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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2

중앙일보 2016.12.04 00:01
<외로워야 산책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독립을 했다. 이 나이 먹고 이제야 부모 집에서 나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모두가 어쩌다 보니 지금의 자신이 된다. 혼자 살기 시작한 동네는 연남동이다. 미디어는 ‘핫 플레이스’라 부르고 엄마는 ‘전통적인 양반 동네’라 부르는 곳. 홍대 번화가와 가깝지만 그 소란함에서는 벗어나 있는 곳. 그러나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곳. 그곳이 나의 동네다.
 
나는 효율적인 걸 좋아한다.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홍대입구 2번 출구에서 집까지 오는 최단 코스를 나는 안다. 그 코스는 큰 길만의 총합도, 골목만의 총합도 아니다. 큰 길과 골목과 대각선 도보와 무단횡단의 총합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가끔 집으로 오는 길을 일부러 돌아올 때가 있다. 산 책은 자주 꺼내서 읽지만 산책은 따로 안 하는 나에겐 이때야말로 산책 시간이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나는 전화를 건다. “네? 라디오 원고 마감이 1시간 후라고요? 아이고, 이거 급하네.” 조건이 갖춰졌다. 급할수록 돌아가자.
 
2번 출구로 나온 나는 떡볶이 노점 앞을 지난다. 이 집의 비밀은 이미 알고 있다. 아주머니가 떡볶이에 백세카레 가루를 넣는 걸 본 순간 나는 엉겁결에 ‘백세인생’을 흥얼거렸다. 그 아주머니는 이애란을 닮았다. 팩트체크 하시길. 3번 출구 쪽으로 가면 ‘연트럴파크’가 펼쳐진다. 나의 가장 주된 산책로 되겠다. 나는 아이팟을 꺼내 노래를 윤종신의 ‘동네 한 바퀴’로 바꾼다. 연트럴파크에서 나는 화가 나 돌아서 가는 여자를 종종걸음으로 좇아가본 적이 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면 그날의 영화가 상영된다. 스크린에 오가는 연인의 그림자가 진다. 아프니까 청춘은 아니지만 외로워야 산책이라고 다짐한다.
 
연트럴파크를 이겨내고 왼쪽으로 돌면 ‘멕시칸 치킨’이 있다. 그 어떤 체인점 치킨보다 힙한 곳. 후라이드를 시키면 양념장을 공짜로 주는 곳. 전화를 걸어 “여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져다주세요.”라고 해도 허허 웃어넘길 것 같은 선한 아저씨가 주인인 곳.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이아립의 ‘서라벌 호프’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호프집. 허름하지만 그래서 끌리는 호프집. 이아립의 서라벌 호프가 나에게는 멕시칸 치킨이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우정의 말을 두세 번 주고받은 적이 있다. “연남의 꿈은, 우리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다 왔다. 길 하나만 건너면 집 앞이다.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이 있다. 나는 왜 가끔 일부러 돌아서 집에 오는 걸까. 나의 이 산책 시간은 때때로 뭉클하지만 그보다 자주 외롭다. 어떨 때는 자해를 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 철저하고 정확한 고독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는 유일하게 나와 온전히 마주하고 나와 상의한다. 얄팍한 외로움에 흔들려 내가 완성되는 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어폰을 고쳐 꽂고 길을 걷는다. 철저하게 외로웠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던, 이 노래들.
<이해심과 무관심>
 
이승환의 음악을 동시대에 듣기 시작한 건 그의 네 번째 앨범 [Human]부터였다. 1995년이었으니 국민학교 6학년 때다. 한글의 자동완성 기능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친절하게 고쳐주었지만 나 역시 친절하게 한글의 얼굴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내밀며 원래대로 고쳐주었다. 나한텐 영원히 국민학굔데? 내 추억 함부로 빼앗지 말래? 아무튼 동네 음반가게에서 [Human] 카세트테이프를 사가지고 오던 길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어리고, 모르는 게 많았지만, 이승환의 발라드가 좋다는 사실은 알았다. 사운드는 또 어찌나 있어보이던지. 참고로 이 앨범부터 이승환은 사운드에 엄청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승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제로 만난 건 2년 전쯤이다. 그는 2014년 3월 26일에 11집 [FALL TO FLY 前]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8번째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새 책을 몇 권씩 가방에 넣고 다녔다. 혹시라도 책을 줘야할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가방에서 바로 꺼내서 주기 위해서였다. 볕이 좋았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상수동 이리카페에 앉아 여자들 엉덩이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쟤한테 말 걸어볼까? 지금 바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보자. 약속 있다고 하면 나도 엄마랑 약속 있는 거 깜빡했다고 해야지. 그런데 그 순간, 이승환이 내 앞을 지나갔다. 헐. 알고 보니 그는 이 골목에서 신곡 <화양연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김유신의 말이 저절로 김유신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듯 나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의 책을 선물한 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 사진은 좋아요를 100개 가까이 받았다.
 
