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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악가가 알린 상군해녀, 아베 부인이 나선 ‘아마’ 눌렀다

중앙일보 2016.12.03 01:25 종합 12면 지면보기
제주해녀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놓고 한·일 외교전
한국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 사진작가 인 와이진의 작품. 그는 “해녀에 대한 정보를 올바로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와이진]

한국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 사진작가 인 와이진의 작품. 그는 “해녀에 대한 정보를 올바로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와이진]

“먹고살젠(먹고살려고), 그냥 아이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하젠(하려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어서. 근데 이번에 우리가 하는 일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막 지꺼져서(기뻐).”

10m 이상 깊은 바다에서 활동
한번에 3~5시간 소라 80kg 캐
등록 해녀 4337명, 50년 전의 20%
서귀포 해녀학교서 새내기들 육성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동 어촌계의 현수자(76) 해녀는 지난달 30일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식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잔뜩 신이 난 얼굴이었다. 열 살 때부터 바다에서 산 그가 열 여덟 살이 되자 제주 바다도 좁았다. 울산 방어진으로, 일본으로 ‘원정 물질’을 떠났다. 현수자 해녀 같은 상군(10m 이상의 깊은 바다를 주무대로 하는 물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해녀)급 해녀는 한 번에 3~5시간 동안 물질하며 300~400번의 잠수를 한다. 그는 그렇게 1남 2녀를 키우고, 아들은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지난주만 해도 이틀 동안 소라 160㎏을 채취했다. “하루 80㎏ 가정(가지고) 놀라지 말라. 이번에 유네스코 인정도 받아시난(받았으니) 힘낭(힘이 나서) 80살까진 쭉 헐꺼라.”

현수자 해녀의 67년 물질(해녀가 산소통 없이 하는 수중 채취 작업)이 보여주는 이 같은 해녀 정신은 유네스코가 제주 해녀 문화를 선택한 이유였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전문가 심사기구는 “제주 해녀는 감사받을 만한 물질 기술로 생계에 기여해 여성의 권리를 신장했다”고 했다.이번에 등재된 영어명은 ‘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 유일 ‘여성 다이버’ 타이틀의 영광을 제주 해녀가 얻게 됐다. 제주 해녀만큼이나 이 타이틀을 노렸던 이들이 있다. 바로 일본의 잠녀 ‘아마(海女)’다.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에 전시됐던 사진작가 준초이의 작품. 그는 1년 동안 우도에서 생활하며 ‘어머니의 눈매’를 가진 해녀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에 전시됐던 사진작가 준초이의 작품. 그는 1년 동안 우도에서 생활하며 ‘어머니의 눈매’를 가진 해녀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산소통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은 전 세계에 한국의 해녀와 일본의 아마뿐이다. 이에 2007년 무렵 민간 차원에선 유네스코 공동 등재를 추진하기도 했다.

제주 해녀의 기원과 관련, 『삼국사기』에는 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단 기록이 있다. 일부 학자는 인류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아마는 이보다 역사가 짧고, 제주 해녀가 아마의 기원이란 설이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유네스코 등재가 추진되면서 점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본이 아마의 역사를 3000년 전이라고 앞당기며 ‘원조’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아마

일본은 2012년 여수 엑스포에서 아마 섹션을 만들어 대대적 홍보에 나섰고, 2013년 9월 아마의 본고장인 미에현이 주일 외신 기자들을 초대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와 AFP통신에 ‘해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여성 문화’의 주인공으로 아마가 소개됐다.

일본의 이런 공격적인 ‘아마 마케팅’ 뒤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가 있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와테현은 미에현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많이 아마가 활동해 온 곳이다. 외교가 소식통은 “대지진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아마 마케팅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2013년 이와테현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아마가 되려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NHK 드라마 ‘아마짱’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아베 총리의 고향 야마구치현은 일본에서 셋째로 아마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아마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프랑스 인사들을 직접 만나는 외교적 기회에 아마의 우수성을 알리는가 하면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아마 서밋’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일본 영부인이 직접 나서자 한국 내에선 유네스코 등재에서 제주 해녀가 아마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차근차근, 조직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2012년 4월 국내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제주 해녀를 올리고, 2013년 12월 해녀를 유네스코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제주 어촌계, 제주도, 문화재청이 제공한 콘텐트로 외교부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민간 전문가들이 영어 신청서를 작성했다. 주유네스코 대표부는 현지에서 ‘제주 해녀의 유일무이함’을 내세워 회원국들을 직접 공략했다.

하지만 일본은 겉으로 보이는 관심만큼 내실 있는 준비를 하진 못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되려면 먼저 그 나라의 무형유산 예비목록에 올라야 하는데, 아마는 일본의 중요민속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 다른 쟁쟁한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올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행사장에 아마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아키에 여사는 영부인들을 데리고 직접 아마들을 만나러 갔지만 정작 이번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심사에 아마는 신청서 조차 내지 못했다.
왼쪽부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사진작가 준초이, 사진작가 와이진, 바리톤 정경.

