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속으로] 소문→버블→폭락 되풀이…손실 난 계좌 99%는 개미

중앙일보 2016.12.03 01:13 종합 15면 지면보기
요동치는 정치 테마주

“이제 가보자. 10만원이 고지다.”

근거 없는 루머
고려산업 ?문재인과 동문인 고문 없어”
‘옷깃만 스쳐도 인연’식 헛소문 기승
작전세력 이용
“급등할 것” 거짓정보 흘려 주가조작
36억 시세차익 올려도 벌금 3000만원


지난달 28일 오전 5시. 국내 한 포털사이트 종목 토론방에 올라온 글이다.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고려산업에 대한 상승 기대감으로 시작한 하루였다. 고려산업의 이날 주가는 전날보다 110원 떨어진 6120원에 마감됐다. 장 마감시간인 3시30분이 가까워 오자 토론방은 “가망 없다. 다신 안 산다”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날 오후 9시 JTBC 뉴스룸에 문재인 전 대표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내일 상한가 가나. 대통령선거 때까지 들고 가겠다”는 글로 토론방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추천 기사
정치 테마주로 분류되는 일부 주식시장이 정권 교체 분위기가 감돌자 요동치기 시작했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관련주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된 기업은 하락세를 보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일정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반등하고 있다.
‘기대감→소문→버블→폭락’의 공식을 따르는 정치 테마주는 일정 시기가 지나면 곤두박질친다. 2011년 안철수연구소와 보안 공동사업 협약을 체결한 클루넷은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돼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해 1500원이던 주가가 3개월 만에 6000원대로 올랐다. 하지만 2012년 5월 300원 선까지 급락하며 상장폐지됐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막연하게 부풀려진 테마주는 실망감 때문에 주가가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 테마주는 기업과 정치인의 연결고리가 학연과 지연뿐인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 가축의 배합사료를 만드는 고려산업은 상임고문이 문 전 대표와 경남고 동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지가 확인해 보니 이조차 사실이 아니었다. 고려산업 관계자는 “상임고문이라고 불리는 유모씨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라며 “모회사인 금강공업의 사외이사 이모씨가 문 전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내에서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의 테마주로 불리는 지엔코도 마찬가지다. 지엔코는 대표인 장모(46)씨가 반 총장의 외조카로 알려졌지만 회사 측은 “개인 정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신건설은 본사가 이재명 시장의 고향 안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테마주로 분류됐다. 10월 첫 거래일(4일)에 5500원이던 동신건설 주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1차 대국민사과를 한 10월 25일(5350원)까지는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주가는 1만원대로 껑충뛰었다.

테마주는 실제 주가조작 세력에 이용돼 범죄로도 이어진다. 테마주 열풍이 가장 세게 불었던 시기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흘러나온 2011년이다. 안 전 대표가 당시 37.15%를 보유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뿐 아니라 연구소와 공동으로 사업을 하기로 한 회사까지 모두 상한가를 기록했다. 코스닥 위주의 중소형주만 테마주로 분류됐던 관행을 깨고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대형주까지 요동을 쳤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당시 검찰은 국세청·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꾸렸다. 수사단은 정치 테마주를 이용하던 주가 조작 세력은 증권 전문 사이트에 소문을 내는 홍보맨(마바라)과 실제 매매주문을 내는 행동책(선수), 사채업자(쩐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정황을 포착했다.
2011년 말 유명 주식 사이트 팍스넷에서 활동하던 A씨는 “박근혜 후보의 무상보육 정책으로 N사 주식이 급등할 것”이라는 글을 올려 정치 테마주를 임의로 만들었다. 연초 4000원대였던 N사 주식은 9000원대까지 뛰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조직원 4명과 17개 종목에 대해 거짓 정보를 퍼뜨려 36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거짓 정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문을 지속적으로 유포해 시세 차익을 거두는 세력을 처벌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지난해부터 시행했다. 다만 주가 조작 뒤 빨라도 2~3년 뒤에야 법원 판결이 나고, 처벌은 아직도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A씨의 벌금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대선 때마다 엄벌을 내리겠다고 발표하지만 실제 법원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약한 처벌이 이어지다 보니 과거 테마주가 다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A씨가 2011년 “모(母)회사 대표이사가 문재인과 30년간 죽마고우”라며 문재인 테마주로 추천한 P사의 주가는 올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올해 1월 400원대에 불과했던 주가가 최근 1000대로 올랐다.

헛소문을 가리고 기업 가치를 지켜야 할 임원들은 주식을 파는 얌체 행동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고려산업의 모회사 임원은 지난달 45만 주를 장내 매도했다. 테마주로 분류되면서 주가가 올해 초 2000원대에서 6000원대로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최소 18억원의 시세 차익을 본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 테마주로 보는 손해는 개인투자자가 대부분 떠안는다. 금감원이 2011년 6월~2013년 5월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 35개의 실제 매매 손실 계좌를 확인했더니 200만 개 가까운 계좌에서 1조5494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일부 외국인 계좌를 제외하고 손실 난 계좌의 99%가 개인투자자다.

금융 당국은 올해 정치 테마주를 60여 개 정도로 추정하고 주가조작 세력 개입이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70여 개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급락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8월 이후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정치 이슈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 관련 루머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테마주를 가려내기 위해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이나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krx.co.kr)을 확인하도록 조언했다. 테마주로 거론되는 기업 임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지난해 적자를 얼마나 기록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주가조작 거래를 제보할 경우 건당 최대 20억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강현철 NH투자증권 글로벌투자전략부장은 “학연이나 지연에 따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식의 한국식 테마주는 사실상 ‘잡주’나 다름없다”며 “해당 기업도 정치인과 관련이 없다면 이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 테마주 인디에프, 두 배 올랐다 낙선하자 더 떨어져
 
미국·일본 등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정치 테마주가 주목을 받는다. 다만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다 붙여 만드는 한국식 테마주보다 후보의 정책에 따른 수혜 여부를 따진다. 가령 최근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내무장관으로 거론되자 석유 시추를 하는 에너지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식이다. 페일린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강현철 NH투자증권 글로벌투자전략 부장은 “미국에선 대선 후보의 참모들을 샅샅이 분석해 향후 경제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과정에서 테마주가 나온다”고 말했다.

 일본 증시에선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군수산업과 러시아 관련 업체가 테마주로 분류됐다. 트럼프가 주일 미군 주둔 경비를 일본 정부에 부담시키겠다고 밝히자 군사비 확대로 혜택 받을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다. 또 일본에서 미국 대신 러시아 입김이 세져 관련 기업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증시에도 미 대선 테마주가 있었다. 의류 업체 인디에프는 모회사인 세아상역의 김웅기 회장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관계를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하자 클린턴 테마주로 분류됐다. 올해 7~8월 2000원대를 유지하던 인디에프 주가는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승했다. 지난 11월 8일엔 40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클린턴이 낙선하자 주가는 1600원대로 급락했다. 진용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이 실제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기대감만으론 주가가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 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