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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거인은 ‘시민’이다

중앙선데이 2016.12.04 00:26 508호 27면 지면보기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1번 음반



1889년 오스트리아는 충격적인 스캔들로 새해를 맞이한다. 유부남이었던 루돌프 황태자가 마리아 폰 베체나라는 여인과 시골의 작은 오두막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마이엘링 사건’으로 알려진 이 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순애보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요제프 황제는 자살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가톨릭 교리를 피하기 위해 사망 원인을 조작한다. 증거 인멸을 위해 마리아의 시신은 다른 곳에 숨겨버린다.


[WITH 樂]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한 세기가 흐른 뒤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후의 입을 통해 놀라운 증언이 나온다. 황태자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견이 있었던 황제에 의한 암살설도 있었고, 독일과 프랑스의 알력에 의한 타살설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벌어진 일도 진실을 밝혀내기 쉽지 않은데 한 세기 전 일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마이엘링 사건은 쇠락해가던 오스트리아 제국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었다. 우울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19세기 말 빈 시민들은 예술과 문화라는 도피처로 피신한다. 청년 구스타프 말러는 첫 번째 교향곡을 그즈음 완성한다.



말러의 첫 번째 교향곡 ‘거인’은 마이엘링 사건이 있었던 1889년 초연된다. 당시 말러는 지휘자로서 앞길이 창창했으나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교향곡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작곡은 작곡가에게, 지휘자는 지휘만.” 이 정도의 비평은 점잖은 편이었다. 초연의 실패 때문이었는지 완벽주의자였던 말러는 이후 10년 가까이 이 곡을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후배 지휘자들에게 “악보를 연구하다가 부족하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더 수정해도 좋아”라고 말한다. 평론가들은 악상 기호를 촘촘히 새겨 넣는 작곡가 말러와 해석의 자유분방함을 선호하는 지휘자 말러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도 말한다. 덕분에 현대 지휘자들은 좀 더 넓은 도화지 위에서 말러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말러 해석에는 크게 세 가지 큰 흐름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나 클라우스 텐슈테트처럼 감정 이입이 된 연주다. 말하자면 약간의 조울증을 앓는 야구 감독이 “번트 따위는 없다. 오로지 강공이야”라는 식의 연주다. 다른 하나는 순음악적인 접근에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을 강조한 연주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 피에르 불레즈 등이 그렇다. 얼음을 양손에 꽉 쥐고 듣는 것 같긴 하지만 오디오가 좋을수록 음향적 쾌감을 만끽할 수는 있다.



다음은 어디 가나 있는 온건파 중용주의자들이다. 교향곡 1번 ‘거인’에 있어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연주가 그렇다. 공부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고 집도 부자인 모범생 같은 연주다. 최근 자주 듣는 오자와 세이지와 보스턴 심포니의 70년대 연주 역시 이 부류다. 미국으로 조기유학 간 일본 도련님 스타일의 연주다.



오자와 세이지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과 함께 당시만 해도 블루오션이었던 말러 전곡 연주로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을 때 그의 부지휘자로 있었다. 하지만 둘의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유대인이었던 번스타인이 삼국지의 관우처럼 자신감과 오만함 사이를 오갔다면 오자와는 결코 작전에 실패하지 않는 조자룡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미국 오케스트라 중 가장 유럽적인 소리를 들려준다는 70년대 보스톤 심포니는 외유내강의 다이아몬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교향시처럼 자연을 묘사한 1악장의 초반부, 철학자 아도르노가 세계의 파국으로 읽어낸 1악장 후반부의 폭력적인 전환, 4악장의 팽팽한 윤기가 흐르는 금관 파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다. 단점을 찾자면 알콜 냄새를 풍기는 3악장의 흥청망청한 분위기와 장례 행진부분이다. 굵직한 베이스의 보폭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 출신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이 보여준 전설적인 3악장에 비하면 물 탄 소주나 카페인 없는 커피 같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탄탄한 연주다.



말러는 여러 교향곡에서 고통과 어둠의 세계가 금관의 사자후(獅子吼)로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모습을 그려낸다. 교향곡 1번 ‘거인’의 4악장도 이와 같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가 염두에 둔 거인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세기의 진정한 거인은 ‘시민’이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도, 앞으로 굴릴 수도 있는 힘은 바로 늘 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주말마다 거인들이 만드는 거대한 촛불의 교향곡을 보고 듣고 있는 셈이다. 절망의 시대에도 광장에서는 위대한 희망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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