마침, 이 글을 쓰는 당일, 이승환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다. 많은 이가 글의 전개를 위해 이런 말을 적당히 지어서 하지만 이건 정말 팩트다. 난 늘 #FACT 로 가는 사람이니까. 갑자기 듣고 싶어진 노래는 ‘다만’이었고 그중 한 구절이 내 마음에 박혔다.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 대박. 다시 한 번 플레이.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 하! 어릴 땐 이 구절을 왜 몰라봤을까? 난 그 때 전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 했는데. 이제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와는 작별하자. 틀린 적 많다. 대신에 이승환 최고의 가사는 이것이다.
 
아마 이 구절은 앞으로의 내 삶을 바꾸어놓을 것 같다. 신청해놓은 혜민 스님의 강좌를 방금 막 취소했다. 음악에 이런 힘이 있었나? 이래서 음악이 국가가 유일하게 허락한 합법적인 마약인 건가?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 이 구절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 늘 친절하고 상냥하며 예의 바른 여자들을 내가 별로 안 좋아했던 이유를. 나에게 얼굴 한 번 안 찡그리고 늘 미소로 대해주지만 실은 나의 그 어떤 비밀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실체를 말이다. 내가 뭘 하더라도 이해한다고? 기분 나빴던 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왜 날 좋아하지 않아. 더불어 작은 일에도 늘 크게 웃는 여자와 같이 있는 게 늘 외로웠던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작은 일에는 작게 웃어도 되니, 나의 일에만 작게 웃는,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하고 화도 내는 여자. 김치볶음밥은 내가 만들 테니까.
<인 다 소울>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프린팅 다 뜯겨나간 반팔 티셔츠를 아무거나 입은 채로 얼음컵, 허니버터칩, 계란말이 등을 게걸스럽게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는데 뒤에 있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 인다소울 시절에 자주 갔는데..." 음? 나한테 말 거는 건가? 아... 좀 취한 듯 보이는 이 남자는 아마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다녀온 모양이다.
 
‘인다소울’(In Da Soul)은 군대 인트라넷에 있던 흑인음악 동호회였다. 말이 동호회지 제로보드 게시판에 흑인음악에 관한 글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즉 입대 전에 흑인음악 좋아하던 놈들이 입대 후 각자 다른 부대에서, 다른 계급장을 달고 군대 안 컴퓨터를 통해 흑인음악 얘기를 하던 곳이 바로 인다소울이었다. 육군, 해군, 공군 상관없이 군인이고 흑인음악을 좋아한다면 접속하는 곳. 인트라넷이니 당연히 인터넷과는 차단되어 있었고 오직 군대 안에서만 접속이 가능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부대에 있었지만 흑인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휴가도 서로 맞춰 나가서 얼굴도 보고 그랬다. 나는 인다소울의 시삽이었다. 입대 전에도 이미 음악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마다 마지막에 ‘bgm. Nas - Halftime' 같은 줄을 남기곤 했다. 그러나 음악이 흘러나온 적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군대 안에서 음악은 잘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음악을 듣고 싶은 병사들의 바람이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모니터에라도 그냥 글로 써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림이 없는 허공에 농구공을 던진 황태산의 슛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 보니 처량하네. 가끔 인다소울이 없었다면 나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상상한다. 물론 상상도 하기 싫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직 힙합 들으세요?” “아 네. 아직도 듣죠. 저 봉현님 인스타도 가끔 구경하러 가요.” “댓글 달아주세요. 맞팔하게. ㅋ” 그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다. 각자의 부대 안에서 일병이나 병장 같은 걸 달고 인다소울 게시판을 통해 소통하던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내가 군대를 조금 늦게 갔으니까 아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야, 다들 뭐 하며 사냐? 난 그때랑 변한 거 없다. 난 한 번도 힙합 안 좋아해 본 적 없다. 전역하고 힙합으로 이것저것 해오고 있는데, 요 몇 년 사이는 좀 할만하다. 솔직히 내가 니네보다 돈도 더 잘 번다. 그때 그냥 좋아서 막 들었던 것 갖고 이렇게 될 줄 나도 몰랐지. 어때? 스웩이냐? 좀 자랑스럽냐? 내가 못할 것 같았어? 자랑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우리의 꿈은 졸라 영원하다는 얘기야. 한국에서 힙합은 안 될 줄 알았는데, 너네도 지금 내 모습 보니까 좋지? 솔직히 너네한테 졸라 인정받고 싶다. 인정해줘. 젠장. 아무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해라. 그때 인다소울 잊지 말고.
 
bgm. Wu-Tang Clan - Triumph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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