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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세월 이겨낸 강운구의 다큐 사진

중앙선데이 2016.12.04 00:26 508호 28면 지면보기

2016년 흑백판 『경주남산』의 ‘용장골 능선과 삼층석탑’(위), 1987년 컬러판의 같은 작품.



여기 30년 간극을 둔 사진 두 장이 있다. 경주 남산의 용장골 능선과 삼층 석탑을 찍은 흑백과 컬러 사진이다. 어느 쪽이 1987년 것이고, 또 2016년 것일까. 해묵은 산하의 기운이 단색 판화처럼 떠오른 흑백이 옛날 사진인가. 아니 반대다. 검은 산등성이와 노을빛 하늘의 강렬한 대비가 빛나는 컬러가 옛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강운구(75)씨는 1987년 컬러판 『경주남산』(열화당)을 펴낸 지 30년 만에 흑백판 『경주남산』을 간행하며 세월이 훔쳐가지 못한 작가 정신의 도저함을 토로했다.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많은 시간이 흘러 흘러갔다. 그간 남산(南山)은 바뀌었고 나는 늙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삼십년도 더 넘은 그때의 기억이, 바위에 새겨진 부처처럼, 각인되어 있다.”



『경주남산』은 ‘사진으로 쓴 한민족의 서사시’란 상찬을 들었던 한국 출판계의 고전이다. 사진가 강운구를 축으로 편집디자이너 정병규,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의기투합해 200여 차례 등정, 150점 수록을 위해 8000여컷을 찍는 진기록을 남겼다. 경주 향토사학자 윤경렬은 “바른 계절, 바른 시간을 잡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렸을까”라며 남산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 고마움을 표했다.



처음 남산을 찍을 때 강운구 작가는 “단순화하여 집중하기 쉽게 하려고”, “대상을 동시에 컬러와 흑백으로 인식하는 것”이 벅차서 흑백으로 찍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문득문득 남산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흑백 사진을 안 찍은 걸 후회하곤 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는 디지털을 업고 30년 전 컬러로 찍은 사진을 흑백으로 변환했다. 사진에 짙은 명암의 추상적 빛깔만 남으면서 컬러의 잔소리들이 사라지니 대상의 본질이 또렷해졌다. 작가는 “내가 한 것은 그저 요령 피워 얼버무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대상에 접근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흑백으로 다시 만나는 경주 남산은 우리 시대의 사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의 사진들은 거의 다 사진 같지 않다. 그런 추세가 어찌나 강한지, 똑바른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한쪽으로 밀려나 주눅 들어 있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럼에도 “나는 소수에 속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오늘도 그는 단 한 줄기 햇빛을 기다리는 노동자로 이 땅 어딘가 길 위에 서있다.



『경주남산』 흑백판 출간에 맞춰 서울 자하문로 ‘사진위주 류가헌’(02-720-2010)에서 6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강운구 사진전-경주 남산’이 열린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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