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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차관 오던 한국 대사관 행사, 올해는 부국장 보낸 중국

중앙일보 2016.12.03 02:30 종합 3면 지면보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압박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한류 프로그램 통제와 중국인 단체 관광 제한에 이어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한 롯데 그룹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외교 당국과 중국 진출 업계에선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한국산 식품·화장품에 대한 위생 검역이 강화되면서 통관이 거부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 이미 예정된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와 문화·경제 협력 행사가 돌연 중단되거나 연기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중, 국경절 리셉션 참석자 격 낮춰
일본 행사엔 차관급 류전민 보내
현대차 준공식 참석한 김장수 대사
행사 직전 “축사 불허” 통보에 당혹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김장수 주중 대사를 포함해 주중 한국 대사관의 외교 활동과 행사도 영향을 받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이 역시 사드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견제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자오커즈(趙克志) 허베이성 서기가 지난 10월 18일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에서 열린 베이징현대 제4공장 준공식 도중 이 공장의 첫 번째 생산 모델인 위에나에 기념 사인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설영흥 현대차그룹 고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오커즈 허베이성 서기, 김장수 주중 대사. [사진 베이징현대]

자오커즈(趙克志) 허베이성 서기가 지난 10월 18일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에서 열린 베이징현대 제4공장 준공식 도중 이 공장의 첫 번째 생산 모델인 위에나에 기념 사인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설영흥 현대차그룹 고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오커즈 허베이성 서기, 김장수 주중 대사. [사진 베이징현대]

지난 10월 19일 주중 한국 대사관이 개최한 국경절 리셉션이 대표적이다. 각 해외 공관은 국군의 날과 개천절이 포함된 10월에 주재국 고위 관리 등 내외빈을 초청하는 리셉션을 연다. 주중 대사관 측은 중국 외교부 등 평소 교류가 있는 고위간부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통상 중국 당국이 적당한 급의 인사를 대표로 선정해 보내면 대사관 측은 리셉션의 주빈(메인 게스트)으로 예우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올해는 중국 외교부 부국장·과장 등만 참석하는 바람에 주빈 없이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의전서열상 장관급 예우를 받는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외사위원장을, 2014년에는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주빈으로 보냈다.

이는 지난달 22일 주중 일본대사관의 리셉션에 류 부부장이 중국 대표로 참석한 것과 대조된다. 일본 측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류 부부장, 2014년엔 류젠차오(劉建超) 부장조리(차관보)가 참석했다. 중·일 관계가 최악이던 2012년 실무자만 보낸 이후 양국 관계 개선에 맞춰 참석자의 격을 높여 온 것이다.

리셉션 하루 전날인 10월 18일에는 현대자동차의 중국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 제4공장의 준공식이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에서 열렸다. 김 대사는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자리에 참석했다가 끝내 축사를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베이징현대 관계자는 “행사 직전 중국 당국이 대사 축사를 승인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와 부랴부랴 생략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선 민간기업 주최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인원이 모이는 행사라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함께 참석했던 자오커즈(趙克志) 허베이성 서기도 축사를 하지 않았다. 행사에 참석했던 현대 측 관계자는 “행사의 격을 낮추고, 특히 한국 대사의 축사는 승인할 수 없다는 상부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현장에서 취소 통보를 받고 당혹스러웠고 결국 김 대사와 자오 서기의 오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사와 중국 측 주요 당국자 간의 공식 면담도 중국 측의 무반응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김 대사는 10월 하순 리진짜오(李金早) 중국 국가여유(旅遊)국장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중국 당국이 지방별로 일선 여행사들에 “일정액 이상의 저가 여행을 규제한다는 지침과 함께 한국으로 보내는 단체 여행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짐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면담은 한 달이 넘도록 성사되지 않고 있다. 또 지난달 하순 한류 콘텐트 규제 강화 지침이 알려진 이후 녜천시(?辰席) 광전총국장에게도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 역시 응답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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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대사관 관계자는 “사드 이후 한국에 다양한 방법으로 보복 조치를 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사드 때문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며 “사드 배치 계획이 진행될수록 그에 맞춰 단계적으로 보복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배치 단계에 이르면 더욱 강한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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