 전반적으로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심어져 투자 지원이 줄거나 규제가 강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난달 24일 한국인 41명의 유전자 정보를 통합한 한국인 표준 지놈 지도가 발표됐다. 연구팀을 이끈 박종화(생명과학부 교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장은 “한국인 특성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밝혀내면 한국인만의 노화 원인은 물론 한국인 체질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유전자 자료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의료 목적이 아니고서는 유전자 검사가 어렵다”며 “한국의 노화 연구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구 분야에 한해서라도 각종 규제를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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