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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발바닥을 이렇게 푸대접했네

중앙선데이 2016.12.04 00:32 508호 20면 지면보기
시력이 떨어지면 안경을 쓴다. 맨 눈의 조절기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서다. 역겨운 냄새는 모두 싫어한다. 숨 쉬기가 괴로워서다. 피부가 거칠어지면 괴롭다. 푸석하고 깔깔할 뿐 아니라 남 보기에도 민망해서다. 값만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짜증이 난다. 맛있는 생명의 먹거리를 알고 있어서다.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들으면 분노가 치민다. 소중한 시간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도 모자라서다.



오감충족의 방법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채우는 즐거움이다.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감각이란 몸 전체에 퍼져있지 않던가. 헌데 우리는 신체부위에 공평한 대접을 하지 않는다. 차별과 억압은 제 몸뚱이에서 조차 벌어진다. 드러나 눈에 보이는 얼굴 부위의 대접이 가장 융숭하다. 바르고 붙이며 더 화려한 디자인의 물건이 쏟아지는 이유다. 가려진 몸뚱이와 존재감 없는 곳은 언제나 서럽다. 여성의 미모가 경쟁력이듯 서열에 밀린 부위도 푸대접뿐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1- 페닥(pedag) 깔창

인간의 감각기관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사물을 보는 눈과 음식의 맛을 감별하는 혀, 살갗에 닿는 감촉의 피부는 민감하다. 누구나 좋고 나쁨을 즉각 알아채지 않던가. 충족의 노력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전의 것보다 조금만 낫다면 만족감은 금방 올라간다. 일상을 채우는 대부분의 생활양식만으로도 별 무리 없이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화질 좋은 TV가 나왔다고 즉시 새로 바꾸는 사람은 드물다. 비싼 음식을 먹는다 해도 만족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대충 넘어가도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보다 둔감한 냄새 맡는 코나 소리 듣는 귀는 다르다. 구체적인 앞의 감각과 비교해 차이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함과 느낌이 지속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후각과 청각은 자극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확실히 많다. 하지만 둔한 코와 감각도 좋은 걸 알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진다. 한 번 높아진 상태의 각인 효과는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고질병을 남긴다.



감별의 기준이 정확하지 않은 추상적 감각 충족이 외려 문제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드는 까닭이다. 난 귀 하나 즐겁자고 평생 오디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조금이라도 나은 소리를 듣기위해 지치지도 않고 스피커와 앰프를 바꿔대고 음반을 사들였다. 그 노력과 시간으로 공부를 했다면 아마도 박사 학위 서넛은 내 손에 들려있었을지 모른다.



냄새는 또 어떤가. 인간의 마지막 호사로 불리는 향의 탐닉이다. 침향을 미향의 최고로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귀한 침향을 사들이고 즐기기 위한 노력은 상상을 넘는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과 분위기까지 마련하는 데 평생 번 돈을 다 쏟아 부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구두는 멋진데 발이 편하지 않다니]

무릇 모든 감각은 각자의 중요도에 따라 해소의 방법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세상의 온갖 물건은 인간의 세분화된 감각충족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다. 작은 차이를 하늘만큼 여기는 마음으로 만드는 게 ‘이러한 물건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다. 큰 문제엔 외려 덤덤해지는 게 사람이다. 악다구니 쓰고 죽기 살기로 대드는 사안이란 언제나 우습고 찌질해 보이는 일 아니던가. 고급 취향의 물건 또한 욕망과 기대 사이의 틈을 얼마나 세밀하게 채우는가에 달려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의 충족 없이 큰 것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신체부위를 떠올려본다. 배와 등, 팔 뒤꿈치와 무르팍, 발바닥 같은 곳이 아닐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식이 신체 부위에도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일 게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에 뜨이지 않아 드러낼 필요가 없거나 못 생겨서 감추고 싶은 공통점이 있다.



