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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라" 철학계의 노벨상, 첫 수상자는 이 사람…

중앙일보 2016.12.03 09:12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현대철학의 거두 찰스 테일러(85)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가 제 1회 베르그루엔 철학상을 수상했다. ‘집 없는 억만장자 자선사업가’로 유명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55)이 세운 베르그루엔 연구소가 제정한 상이다. 상금은 1백만달러(약 11억7000만원).

베르그루엔 철학상은 이른바 ‘철학계의 노벨상’이다. 베르그루엔은 사상(ideas)이 인간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는데도 사상가나 철학가를 기리는 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2015년 이 상을 만들었다. 세계 지성들의 호응이 쏟아졌다. 혼돈과 혼란의 시기일수록 철학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것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심사위원단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 등 저명 학자 9인으로 꾸려졌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수상자 선정 작업은 ‘살아있는 소크라테스’ 찾기였다. 후보자는 무려 500명에 달했다. 위원단의 선택은 찰스 테일러였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테일러는 문화다원주의를 정치철학 안으로 가져와 이론화시킨 것으로 명성이 높다. 다른 문명과 지적 전통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운 철학자다. 그의 연구는 서구 문명이 단순한 단일 문명이 아니라 다양한 문명의 산물임을 보여줬다. 이런 공로로 그는 최근 10년 사이 템플턴상(2007년), 교토상(2008년), 클러지상(2015년) 등 세계 사상계의 주요 상을 휩쓸었다.
제 1회 베르그루엔 철학상 수상자인 찰스 테일러 교수(왼쪽)가 CNN 앵커인 파리드 자카리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제 1회 베르그루엔 철학상 수상자인 찰스 테일러 교수(왼쪽)가 CNN 앵커인 파리드 자카리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심사위원인 에이미 구트만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테일러는 '적합한 인정(Due recognition)'이야말로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테일러는 맥길대 교지에 보낸 이메일에서 “다른 문화와 문명 사이의 상호 오해를 극복하려는 사명을 갖고 있는 연구소에서 주는 상이어서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고립주의와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감안하면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테일러의 수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테일러에 대한 시상식은 1일(현지시간) 밤 환하게 불을 밝힌 뉴욕 맨해튼 42번가의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열렸다. 행사엔 철학자, 자선사업가 등 3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베르그루엔은 손님을 맞는 주인 역할을 하느라 분주했다.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뭐냐고 묻자, 그는 "미국 대선 결과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정치적 반응"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물러나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과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밤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테일러 교수와 CNN 앵커 파리드 자카리아의 대화였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굉장히 관대하다. 하지만 모로코나 알제리 이민자들도 그렇게 느낄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유럽연합은 긴축 상태에 놓였다. 사람들의 복지 혜택은 예전 같지 않게 됐고, 이민자들에 의해 자신의 일자리를 잃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유럽의 이민정책은 이민자들을 끌어안지 못했다. 이민 2세들은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
정말 역사가 끝나는 시기엔 인간의 가슴에 열정이 사라지게 될까.
“인간사회가 정말로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어떤 고정관념에 맞서 누구나가 본연의 모습으로 대우 받는 사회, 고정관념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회나 권리를 박탈하지 않는 사회다. 그런 사회야말로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겐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 세계 곳곳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아주 좋지 않은 소용돌이에 있다. 우리는 개방적이고 평등한 개별국가들로 이뤄진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위험에 처해있다. 트럼프가 푸틴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프랑스에서 프랑수아 피용(공화당)과 마린 르펜(국민전선)이 푸틴과의 협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 등은 우연이 아니다.”
1940년대에 세상이 끝나는줄 알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어린 시절 신문에서 프랑스가 나치에 항복했다는 기사를 보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드골이 나타났다. 그 드골을 믿고 의지할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드골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건가.
“우리는 지금 리더를 찾고 있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되돌려 줄수 있는 리더 말이다.”
제 1회 베르그루엔 철학상 수상자인 찰스 테일러 교수(왼쪽에서 세번째)가 억만장자 자선사업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왼쪽에서 첫번째) 등과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제 1회 베르그루엔 철학상 수상자인 찰스 테일러 교수(왼쪽에서 세번째)가 억만장자 자선사업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왼쪽에서 첫번째) 등과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이상렬 뉴욕 특파원

한 시대를 연 노철학자의 답변은 비관론에 젖은 것 같으면서도 낙관론이 절묘하게 배합돼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세상을 돌이킬수 없게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황을 어느 정도까지만 억제할수 있다면 미래엔 훨씬 많은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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