왼쪽부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사진작가 준초이, 사진작가 와이진, 바리톤 정경.

한국에선 자발적인 민간 외교관들도 움직였다. 작품 한 점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한국사진작가 준초이는 모든 걸 내려놓고 2013년 1년 동안 우도에 내려가 해녀들과 함께 지내며 사진을 찍었다. 돈이 아쉬워 중간에 마음이 바뀔까 봐 아예 전입신고까지 했다. 광고 촬영차 제주도에 갔다가 바다에서 해녀들의 눈매, 주름 하나하나에서 모성을 보며 매료됐다고 한다. 이렇게 찍은 작품 101점은 2015년 4월 유네스코 본부 파페르디홀에서 전시됐다. 준초이는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왜 아주머니가 물 속에 있느냐’ ‘이게 여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이냐’ 등 질문을 쏟아내며 해녀에 관심을 가졌다. 예술의 힘이 참 크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경 국민대 교수는 제주해녀 헌정 앨범 ‘바다를 담은 소녀’를 냈다.

정경 국민대 교수는 제주해녀 헌정 앨범 ‘바다를 담은 소녀’를 냈다.

바리톤 정경 국민대 예술대학 교수는 지난달 뉴욕 카네기홀에 처음 서는 영광을 해녀 알리기의 기회로 삼았다. 카네기홀의 양해를 구해 해녀복을 모티브로 만든 옷을 입은 무용가가 함께 공연했다. 2013년 관광차 제주도에 갔다가 1930년대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 역사를 알게 된 뒤 마음이 움직여 해녀를 주제로 ‘바다를 담은 소녀’란 곡을 만들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 수중사진작가 와이진은 약 5년 전부터 물질하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해피 해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강풍이 부는 바다에 뛰어드는 ‘멋진 여성들’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아시아 최대 해양박람회 아덱스(ADEX) 등 한국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사진작가로서 참여하게 되는 국제무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이제 해녀 문화가 국보를 넘어 세계유산이 된 만큼 어떻게 잘 보전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해녀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제주에 등록된 해녀는 지난해 기준으로 4337명이다. 1965년(2만3081명)의 20%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제주해녀 4377명 중 4314명이 50세 이상(60대 32.2%, 70대 42.4%)이다. 이에 새내기 해녀를 키우는 해녀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2007년 한수풀해녀학교가 문을 열었고 지난해 5월 개교한 서귀포 법환해녀학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직업 해녀 양성에 나서고 있다.

법환해녀학교 출신 전소영(38·여)씨는 하례리어촌계가 38년 만에 받은 신입 해녀다. 그는 프리다이빙을 즐기다 제주도의 바다에 매료돼 해녀가 됐다. 지난해 7월 법환해녀학교를 졸업한 뒤 하례리에서 6개월 인턴 과정을 거친 뒤 올여름 어촌계 가족이 됐다. 제주도의 지원으로 인턴해녀 과정을 밟고 있는 새내기들도 있다. 덕분에 지난해까지 6명에 불과했던 마을 해녀가 올해에는 10명이 됐다. 하례리어촌계 양난초(74) 해녀는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니 어촌계 분위기가 활기차져 즐겁다”고 말했다.
해녀 건강 비결은 톳보리밥·젓갈·채소·조개냉국·콩자반 ‘낭푼밥상’
해녀 일은 상당한 체력은 물론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70~80대에도 바다로 나가는 그녀들은 삼시세끼 어떤 에너지원을 섭취하고 있는 걸까. 본지는 지난달 30일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의 도움으로 전통 해녀 밥상인 ‘낭푼 밥상(사진)’을 재현했다. 낭푼은 양푼의 제주어다.
 낭푼 역할을 하는 차롱(대나무 그릇)에 해조류인 톳을 넣어 지은 ‘톳보리밥’이 담겼다. 과거 곡식이 귀했던 시절 뭍에서 밥에 무를 섞어 무밥을 지었듯 제주에서는 톳을 넣어 밥의 양을 늘렸다. 각종 채소는 된장과 멜젓(멸치젓) 등과 함께 섭취해 심심함은 날리고 영양과 감칠맛은 더했다. 제주에서 주로 먹는 채소인 ‘양하’를 절인 장아찌를 비롯해 멸치지짐·콩자반을 준비했다. 여기에 제주 해안가의 검은 돌(현무암)에 붙어 사는 딱지조개 ‘군벗’을 넣은 냉국을 곁들인다.

  낭푼 밥상은 웰빙 식단이다. 해녀의 밥상이기 이전에 제주도민의 전통 밥상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해녀이니 남편과 자식이 먹는 집밥도 낭푼 밥상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밥이 수북이 담긴 커다란 양푼을 상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먹는 것으로 숟가락만 가져오면 누구나 가족처럼 밥을 먹을 수 있다. 양용진 원장은 “낭푼 밥상은 ‘오래된 미래’”라고 했다. 해녀들의 고된 생활사를 보여 주기도 하지만 비만과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식단이라는 것이다.

제주=최충일 기자
 
유지혜 기자, 제주=최충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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