중요도에 비해 가장 푸대접 받는 부위가 발바닥이라 생각한다. 발은 신발로 감싸면 된다. 멋진 신발과 구두가 지천에 널린 이유다. 모두가 신경 쓰는 관심은 대개 여기까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 있다. 폼 나는 명품신발이 하나도 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을 위해 발바닥까지 배려하지 못한 무신경은 너무했다. 신발은 발바닥을 담는 그릇이다. 발바닥을 편하게 감싸지 못하는 신발은 아무리 화려해도 좋은 물건이 아니다.



우리 집 신발장엔 꽤 많은 숫자의 신발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던 신발만 집중적으로 신게 된다. 발이 편하다는 이유를 빼면 다른 요인은 궁색해진다. 자주 신는 신발이라고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걸으면 바닥이 딱딱해지거나 피로감을 들게 한다. 구두도 그렇고 편한 캐주얼 타입의 신발도 마찬가지다. 신발에게만 온갖 혐의를 다 씌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천연 가죽에 식물성 추출물로 무두질]

우연히 의문이 풀렸다. 부산에 있는 성신신소재란 회사를 방문했던 일이 계기다. 세계 유명 브랜드 운동화에 들어가는 인솔(Insole·중창)을 생산하는 큰 회사다. 충격흡수와 하중 분산 기술이 들어간 깔창을 넣은 신발을 신어보고 깜짝 놀랐다. 발뒤꿈치로 전해지는 충격이 이토록 부드럽게 흡수될지 몰랐다. 신발보다 깔창이 착용감을 좌우한다는 놀라운 사실의 확인이다.



발바닥에 자기 체중의 전부가 실린다. 막중한 사명에 비해 대접이 소홀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단위면적당 몰리는 하중으로 치면 수 톤의 압력을 받고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신고 있는 구두의 밑창은 언제나 딱딱했다. 불편과 발바닥의 고통은 당연했다. 나 보다 먼저 문제를 실감했던 이들이 이미 대책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베를린 시내에서 의외의 모습과 마주쳤다. 명품 구두 대신 명품 깔창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번화가 전문점에서 페닥(pedag)을 취급하고 있다. 발바닥을 위한 온갖 아이디어를 실천한 세부의 충실함에 놀랐다. 500여 종이 넘는 깔창의 다양함은 오로지 편한 보행을 위한 전문성의 흔적이다.



60년 넘게 깔창만 만들어온 회사의 제품은 달랐다. 스포츠 의학자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동원되어 인체공학의 완성을 이어간다. 각자가 좋아하는 신발에 필요한 깔창을 선택해 걷기의 쾌적함을 더하면 그만이다. 화려한 조명 속에 진열된 깔창은 신발 속에 넣는 물건이란 칙칙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 귀퉁이 간이 구두닦이 부스 벽에 걸려 있던 구질구질한 인상의 깔창이 아니다. 조악한 포장지와 메이커의 신뢰감 때문에 사고 싶어도 사지 못했던 것이 서울의 깔창이었다. 독일에선 과학적 효능을 입증한 발바닥을 위한 상품이 번듯한 전문점에서 팔리고 있다.



페닥의 깔창을 사서 신던 신발에 넣었다. 당장 발바닥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난 걷고 돌아다녀야 밥이 나오는 사람이다. 뒷머리를 때리던 걷기의 충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여름 맨발로 신고 돌아다니던 신발은 땀으로 미끌거리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깔창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천연 가죽으로 만들어진 깔창은 무두질조차 식물성 추출물로 했다. 충격흡수 실리콘과 발의 모양을 잡아주는 플라스틱 프레임이 뒤축에 있다. 서로 다른 소재를 붙인 접착제에선 이런 물건이 으레 풍기던 휘발유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인체에 해로운 소재와 방법을 쓰지 않고 깔창을 만든 게 맞다.



무관심 속에 살던 내 발바닥이 편안해 졌다. 무디고 무딘 발바닥 감각이 제대로 대접받은 셈이다. 좋은 상태가 무엇인지 알아버리지 않았을까. 이젠 페닥보다 나쁜 감촉을 참지 못할 것이다. 발바닥을 인정해 주길 잘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게 된 발바닥이 신이나 더 열심히 일할 테니.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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